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본의 치바
현에서 갑
툭튀하여 교토제
국대학 의학부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참고로 교토 의학부에서 미군 포로에 대한 생체실험을 자행했다는 말이 있는데, 그 행위가 행해진 곳은 교토제대 의학부가 아니라
규슈대 의학부다. 규슈대 의학부 인체해부사건에선 자그마치 실험을 명령한 해군 장교들이 산채로 해부된 미군 병사들의 간을 먹었다는
혐의로 기소되기까지 했다. 참고로 이 학교 관련의 유명한 한국인 희생자도 있으니, 바로 "윤
동주" 시인이다. ㅎㄷㄷ 큐슈대 항목 신설시 이전 예정
그 후 1921년 육군병
원과 육군군의학교에서 군의로 근무, 대학원 과정으로 교토제국대학에 복학해 세균학, 위생학, 병리학을 연구한다.
참고로 이곳 터에서는 89년, 100여구의 정체 불명 인골 더미가 발견되었고 그 상당수에 드릴, 톱 등의 흔적이 남은 상태였다.
이시이는 나중에 이곳에서 교관으로도 근무했다. 일본측의 해명은 전시 사상자의 부상 상태 연구를 위해 메이지 시대부터 수집한
견본들이라고 하는데, 그렇다고 보기에는 미묘한 점이 많아서 일본 국내에서도 의문을 표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성격은 지극히 이기적이며 권력욕, 명예욕에 가득 찬 놈이었다. 군에 입신한 후에도 군의관 계급이 중장까지로 제한된 것에 자주
불만을 터뜨렸다. 부대 예산을 착복하여 궁궐같은 대저택을 짓기도 했다.제
1차 세계대전 이후 1925년에 체결된 제네바 협정에서 생물학 및 화학무기의 군사적 활용이 금지된 것을 해외 유학 중에
알게 된 이시이는 세균무기의 엄청난 유용성을 실감하고 귀국 후 그 필요성을 설파했다. 이 결과 일본 군부 내에서 생물학전 및
화학전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전문 연구소가 다수 수립되었다. 그리고 그 부대 중에 그 유명한 "관동군 방역급수부", 일명
"731부대"가 있다.
여기까지만 요약하면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평범....한 견
공자제분이라 할 수도 있겠으나.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 작자는 나치
독일의 '죽음의 천사' 요
제프 멩겔레와 함께 1,2위를 다투는 말 그대로의 인간 백정이었다. 아
우슈비츠에 멩겔레가 있다면 731부대에는 이시이 시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시이 시로가 처음 사령관으로 부임한 193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731부대, 즉 관동군 방역급수부는 평범한 방역 및
급수 전문 부대[1]였
다. 사실 일본군의 방역급수부 자체가 다른 지역에 설치된 모든 방역급수부를 포함해서 생물학 및 화학전 연구 기능을 포함하고
있었으나 관동군 방역급수부는 전장이 전장이라 현장에 물 공급하는 것만으로도 바빠서 그쪽 실험을
제대로 할 정신머리도 없는 상태였던 곳이다. 그러던 곳이 1941년 이후엔 바뀌었으니...
살아있는 사람 상대로 본격적인 생체실험을 자행한 것이 확인된 거의 유일한 방역급수부다.
실전 테스트 임무를 받은 방역급수부는 몇 곳 더 있으나, 실질적으로 개발 및 야외임상실험(즉 실전 테스트) 이전 기초 실험장으로
활용된 곳은 이곳뿐이다.
당시 연구원들은 실험 대상을 마
루타(丸太)라고 명명했으며(참고로 일어로 통나무라는 의미.) 그들이 지르는
일체의 비명이나 신음은 깡그리 무시하라고 세뇌를 받았다 한다. 731부대를 통해 희생된 무고한 민간인의 수는 약 3,000여 명
이상으로 추정되는데 주로 만주인, 조선인,
중국인
을 비롯하여 만주 거주 러
시아인이나 몽골인,
드물게 미
군과 영
국군 포로도 섞여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실험의 내용을 살펴보면...
