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1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글을 쓰기 싫었다.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키토 아야 <1리터의 눈물>을 읽다. 불치병과 싸우는 소녀의 수기. 일본판 <스무살까지 살고 싶어요>라고 해도 될까. 대단히 절절하고 슬픈 글이지만, 이런 책을 읽고 슬퍼지고 싶지는 않아서 주섬주섬 페이지를 넘겨버렸다.
사방천지에 밤꽃 냄새가 한창이다.
말년 휴가까지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실은 요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 막간의 슬럼프.
홉스봄의 <제국의 시대>를 반 정도 읽던 상황에서 책을 압수당했다. 새로 부임한 高學力 포대장의 짓이다. 물론 전임 포대장에게 허가를 받은 책이다. 전임 포대장과 현 포대장의 차이는 에릭 홉스봄이 누군지 아는가의 문제로 보인다.
화가 나는 것은 이 상황에서 포대장이 지적능력의 차이로 상대를 제압하려는 유치한 수작 때문이다. 99학번 따위에게, 너보다 책을 읽어도 몇배는 읽었다느니(근 2년간 보아온 녀석이다. 어떤 책 읽고 뭘 떠드는 건지 한 눈에 보인다.) 나도 학부시절 마르크스 엥겔스 수업을 받았다느니(좋겠수다. 수업 받아서) 너 밖에서 뭐하다 온 건지 다 알고 있다느니(아~ 한총련?) 하는 소리를 들으니 혈압이 오를데로 올라 버렸다.
어쨌든 그간 읽던 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이 생겨 버렸고, 남은 한달간 무엇을 할지 고민해봐야겠다.

6/30
군 생활이 보름 정도 남았다. 간부들과의 신경전으로 꽤 예민해져있다.
나가게 되면 이 곳에서의 2년은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까? 생각 해보면 우울해진다.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다. 차라리 없었으면 좋았을 많은 일들
7/1
박형서 <자정의 픽션>을 읽다.
재밌는 소설들이다. 발랄하고 신선하다. 하지만 내 취향은 아니다.

7/2
임지현 <외국어 8전무패>
혹시나 하고 읽어보니 역시나... 저자가 여자였다.
영어 공부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중이다.

7/3
고우영 <홍길동전>을 손에 넣다. 지금껏 본 고우영 만화중 최악이다.
고우영이 80년대 들어서 왜 중국 고전이 아닌 조선시대 야사로 노선을 바꿨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였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만화의 세계가 늘 그렇듯 내가 모르는 속사정이 있을지도 모른다.
사정을 떠나서 복간의 의도는 좋은데 채색은 괜히 했다. 원작의 느낌을 갉아먹고 있다.

7/4
한호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 디자인 하우스
귀엽게 만든 vocabulaly
말련이 되니 여기저기 태클이 많다. 왜 이리 짜증나는게 많은지...
무엇보다 가기전에 뽕을 뽑겠다는 간부들을 볼 때마다 환멸이 든다. 앞으로 안본다 이거지... 저들은 날 人間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기계로 보는 것이다. 匠人은 그에 따른 사회적 대우와 체면을 유지할 수 있었건만...

7/5
작년에 군단에서 실시한 대규모 화력시범훈련의 백서를 읽게 되었다. 편집이 엉성하긴 하지만 백서의 꼼꼼함은 그간 보았던 어떤 백서보다도 뛰어났다. 군대가 이런 건 잘한다.
7/6
<야심만만 심리학>
할 게 없으니 시시껄렁한 책들이나 읽고 있다.

7/7
윤대녕 <눈의 여행자>
밤잠을 설쳐 뒤척이다 찾은 책. 단숨에 읽어버렸다. 책은 잃어버린 아이를 찾아 해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행문학이고 추리소설의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계속 긴장을 하며 읽게 되었다. 마지막엔 반전도 있다.
소설적 재미를 뒤로하고 男性에게 상처라는 것은 어떻게 자리잡고 작용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다. 그들도 女性 이상으로 상처를 잘 받지 않는가.

