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운동, 다시 출발선에 서다

총학생회 선거의 낮은 투표율과 ‘비권’ 당선은 기존 학생회 중심 운동에 대한 강력한 문제제기

총학생회 선거의 저조한 투표율과 연이은 ‘비운동권’ 당선. 학생운동의 종말이라기보다는 학생회 중심 운동에 대한 학생들의 강력한 문제제기다. 다시 출발선에 선 학생운동, 어디로 갈 것인가.

학생운동의 몰락인가, 조정인가.

2004년 학생회장을 뽑는 각 대학 총학생회 선거에서 ‘학생회의 탈(脫)정치화’를 내건 이른바 비운동권 학생회가 ‘약진’하면서 학생운동의 방향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사진/ 지금은 학생운동의 몰락기인가 조정기인가. 연세대 학생회 선거 투표 독려 포스터.(류우종 기자)

각 언론들은 전국 4년제 대학의 70%가 넘는 학교에서 ‘비운동권’ 계열의 학생회가 당선됐으며, ‘학생운동의 메카’로 불리던 학교에서마저, 또는 학생회가 만들어진 이후 처음으로 비운동권이 당선됐다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 재벌 3세가 비운동권 후보로 나서 당선된 일 또한 단골 메뉴다. 일부에서는 “이번 선거는 정치투쟁에 매몰돼 학내 복지에 무신경했던 학생운동권에 대한 심판”이라는 섣부른(?) 진단과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비운동권’이란 애매한 단어

하지만 비운동권과 운동권을 가르는 기준은 사실 모호하다. 언론은 보통 한총련과 일부 좌파 진영을 운동권으로 묶고, 비운동권은 그 나머지 세력으로 분류한다. 하지만 비운동권이라는 범주 안에는 통일운동과 노동운동으로 양분되던 이전의 학생운동의 전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신운동권’세력과 학생운동의 반대세력으로 존재하는 ‘반운동권’이 함께 포함된다. ‘자주-민주-통일’의 강령을 따르지는 않지만 반전운동이나 파병반대 운동을 연대해 펼쳐나가는 2003년 서울대 총학생회와, 아예 ‘한총련 탈퇴’와 ‘학내 집회금지’를 주장하며 당선된 서울 홍익대 총학생회 당선자쪽이 모두 비권으로 묶이게 되는 것이다.

또 일부에서는 ‘비권’과‘반권’은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권은 다른 정치적인 운동조직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학내 문제에 촛점을 둘 뿐, 자체 정치투쟁은 거부하는 그룹이고, 반권은 학내 사업 이외의 모든 정치성을 띈 운동을 부정하는 성격을 보이기 때문이다.

한총련의 ‘아성’이던 서울 홍익대에서 올해 한총련계 후보와 접전끝에 200여표 차이로 당선된 김대정(전기전자공학부 3)씨는 “기존의 학생회는 반미와 통일만 외치고, 기말고사 기간에 학내에서 집회를 여는 등 오히려 일반 학우들의 학업을 방해하는 행태를 보여왔다”며 “월 1회 무료토익을 실시하고, 취업박람회를 여는 등 학생들의 취업문제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학교 바깥의 문제와는 철저하게 관계를 끊는 ‘이기적인 학생회’를 만들겠다는 공약이 학생들을 움직인 것 같다”고 밝혔다.


사진/ 100만여의 학생과 시민이 참가한 고 이한열씨 장례식.


