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졸부가 좋다. 어쩌다 함께 먹게되는 호사스런 음식이 좋다. 거드름을 떨며 쏟아내는 말도 안되는 모험담도 좋다. 별게 아니다. 그저 氣운이 센, 활력있는 사람이 좋다는 말이다.

처음에 후쿠오카에 왔을때, 함께 살게될 룸메이트는 듕귁 부호의 아들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좀 기생해 살아보려는 현실적 의지였다만, 막상 와서 하는걸 보니 갑부와는 거리가 먼거 같다. 왜 서양철학을 전공하냐는 나의 물음에, 그는 서양철학은 하는 사람이 없어서 장학금 타기가 쉬웠다고 답했다.

대게 학교에서 보게된 유학생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내가 알게된 법대의 조선사람들은 죄다 기혼자. 한달 사는데 얼마나 돈이 드냐는 질문에 "3만엔이면 떡을 친다"라고 말하자. 다들 솔로가 부럽다며 감탄사를 내지른다. 나야 그렇다 쳐도 처자식까지 데려온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대게 아이들은 아팠다. 젊은 아버지들은 늘 병원을 들락 거렸다.

JLPT를 봤다. 그간 공부를 제대로 했으면 붙었을까? 아마 붙었을 것 같다.

집에서 시험장으로 가는 길은 13키로가 좀 넘었다. 빨리 가면 자전거로 1시간이 좀 넘게 걸렸을 것이다. 장마비는 장대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비가 너무 많이 오면 우산을 쓰고 자전거를 타는게 좀 위험하다. 결국 비옷을 입고, 모자를 쓴 뒤 자전거를 탔다. 빤쮸까지 흠뻑 젖었다. 시험장은 에어컨 빵빵 틀어대는데 아주 죽는 줄 알았다. 감독관이 나보고 덥지 않냐고 묻는데, 한 대 쳐주고 싶었다. 게다가 1교시에는 오줌이 마려서... 기절할 뻔 했다.(웃지마라! 나 그때 심각했다.)

1교시 독해와 어휘는 좀만 공부하면 패스 할 것 같았다. 그런데 2교시 청해는 답이 안나오더라.(한국식 입시교육의 피해자인듯~ 아, 난 입시교육 같은거 안받았는데...)

교환학생하는 냥반을 어케 알게 됐는데, 나보고 법대 대학원 가려면 어케 해야 하냐고 물었다. 왜 그런걸 나한테 물으냐고 반문하니, 내 지도 교수가 날 찾아가랬다(어라?). 그래서 책 열심히 읽으라는 하나마나한 말을 해줬다. 그리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으면 레인보우 플라자에 한국어 가르친다고 메세지 붙이면 뭐 하나 건질거라는 말도 들었다. 누가 한국어 따위를 돈주고 배우냐고 물으니, 그래도 하는 애들이 있단다. 그래서 기어코 레인보우 플라자 까지 가서 메세지를 붙이니 거짓말 처럼 떡밥을 무는 어린양이 있더라.
 
이번엔 제발 갑부를 만나자. 비싼 과외료좀 찜쪄먹자... 라고 생각했건만.

연락 온 냥반은 첫 전화부터 "님 일본어 딸리시지 않으삼? 내가 일본어 갈쳐줄테니, 한국어 수업료는 그걸로 퉁치삼~" 그래, 이 참에 일어 회화좀 어케 해야지...

실제 만나보니, 검소한건지 가난한 건지... 여튼 둘 다 지지리 궁상이었다. 마그도나르도에서 커피 하나에 감자튀김하나 시켜놓고 3시간 동안 한국어 발음 연습을 시켰다. 그게 저녁시간이었는데, 이 냥반도 돈이 정말 없었나보다(아님 상대방이 굉장히 재수없어서 땡전 한푼 쓰기 싫거나). 결국 조선말이나 가르치고 저녁이나 얻어먹으려는 나의 알량한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둘다 어찌나 음으로 양으로 가난하다는 시그널을 보냈는지, 다음에 만날땐 자연스레 식사시간은 피해서 만나자고 합의를 보게 되었다.(찻집에서 보자는데, 이것도 걱정이다. 차가 무슨 10엔 20엔 할 것도 아니고...)

죽어라고 비만오는 이놈의 장마. 죽어라고 비맞으며 자전거 타고, 죽어라고 아야어여오요우유으이를 외치다가, 다시 죽어라고 비맞으며 집에 왔더니 몸이 개떡이 됐다. 아침에 시험장 가기전에 먹은 신라면 한봉지 말고는 아무것도 못먹고 죽어라고 자전거 타고 떠들어 대다보니, 집에 올 때 쯤에는 정말 현기증이 나더라.

돈많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 하는데, 이게 뭐 생각만큼 안되네.
profile
80년대에 태어나 90년대에 성장해 2000년대를 살고 있다. 사회학과 정치학을 전공하지만, 스스로를 역사학도라고 생각한다. 면식과 만화, 수다와 어린이를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