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후보단일화가 아니고 정책연합이다 세상읽기

재 보궐 선거가 끝났다. ‘예측’과 달리 한나라당이 유리한 결과가 나왔다. 지난 지방선거와 사뭇 달라진 양상이다. 서울 은평 을에서 이재오 후부가, 충북 천안 을에서도 한나라당 김호연 후보가 각각 당선됨으로써 ‘정권심판’이라는 민주당의 노선은 퇴색하게 됐다. 이런 결과를 낳은 책임의 상당 부분은 민주당이 져야만 할 처지이다. 민주당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원인을 적절하게 파악하지 못했던 것 같다.

지방선거보다 더 ‘끼리끼리주의’가 작용할 수 있는 국회의원선거에서 이들은 안이한 후보공천과 선거 전략으로 일관했다. 낡은 정치인을 귀환시키고, 구태의연한 ‘후보단일화’를 재탕함으로써 자멸의 길로 접어들었던 것이다. 한나라당은 강용석 의원이나 유명환 장관의 실언들이 더해져서 위기를 맞이하는 것 같았지만, 재빠른 대처로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현실성이야 어떠하든, 이명박 정부가 최근 보이기 시작한 ‘친서민 행보’도 ‘변화하는 정부와 여당’이라는 이미지를 유권자들에게 심어주었을 것이다.

기왕 쇄신이 문제였다면, 유권자의 입장에서 검은 고양이든 하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되는 일이다. 다시 말해서 한국에서 정당에 기초한 대의제 민주주의는 일종의 장기판 노릇을 할 뿐이다.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도 이런 모습은 뚜렷하게 드러났다. 중간계급의 시민사회가 보수 양당을 장기판의 말처럼 사용해서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려고 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민주당은 이런 판세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새로운 이미지를 전혀 보여주지 않은 채, ‘후보단일화로 정권심판’이라는 낡은 전술만을 앵무새처럼 되뇌었다. 재보궐 선거에서도 정당정치 대 시민사회, 또는 대의제 민주주의 대 직접 민주주의라는 한국 사회의 정치구도는 유령처럼 어른거리고 있다. 언론들은 앞 다투어 ‘한나라당 압승’을 외치고 있지만, 과연 ‘압승’이라는 기표로 선거에서 발현된 욕망을 제대로 수렴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시민사회의 요구는 실제로 한나라당보다 크기 때문이다. 얼마나 시민사회의 요구를 잘 관철하는가, ‘표준어’로 말하자면, 얼마나 ‘국민의 말을 잘 듣는가’에 따라서 정당정치의 구도는 요동칠 것이라는 사실을 이번에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 ⓒ 연합뉴스 
 
상 황이 이러한데도 민주당의 정세균 대표는 ‘패인’을 늦은 후보단일화에서 찾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후보단일화가 늦어서 그렇다는 것은 역시나 ‘남 탓’에 열중하는 민주당의 구태의연함을 그대로 노출시키는 것이다. 책임 소재가 후보단일화에 소극적이었던 ‘다른 후보’에게 떠넘기겠다는 의도 이상을 이런 발언에서 읽어내기 어렵다. 문제는 후보단일화가 아니라, 후보단일화를 통해 만들어지는 대립전선이다. 이 대립전선을 못 만들어낸 것이다. 민주당은 ‘정권심판’이라는 명분 이외에 다른 쟁점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정 국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주도할 수 있는 능력이 과연 민주당에게 있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아무런 정책적인 참신성을 보장할 수 없는 ‘민주당으로 대동단결’이 얼마나 공허한 구호인지, 이것이야말로 이번 선거가 일러주고 있는 교훈이다. 천안을에서 당선된 김호연 후보가 대표적이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의 천안 유치’를 내건 전략이 주효했다는 것은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유권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정권심판은 지방선거에서 일정하게 이루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한국의 시민사회는 정의와 이익을 동시에 가지려고 하는 이중성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민주당은 몰랐던 것일까. 정의의 명분을 살려줬으면 이제 먹고사니즘을 충족시켜줄 ‘정책’이 있어야한다. 과연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 민주당은 어떤 차별적 정책을 내세웠던가.

이번 선거에서 증명된 것은 ‘후보단일화’는 무소불위의 도깨비방망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민주당은 전가의 보도처럼 후보단일화를 써먹으려고 하지만, 문제는 후보단일화가 아니라 차별성이다. 이 차별성은 유권자의 이해관계에 구체적으로 내려앉은 정책을 통해 등장할 수 있다. 정치는 시민사회와 정당정치의 갈등 자체에서 발생하는 것이지, 정당 자체가 정치화하는 것이 아니다. 정당정치를 혐오하는 정서가 한국의 시민사회에 깔려 있다. 정당은 시민사회의 요구를 국가에 고정시키는 역할을 하면 그만이다.

이런 상황에서 문제는 후보단일화가 아니고 정책연합이라고 할 수 있다. 시민사회-유권자-국민은 구체적인 삶과 맞닿아 있는 이해관계를 정당정치가 실현시켜주기를 요구한다. 이 요구의 행위 자체가 바로 정치의 존재기반이다. 따라서 진보개혁세력은 일방적인 후보단일화로 다양한 정파들의 씨를 말려버릴 것이 아니라, 다양한 소수 정당들을 활성화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해서 ‘정책연합’의 방식으로 시민사회의 요구를 수용해야할 것이다. 민주당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단일화한 후보들이 같이 뛰어준다는 ‘해괴한 발상’을 거두고, 유권자들의 요구에 부합하는 다양한 정파적인 정책들을 실현하기 위해 여러 ‘정치들’이 함께 연대한다는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언제까지 네 편 내편 갈라서 내편에 표를 몰아주는 것이 정치의 전부인양 떠들어대는 헛소리나 듣고 있어야할 것인가. 정치는 스포츠가 아니고 투표는 응원전이 아니다. 정치인이라면 이제 스포츠는 그만하고 정치를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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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에 태어나 90년대에 성장해 2000년대를 살고 있다. 사회학과 정치학을 전공하지만, 스스로를 역사학도라고 생각한다. 면식과 만화, 수다와 어린이를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