그러나 학내 복지를 주장하는 것 역시 일정한 방향성을 가진 ‘정치적인 운동’이어서 ‘비운동권’이라는 통칭은 언어모순이다. 반면, ‘운동권’이라는 단어 역시 인권운동이나 여성운동, 환경운동 등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내용을 껴안지 못하는 한계를 안고 있다. 일부에서는 운동권이라는 단어에 담긴 정치적 의미를 경계하기도 한다. 독재정권 시절, 보수언론이 ‘민주화운동을 하던 학생들’을 일컬어 부르던 말이 ‘조국통일’과 ‘노동해방’ 등 특정 운동의 정파를 가리키게 되었고, 이제는 학생들을 구분짓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운동권-비운동권’이라는 구도의 민감성과 모호함을 고려한다 해도, ‘학생회에 뿌리를 둔 학생운동’(학생회 운동)에 대한 폭넓은 문제제기가 이어진 것은 사실이다. 특히 올해 학생회 선거에서는 여느 해보다 ‘학생회 혁신’과 ‘새로운 학생운동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됐다.

학부제 도입 등으로 과 학생회마저 붕괴

이러한 문제의식의 바탕에는 기존 학생회 운동에 대한 학생들의 외면이 자리하고 있다. 학생회가 학생들이 피부로 느끼는 사안에 집중하기보다는, 학생들의 동의를 선뜻 이끌어내지 못하는 낡은 투쟁구호를 외치거나 학생을 ‘지도의 대상’으로 파악하는 권위적인 모습이 지적되는 것이다.

한총련 합법화대책위 관계자는 “학생운동이 급격한 쇠퇴의 길로 들어섰지만, 기존의 학생회 조직은 학생운동을 쇄신하고 학생들로부터 지지를 받겠다는 노력은 거의 하지 않았다”며 “학생회를 폐쇄적으로 운영하고, 학생들의 다양한 관심사와 이해를 모아내지 못한 것이 학생들한테서 외면받게 된 이유”라고 진단했다.


사진/ 한성대의 썰렁한 투표소.(류우종 기자)


학생회 운영 문제와 더불어 1997년 경제위기 이후 ‘팍팍해진’ 현실과 학부제의 도입은 학생들을 파편화하는 ‘외부 요인’이다. 입학하는 순간부터 취업 준비와 학과 선택에 내몰리는 것은 물론, 가장 기본적인 조직인 과 학생회마저 와해되면서 학생들이 사회를 고민할 기회가 없어졌다는 점은 학생회 자체에 대한 무관심으로 나타난다. ‘정치’와 ‘저항’이 자리하던 자리에 ‘경쟁’과 ‘효율’이 들어선 것이다.

학생들의 무관심을 가장 단편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올해 총학생회 선거의 투표율이다. 올해 총학생회 선거를 진행한 대부분 대학의 투표율은 50%를 갓 넘는 수준에 그쳤다. 지난 11월 말 총학생회 선거를 치른 서울대의 경우 투표 기간을 이틀 연장해 무려 닷새 동안 투표를 벌였지만 투표율은 46.67%에 그쳐 끝내 총학생회장을 뽑지 못하는 상황마저 벌어졌다. 성공회대와 상명대도 투표율이 각각 24.6%, 41%에 머물러 학생회 선거가 내년으로 미뤄졌다.

학내 교류와 절차적 민주주의 필요

한 한총련 간부는 “각 대학이 벌인 ‘50%와의 전쟁’은 학생회는 자신과 아무 상관없다는 학생들의 냉소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며 “또 이번 총학 선거의 특징은 비권과 운동권의 대립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학생운동의 변화’를 외친 선본(선거대책본부)들이 대거 당선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반독재 민주화 투쟁’이라는 구심점이 사라지면서, 운동의 내용과 방식에 대한 다양한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도 새로운 학생운동을 고민하게 만드는 원인이다.


