리얼 로봇물은 건담이 전부인줄 알던 내가 작정 하고 <마크로스>의 티비판을 보게되었다. 예전에 친구가 시디로 준게 있어서 따로 구해 볼 필요가 없어서 편했다.

극장판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도 봤는데, 티비판이랑 내용이 많이 달랐다. 건담과 달리 마크로스는 방영된 모든 작품을 마크로스 월드에서 방영된 작품으로 설정하고 있으므로 당연히 각 작품들의 설정에 대한 논쟁을 교묘하게 피해가고 있다. 이것은 창작자의 자율성을 높여주지만 각 작품간의 유기적 관계를 무시하게 되는데 그런 이유로 이후 특별한 호평이 나오지 않는한 다른 마크로스작품을 보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리얼로봇의 특징은 전쟁과 군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감독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마크로스는 60년대 반전운동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건담이 식민지 해방투쟁에 대한 정치적 서사라면 마크로스는 전쟁을 노래로 막을수 있다는 반전운동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극장판에서는 부각되지 않지만 티비판에서는 린 카이훈이라는 청년이 반전운동가로 등장하며 사사건건 군과 충돌을 일으킨다. 여기서 카이훈은 순진한 반전운동가의 수준도 안되는 협잡꾼으로 그려진다.

극장판의 비쥬얼은 엄청난 것이다. 지금나오는 엔간한 일본 아니메의 수준을 훨씬 상회한다. 특히 작가의 특허인 유도미사일신은 향후 만화 기법에 큰 영향을 주었다 한다.

'전쟁'보다 '노래'에 촛점을 맞춘만큼 마크로스의 삽입곡들은 상당히 신경 쓴 느낌을 준다. 뮤직비디오라 할수 있는 <마크로스 플래시백>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님을 짐작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점이 마크로스의 히로인 린 민메이를 스타로 만들어 냈다.

마크로스는 시종일관 연애문제에 집중한다. 그러나 주인공인 히카루의 입장에서 살펴보면 민메이는 하야세만큼 매력적인 케릭터는 아니다. 건담과 비교해보면 바람둥이들과(아므로, 샤아, 카미유 모두 카사노바 스타일이다.) 강화인간간의(라라아, 로자미아 바담, 포우 무라사메 모두 정상적인 여성은 아니다) 비뚤어진 연애를 다루고 있다면 마크로스는 훨씬 현실적인 연애를 다루고 있다. 상반된 케릭터의 두 여자와 한 남자라는 설정은 전적으로 남성 관객을 대상으로 맞추어진 설정이라는 느낌이 드는데, 이런 설정이 향후 하렘물에 다소나마 영향을 주게 된 것 같다.

건담이 인간들 사이의 정치투쟁을 다루고 있다면 마크로스는 외계인과의 전쟁을 다루고 있다. 따라서 정치적 갈등이나 문제의식은 희미하게 다루어지며 지구인의 시각으로 본 외계인과 외계인의 시각에서 본 지구인의 특성에 무게중심이 맞추어진다. 전자보다는 후자에 비중이 실려있다. 외계인의 시각에서 본 지구인의 특징은 대중문화를 향유한다는 점이다. 결국 마크로스는 대중문화에 대한 예찬으로 흐르게 된다. 이런 점들이 마크로스를 단순한 전쟁물이 아닌 독특한 위치를 점하게 하는 것이다.

연애와 대중문화, 이 두가지가 마크로스의 화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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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에 태어나 90년대에 성장해 2000년대를 살고 있다. 사회학과 정치학을 전공하지만, 스스로를 역사학도라고 생각한다. 면식과 만화, 수다와 어린이를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