7/8
몇 가지 생각을 해본다.
단골집을 많이 만들고 싶다. 주중에 한 번은 단골 술집에서 혼자 술을 마셔보고 싶다. 단골식당에서 국수 한 그릇을 먹고 싶다. 시장통을 쏘다니며 혼자 오뎅이니 순대니 하는 것을 사먹고 싶어졌다. 가급적 혼자 여러 가지를 해보고 싶다. 다시 말해... 혼자있고 싶다.
한 걸음 한 걸음. 다시 시작
조금씩 영어 공부를 해보고 있다.
7/9
이순원 <19세>
단순한 성장소설을 특징있게 만든 것은 農業에 대한 話者의 입장이다. 그렇다고 저자가 근대에 대한 동경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주인공의 農業에 대한 羨望은 재래의 농업이 아닌 과학화된 근대적 농업이었다.
책을 읽고 배꼽 잡고 웃은 대목이 있어 여기 그대로 옮겨본다.
19세 이후의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3년후, 중간에 이태동안 잠시 쉬었던 학교(고등학교)를 다시 다닐 때에도 한 번 할머니를 모시고 학교를 간 적이 있었다. 학교에서 담배를 피우다 걸린 것이다. 다섯 명이 한꺼번에 걸렸는데, 훈육 선생님이 교련 목총 부러진 것을 손에 들고 “빳다 50대 맞고 말래, 아니면 정학 맞을래?” 해서 다들 빳다를 맞겠다고 했다. 나는 대답을 않고 있다가 마지막 차례가 되어 “저는 빳다를 맞을 수 없으니 차라리 정학을 맞겠습니다.”하고 개겼다. 똑같은 비행 사실을 두고 누구는 빳다로 훈방하고 누구는 정학을 주고 할 수 없는 일이어서 교무실에서 회의가 열리고, 아버지의 고등학교 동기생인 교감선생님은 정 그렇게 체벌(그게 체벌이냐? 사람 잡는 일이지. 빳다 50대라는게) 대신 정학을 받고 싶으면 부모님을 모셔오라고 했다.
이 때에도 할머니께 제발 아버지 한테는 말하지 말고 도와달라고 말씀드렸다. 교감선생님이 아버지 친구인 것도 얘기 했고, 훈육선생님의 나이가 얼마인지도 얘기했다. 학교를 가던 중 할머니는 가장 헐한 새마을(40원) 한 갑을 사서 그것 한 개비를 피워 보시더니 이런걸 무슨 맛으로 피우냐고 나무랐다.
학교에서도 할머니는 교무실에서 교감선생님과 훈육선생님을 만나 의자에 앉자마자(나는 그 옆에 고개를 푹 숙이고 서있었다.) 새마을을 꺼내 입에 물었다. 교감선생님이 얼른 불을 붙여주자 할머니는 교감선생님과 훈육선생님에게도 그것을 권했다. 선생님들이 사양하자 할머니는 선생님들이 피우는 고급 담배가 아니고 제일 싼 담배라서 안피우냐고 물었고, 그 말에 교감선생님도 어쩔 수 없이 그것을 받고, 훈육 선생님고 교감선생님이 받으라고 해서 마지못해 그것을 받아 불을 붙였다. 두 선생님이 내가 담배를 피운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그게 무슨 죄가 된다고 그러십니까.” “학교에서 학생이 담배를 피우면 처벌을 받습니다.” 그때 할머니가 바로 호통을 쳤다. “그럼 이놈들아. 내 자식 친구놈인 너하고, 이 이런놈이 내 앞에서 맞담배질 하는 것은 죄가 아니고?” 놀라서 불도 끄지 못한 두 선생님의 벙찐 얼굴에 대고 할머니가 말했다. “느들은 시방 나하고 맞담배질 했다만은 야가 느덜하고 맞담배딜 하더냐? 그래도 염치를 알고 예의를 알아 숨어서 피운 것 아니냐? 야가 나이가 스물이다. 염치를 알고 예의를 알면 타일러도 말을 듣는다. 시방 느들이 이 늙은이 한테 한 행우에 대면 그건 죄도 아니다.” “그게 저 할머니......” “내 느덜 야한테 어떻게 하나 두고볼기다. 느들 시방 한 짓 알기로.” 할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유유히 교무실을 나서며 다시 한 마디 했다. “니는 친구 애미가 나서는데도 안 내다 보냐?” 완전한 한 판 승이었다. 할머니는 역시 나보다 고수였던 것이다. 그러나 차라리 빳다를 맞고 마는게 낮지. 그 일로 내용이 다른 반성문을 50장이나 썼다.
10일 남았다. 두근두근. 불안과 기대

7/10
<팝툰> 2호를 보았다. 1년을 넘길 수 있을까?

7/13
이곳의 생활도 얼마 남지 않았다. 末年에 빡빡한 일정에 치이느라 평온한 삶은 온데 간데 없다. 이런저런 스트레스가 極을 향해 달려간다.
7/14
시간이 지나 고참이 되니 나 역시 옛적 선임들과 하나도 다를게 없었다. 처음엔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에 고통스러웠고, 나중엔 내가 남들과 같다는 것에 고통스러웠다.
7/15
원래대로라면 오늘이 末年休暇날이다. 씁쓸하다.
며칠전에 高大 RT들이 병체험으로 들어왔다. 연신 “세상에, 이런데서 어떻게 살아요?”라며 탄성을 자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