사진/ 학생운동에 대한 성찰과 반성은 현재진행형이다. 12월5일 아주대 조직사건 규탄 기자회견에 참석한 정재욱 한총련 의장(왼쪽에서 두 번째, 류우종 기자)


학생운동에 대한 전 사회적인 관심은 지난날 학생운동이 만들어온 고유의 위상 때문이었다. 학생운동은 헌신적이고 선도적인 투쟁으로 한국 민주주의를 이끈 주도세력으로 자리매김했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각 대학 총학생회장들의 협의체로 꾸려진 전대협은 1992년까지 국민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았고, 심지어 1989년 전대협 의장이던 임종석씨는 당시 청소년 잡지 <하이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람’에 뽑히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사회적 이슈가 다양해지고, 학생회가 유일한 사회참여의 통로이던 시대도 아니어서 과거와 같은 ‘일사불란’한 학생운동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민주노동당과 사회당 등 진보정당의 학생조직과 시민사회단체, 사이버 공간 등을 통해 학생회를 통하지 않더라도 사회참여의 기회가 많아진 점은 학생회의 새로운 위상 정립을 재촉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지금이 학생운동의 ‘필연적 조정기’라는 분석을 내리기도 한다. 학생운동이 노동운동·농민운동과 함께 사회변혁을 주도하는 3대 주체세력에서 부문 운동으로 조정되는 ‘정상적인’ 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시민단체 활동가는 “1970~80년대 대학은 종교단체와 함께 유일하게 사상이 숨쉬는 공간이었고, 젊은이들을 조직화하는 희망의 ‘생산지’ 구실을 함으로써 운동의 주체가 될 수 있었다”며 “사회가 다원화하고 의견이 다양해지면서 이제는 학생운동이 대학생들의 이슈에 대한 문제의식을 기본으로, 사회에 참여하는 하나의 ‘계층운동’으로 조정되고 있는 과정”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한국 대학 사회의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는 실천단위는 학생회뿐이다. 다만 예전의 학생운동이 ‘사회와의 교류’에 치우쳤다면, 이제는 학생들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고 사회를 보는 건강한 시각까지 제공하는 ‘학내 교류’와 ‘절차적 민주주의’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운동을 펼치는 내부에서도 ‘운동의 위기’에 대한 성찰과 반성의 움직임은 계속되고 있다. 서울 홍익대 총학생회의 한 간부는 “지난해의 촛불시위나 올해 반전운동 움직임에서 볼 수 있듯이, 학생들의 사회를 보는 눈과 관심사는 다양하고 높아졌다”며 “파병반대 서명운동을 하면 4천~5천명씩 모이면서도, 막상 집회를 하면 100명도 모이지 않는 현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가 가장 큰 고민”이라고 털어놨다.

새로운 학생회상을 향하여

이에 대해 ‘새로운 학생운동’을 주장한 정재욱 11기 한총련 의장(연세대)은 “학생운동은 결국 민주주의의 문제”라고 잘라 말한다. 정 의장은 “학부제 실시로 와해되다시피 한 ‘풀뿌리 학생회’를 복원하고, 학생들이 학생회 활동의 기획·실행·평가에 직접 참여하는 틀을 만드는 것이 가장 급선무”라고 밝혔다. 그는 또 “한총련처럼 하나의 강령으로 묶이는 연합체가 아니더라도 일상적인 참여를 중심으로 하면서 사회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연대·교류하는 느슨한 ‘협의체’의 형식을 통해 모든 학생이 함께하는 운동의 틀을 만드는 것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독재정권에 맞서 들불처럼 일어났던 과거 학생운동의 ‘전성기’를 그리워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학생들이 투쟁의 앞머리에 설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시대 상황을 그리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학생회상에 대한 고민은 새롭게 구성되는 학생회 안팎에서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2003년 겨울, 한국의 학생운동은 다시 출발선 위에 서 있다.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새로운 학생조직의 실험?

한총련을 넘어선 조직 건설 움직임… 가입 대학 수 적고 대안 불명확

올해 대부분 대학 선거의 화두는 ‘한총련’이었다.

