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은 격동의 한 해였다.
전두환 정권은 야간통금 해제라는 혁신적인 조치를 단행하며 한 해를 열었다. 급기야 프로야구를 창단하시더니 이철희 장영자 사건으로 세간을 놀라게 했다.
무엇보다도 부산미문화원 방화 사건으로 남한에서 반미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야학비판>과 <학생운동의 전망>이라는 팜플렛이 운동판에 파장을 일으켰고, 광주의 별 박관현이 옥사했다. 그리고 9월 24일에는 5.15회군 이후 최초의 가두시위가 전개되기도 했다.
春秋戰國
이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중국공산당은 당 총서기에 후야오방(胡耀邦)을 임명했다. 중국사에 파란이 시작되는 사건이었다. 잉그리드 버그만, 그레이스 켈리가 은막의 뒤로 사라졌으며, 브레즈네프도 역사의 흑막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기어다녔다. 정말 많이도 기어다녔다.
이 즈음부터 노량진에서 살았던 것 같다. 노량진을 떠나기 전인 1987년까지 사육신묘는 좋은 주말 피크닉 장소였다. 아직 20대였던 어머니는 지금의 나보다도 어렸다. 아, 저땐 날씬했구나.

숙부와 수원 할머니 댁에서 찍은 사진. 5월의 훈풍은 보드라웠다.

1982년 11월. 본인의 탄생 1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가족들. 아버지는 돈버느라 참석하지 못했고, 할머니와 숙부들이 자리를 빛내주었다. 정말 찟어지게도 가난했구나.
82년도 사진들 몇 개를 스캔한 기념으로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