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세계대전은 여러가지 면에서 역사에 남을 중요한 국면이었다. 그것은 팽창하던 자본주의 세계의 전면적 분열이 가시화 된 것이었으며 제국주의의 몰락을 의미한다.

그것은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켰으며, 한세기동안 지속되어온 잉글랜드 헤게모니의 종언과 메국헤게모니의 시작을 알렸다. 정치적으로는 그렇다고 치자.

총력전의 시작도 1차대전 부터 였다. 제국주의시대를 통해 축적된 과학지식은 드디어 첨단 무기 개발로 이어졌다. 생화학무기가 사용되었고, 재플린을 이용한 폭격도 이때 이루어졌다. 잠수함도 이 때 나왔다. 군사기술로는 이랬다.

안토니오 그람시는 1차대전의 경험에 착안하여 기동전-진지전 모델을 고안한다. 이것은 1차대전의 운명을 가른 기관총의 등장에 따른 것이었다. 19세기 후반 콜트社가 리볼버를 개발하면서 자동소총은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눈을 돌린 것은 독일이었다. 히람 맥심H.Maxim이 그 유명한 맥심 가관총을 개발했으나 조국인 영국은 맥심건의 배치를 거부했다. 맥심건에 관심을 보인 것은 독일이었다.

물론 기관총이 갑작스럽게 등장한 무기는 아니었다. 이미 20세기를 넘어서면서 다양한 형태의 자동소총-기관총들이 실험과 개발, 양산에 들어간다. 독일에 중형급 기관총 맥심건이 있었다면 프랑스에 배치된 중형 기관총은 호치키스가 만든 호치키스 건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호치키스는 호치키스 건의 원리를 이용해 스테이플러를 개발했다.(정확히 말하자면 개발이 아니라 개량이다.) 호치키스의 이러한 자태전환이 정말 전후 호치키스건이 조직폭력과 테러에 사용되는 것에 죄의식을 느껴서 였는지, 전후 쇠락하던 회사를 다시 살리기 위해서 였는지 나는 모른다. 어쨌든 호치키스는 스페이플러를 만들었고, 이것이 오늘날 포크레인, 봉고, 컵라면과 어게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산책을 하며 마음껏 밤 공기를 마시고 싶은 봄날의 밤. 100년전의 호치키스가 느닷없이 떠오르는 것은 왜 일까.







아, 집에 스테이플러가 없다. 이를 어쩌나...
사기는 귀찮고... 돈도 없고... 숙제는 왜 이렇게 하기가 귀찮을까?

오뎅과 정종이 생각 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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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에 태어나 90년대에 성장해 2000년대를 살고 있다. 사회학과 정치학을 전공하지만, 스스로를 역사학도라고 생각한다. 면식과 만화, 수다와 어린이를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