‘한총련 탈퇴’를 공약으로 내걸거나, 한총련쪽 후보이면서도 ‘한총련 해체’를 외치는가 하면, 한총련을 넘어선 새로운 학생운동 조직 건설 주장까지 현재 한총련과 학생운동의 방향에 대한 문제제기는 이번 선거의 핵심이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한총련을 대체하는 조직을 만들겠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한양대와 호남대 등 이른바 비운동권 총학생회 19곳은 지난 10월 ‘Post 한총련’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학생연대21’을 출범했다. 기존 학생운동이 정치투쟁에 집중해 일반 다수의 학생들과 유리됐다는 점을 비판하고, 상업주의에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변화된 대학의 흐름을 주도하는 새로운 대학 문화를 선보이겠다는 구상이다. 학생연대21의 뿌리가 한양대 ‘소명’(소리 없는 99%의 명예혁명) 학생회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2001년 말 한양대 안의 한총련 사무실 개소 문제를 지적하면서 논쟁을 일으킨 한양대 소명 총학생회는, 결국 3년째 총학생회장을 당선시켰다.

‘운동권과 비운동권의 경계를 허물겠다’고 주장하는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은 또 다른 움직임이다. 전국 50여개 대학으로 구성된 ‘기존의 한총련 중심의 학생회와 비운동권 학생회의 공존’ ‘생활·학문·투쟁의 공동체로서의 학생회’를 내세우고 있다.

한대련은 △우리 교육·우리 학교 지키기 300만 대학생 행동의 날 △청년실업 문제 해결기구 구성 △전쟁반대 평화실현 운동 △4·15 총선 대학생 유권자 운동본부 △남북 대학생 가을 운동회 등을 제시한다. 한대련 관계자는 “정치투쟁 일변도인 한총련과 학내 문제에만 전념하는 비운동권 학생회를 묶는 시도가 통할까 싶었는데 이제는 한총련 소속의 학생회가 속속 합류할 정도로 호응이 좋다”고 밝혔다.

학생연대21과 한대련 모두 ‘대학 사회의 새로운 대안’을 주장하고 있지만, 성공 여부는 불투명하다. 가입 대학 수가 아직은 매우 적고, 탈정치화를 외치며 새로운 대안을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 대안의 내용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학생연대21의 경우 보수정당·보수단체와의 연계설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면서 정체성에 대한 문제제기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일부 대학에서는 ‘학교 발전 이데올로기’에 빠져 “학교 발전을 위해서라면 등록금 인상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학생보다 학교쪽의 이익을 대변하는 웃지 못할 상황도 일어난다.

새로운 학생조직에 대한 실험이 그야말로 ‘실험’에 그칠 것인지, ‘대안’으로 거듭날 것인지는 더 지켜볼 노릇이다.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참여만이 우리를 변화시킬 겁니다

젊은 활동가들이 대학생에게 보내는 편지… 현재의 학생운동이 싫다고 외면하시렵니까

이 글은 현재 시민사회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젊은 활동가들이 대학생 여러분께 드리는 편지입니다. 대학교 91학번 활동가들로 구성된 ‘시민사회청년활동가모임’에는 현재 20여명의 활동가들이 소속되어 있습니다.(정리: 안진걸 참여연대 회원참여팀장, 최현진 전대협 동우회 전 간사)

대학생 여러분, 많이 답답하시죠?

1학년 때부터 취업공부에 쫓기고, 학부제 때문에 같은 과 친구 하나 사귀기 어렵고, ‘남북 화해시대’라는데 여전히 2년 넘게 군대에 가야 하고, 미국에 ‘NO!’라고 할 줄 알았던 노무현 대통령은 이라크에 파병한다고 난리고, 그런데 학생들을 대표한다는 학생회는 답답한 가슴 아는지 모르는지 늘 자기들끼리 바쁘고….


사진/ 가슴이 미어지고 숨이 막히던 '그 시절'. 목숨을 걸고 싸웠던 한국 학생운동의 전통은 위대한 것이었다.


‘그 시절’을 알고 계시나요?

많이 답답하고 고민하는 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켜보는 저희들로서도 가슴이 답답해서 조금은 구태의연하게 한번 여쭤보겠습니다.

가슴이 미어지고 숨이 막히던 ‘그 시절’을 알고 계시나요? (몇년 전까지만 해도 등록금 인하를 주장하다 학생들이 경찰의 폭력에 의해 숨졌답니다.) 지금만큼의 민주주의와 자유가 어떻게 가능하게 된 것인지 한번 진지하게 성찰해보신 적이 있나요? (지금 많이 자유롭다고 느끼시죠? 예전엔 심지어 장발단속, 통행금지도 있었답니다.) 현재의 한국 사회는 여러분들이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할 만큼 ‘인간답게 살 만한’ 곳이며 ‘평화롭고 민주적’인 곳인가요? (아직 수많은 노동자들이 목숨을 끊고, 분신항거하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강제 추방당하고, 죄 없는 젊은 군인들은 미국의 총알받이가 될지 모르는 이라크로 가게 된답니다.) 여러분들이 다니고 있는 대학이라는 곳의 운영과 교육은 얼마나 ‘교육적’이며 ‘학생중심적’인가요? (대학인가요? 취업학원인가요? 그 많은 사학재단들의 비리와 무리한 등록금 인상은 뭔가요?) 분단과 냉전을 뛰어넘는 민족화해·평화의 시대에 반대하는 수구냉전 세력이 많다는 것도 알고 있나요 (여러분들의 군복무 단축도 반대하는 그 사람들 말입니다. 자기 자식들은 군대에 안 보내면서요.) 여전히 인간해방은 멀고, 분단과 모순으로 아직도 고통스러운 이 땅을 함께 살아가는 모든 대학생 여러분들에게 진지하게, 일일이 얼굴을 맞대고 꼭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에서 학생운동과 청년학생의 헌신적 투쟁은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한국의 민주화운동, 민중운동, 통일운동에서 학생운동만큼 큰 일을 해낸 세력이 또 있을까요? 목숨을 걸고 싸웠던 한국 학생운동의 전통은 위대한 것이었습니다. 순수함과 도덕성은 이들의 생명이었고, 치열한 투쟁과 헌신에 대한 국민과 학우의 폭넓은 지지는 강력한 무기였습니다.


사진/ 6월1일 새벽 신촌 연세대 노천강당에서 열린 11기 한총련 출범식(한겨레 탁기형 기자). 최근의 총학생회 선거결과에서 보이듯 한총련과 학생과의 괴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이제 학생운동은 더 이상 국민과 학생 사회의 폭넓은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동의를 선뜻 이끌어내지 못하는 낡은 투쟁구호, 관념적 과격성, 친북 편향으로 오해받기 쉬운 통일운동, 학생 사회·한국 사회의 변화를 읽지 못하는 타성 등이 문제가 되고 있지요. 내부적으로 학생 사회에서의 지지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외부적으로는 공안검찰의 집중적인 탄압의 표적이 되어 활동은 더더욱 위축되고 참으로 힘든 시기를 겪게 된 것입니다.

한총련이 혁신을 위해서 노력한다지만, 아직 멀었습니다. 한총련과 학생운동은 학생 사회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한총련은 여전히 학생 대중들의 지지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고, 국민들의 지지도 매우 낮은 상황임을 직시해야 합니다. 최근의 총학생회 선거결과는 그 지점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야 할 길은 아주 멀다

끊임없이 대중과 함께 호흡하기 위해서 혁신과 성실한 실천을 멈추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 점들을 학생운동의 선배 세대를 비롯한 많은 이들은 끊임없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친구들이 학생회장에 당선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수배자가 되어 쫓기고 감옥에 가는 이 부당한 현실을 용인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의 학생운동이 싫다고 해서, ‘우리 사회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가능한 만큼의 사회참여’마저 외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곳곳에서 청년학생들의 따뜻한 관심과 사회참여를 너무나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사회참여운동이 중요한 것은 당대 학생운동의 정치적 효과 때문만은 아닙니다. 한국 사회의 역동적 변화 속에서 ‘386’이라는 세대의 집단적 흐름과 행동이 큰 역할을 해낸 것처럼, 학생운동은 비단 학생운동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운동에 공감한 이들이 사회·정치·경제적 민주화에 대한 새로운 세대적 기여로 연결되는 점이 오히려 더 중요합니다. 즉, 학생운동을 직접적으로 수행했든, 소극적 지지자였든 그 정신과 가치, 행동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세대가 사회로 나오면서, 사회 구석구석의 더 나은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 실천하는 분위기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죠. 또 그 흐름은 1997년 정권교체에 이어 개혁적인 대통령 후보의 당선, 진보정당의 선전으로 이어졌습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이 사회에 진출해서 우리 사회의 변화의 한복판에 서게 되고, 그 변화를 추동하는 주역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난 2002년을 기억하시죠? 국민경선, 붉은 악마, 촛불시위, 노사모, 대선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역동적인 과정에서의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함께 참여했습니까? 앞으로도 참여는 계속되고 확산되어야 합니다. 사회 곳곳에서 참여가 넘쳐날 때 우리 사회에서 부패와 권위주의, 독재와 냉전의 유산은 서서히 또는 급격히 사라질 것입니다. 국민주권에 기반한 주인의식, 참여민주주의, 토론문화, 광장에서의 교감과 공동체 의식이 확산될수록 우리 사회는 더욱 투명하고 합리적이며 인간적인 사회로 나아갈 것입니다.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온몸으로 진행했던 30, 40대에 비해 20대들의 참여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근 100년간 한국에서 항일운동, 민주화운동, 통일운동을 책임져온 청년학생 세대가 사회참여에 무관심하다는 것은 큰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학생운동의 부진과 청년실업 문제, 대학 사회의 변화, 대학과 시민사회간 소통 부족 등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앞으로 우리 사회를 짊어질 20대, 특히 청년 대학생들에게 거는 우리 사회의 기대는 여전히 무척이나 높습니다.

여러분들이 맘껏 누리고 있는 지금만큼의 민주주의와 자유가 가능했던 것은 수없이 많은 선배들의 목숨을 건 투쟁과 저항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도 후배들에게 지금보다 더욱 좋은 사회를 물려줄 의무와 책임감이 있지 않습니까? 지금도 한국 사회는 분단극복과 평화정착, 외세를 극복한 통일, 참된 민주주의의 발전과 민중의 생존권·복지 실현, 남녀평등 실현, 대학개혁·교육개혁, 소수자 인권을 포함한 인권보장 등 가야 할 길이 많습니다. 여전히 평화와 인권, 사회복지, 다수 국민들의 인간다운 삶은 여전히 곳곳에서 위협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 문을 두드려보라

지금 당장 대학 안에서 사회참여 동아리나 과 학생회와 함께하는 것도 좋고, 가까운 곳에 있는 수많은 지역단체, 시민사회단체, 환경단체, 평화단체의 문을 두드려보는 것도 좋습니다. 즐거운 사회참여와 보람이 여러분을 기쁘게 반겨줄 것입니다.

기성의 수구적 질서를 비판할 수 있고 저항할 수 있는 청년 대학생들이 있는 한, 우리 사회의 아름다운 변화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순수하고 정의롭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이해관계를 떠나 판단할 줄 아는 청년 대학생들의 문제의식과 사회참여가 우리 사회를 더 아름답게 변화시킬 것이고, 또 그렇게 되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여러분들이 희망의 근거인 까닭입니다.

이 글은 현재 시민사회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젊은 활동가들이 대학생 여러분께 드리는 편지입니다. 대학교 91학번 활동가들로 구성된 ‘시민사회청년활동가모임’에는 현재 20여명의 활동가들이 소속되어 있습니다.(정리: 안진걸 참여연대 회원참여팀장, 최현진 전대협 동우회 전 간사)



profile
80년대에 태어나 90년대에 성장해 2000년대를 살고 있다. 사회학과 정치학을 전공하지만, 스스로를 역사학도라고 생각한다. 면식과 만화, 수다와 어린이를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