살아있는 실험체에 탄저균, 천연두균 등의 바이러스균을 주사하여 결과를 지켜보거나, 살아있는 사람을 그대로 해부하여 내장을
빼내거나, 심지어 동물의 내장과 교체하는 실험도 하였다. 그리고 포로의 대량 처분에 독극물을 쓰면 돈이 들기에(;;;) 어떻게
빠르게 대량학살을 하기 위한 방법이 없을까 하다가 사람을 진공상태의 공간에 집어 넣어 죽이는 실험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어떨때는
마취를 하지 않고 실험을 했으며, 총기 관통력 테스트를 한다고 산 사람한테 총을 쏘는가 하면 저온에서 몸의 세포가 죽어가는
과정을 관찰[2]
한다고 멀쩡한 사람을 몸의 일부만 얼리면서 실험하는 등 인간이 인간한테 할 수 있는 짓은 거의 다 시도했다. 사람을 통째로
원심분리기에 넣고 돌리는 행위도 했다는데, 여기서 얻은 결론은 인간의 70%가 물이다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마루타 관련 소설에서는 폐기 처분된 전차에 마루타들을 집어 넣고 화염방사기 실험을 한 장면이 나오는데, 이를 진짜 했는지
추가바람.[3]
오죽 심한 짓을 족족 해댄 탓에, 비록 731부대는 아니지만 다른 곳에서 행해진 미군 포로 대상 인체실험 사실이
전범재판정에 보고되자 검사들이 처음에는 뻥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왜냐하면 많은 경우 생체실험도 그딴
식으로 하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기 때문. 의학적 상식을 가진 인간들이라면 그런 식으로 실험하려 들지 않는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었던 탓이다. 생각해 보면 알 수 있겠지만, 바닷물로 피를 대신할 수 있는지 실험해
본다고 하면 일단 어지간하면 배꼽을 안 잡을 수가 없다. (...) 뭐, 해군의 경우엔 물로 석유를 만든다는
사기꾼 말에 속기도 했다니 이해는 가지만. (...)[4]
그러나 이들에 대한 학살도 나중에는 의미가 사실상 없어져 버렸다. 731부대는 겉으로는 전쟁터에서의 대규모 질병 발생에
대한 예방과 치료를 목적으로 하고 있었으나 공격무기, 특히 일단 무기부터 개발하고 보는 이상한 패턴이 자리잡는 바람에 백
신이나 치료제의 연구 따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5], 태평양 전쟁 내내 일본군은 생물학전 같은 거 안 벌어진
상태에서조차 병사자가 전사자와 맞먹는 수를 기록하는 병크를
터뜨렸고, 애써 준비만 해 둔 생물학병기는 소
련군의 침공에 대비한 것이었음에도 실제로 침공해 올 때가 되어선 관
동군 자체가 지리멸렬하여 생물학전을 감행할 상태가 아니었다. 이쯤 되면 병사한 일본군 병사들에게도 이시이 시로는 개새끼
맞다. 일본군이 실제로 세균전을 실험한 것으로 생각되는 전투를 보면 일본군 역시 전염병에 희생된 사례가 적지 않았고, 그걸 빼고도
일단 이시이 시로의 임무는 그들이 병에 걸리지 않도록 지원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
더구나 실제로 생물학전을 벌이려고 해도 제대로 생물학전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무기체계를 개발하는 데 성공하지도 못했다는
것이 더욱 안습이다. 저렇게 사람을 변태적으로 죽이는 데 열중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도무지 예방 및 치료법이 확실치 않은 병만
무기로 삼으려 들은 탓[6]인
지는 확실치 않지만, 뭔가 시도는 했어도 실제로 만들어내는 영역에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던 것. 병원균을 전투기에 실어 떨구려고
했는데, 처음에는 이걸 폭탄에 담았다가 폭발의 열 때문에 병원균들이 죽어버리는 일이 발생하자 도기에 세균을 담고 이걸 전투기로
떨구는 발상을 했다. 물론 실제로 쓰이지는 못했다.
포로들에게만 이랬으면 모를까(사실 여기서 '모를까?'라는 수사를 쓰는 것도 참...). 만주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을 상대로
페스트균의 살포 등을 저질러 수만명이 희생되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일본군도 꽤 죽었다. (...)
전후 이 인간 백정의 말로는 나름대로 비참했다. 귀국 후 전범 추적을 피해 자기 장례식까지
치르고 가명을 써가며 은신했고 기회가 닿자 미 점령군 당국에 부하를 보내 전범 면제와 맞바꿔
자기가 가지고 있던 세균전 자료 일체를 미군에게 넘긴다. 여기까지는 꽤나 현명하게 처신 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 나물에 그 밥이라던가... 부하들은 이를 기회로 이시이를 따돌리고 자기들끼리 점령군과의 거래를 독점하고서는
일본 의학계의 중진으로 발돋움하여 일본 녹십자(ミドリ十字)사를 만들어 명예와 돈을 거머쥐고 고위층으로 떵떵거리며 살았다.[7]
그에 비해 이시이는 전쟁 전에 착복한 재산과 전후 고향에서 벌인 사업[8]으로 번 돈으로 엽관과 매수에 공을 들여
어떻게든 옛날의 영화를 누리려 했으나 그즈음에는 이미 이시이의 존재 자체가 일본 의학계의 흑
역사였기에 옛 부하들에게 철저히 무시당했다. 결국 실의에 빠진 채 미군을 상대하는 윤락업소를 겸하는 여관 주인 노릇을 하며
살다가 67세에 암으로 뒈졌다. 존
나좋군? 올레!
하지만 암 쯤이야 이 인간말종이 받아야 할 벌에 비하면 거의 안락사나 다름 없었겠으나... [9]
참고로 731부대 관련자중에 전범처리 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쿄토대학 의대 학장을 지낸
인물도 731부대 출신이라는것은 충
격과 공포[10]
더구나 731부대는 다른 지역보다 유난히 안전하게 귀국한 사람이 많은 만주 주둔 일본군 중에서도 인원 손실율이 특히 낮은
부대라는 점에서 더욱 사람의 공분을 자아내게 한다. 외국에서만이 아니라 관동군 출신자들 사이에서도 무쟈게 까일 정도. 심지어
그들의 전범혐의 노출을 막기 위해 안전 철수를 명령하고 직접 편의를 봐 주었던 관동군 참모장교조차 전후에 "내가
도와주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치가 떨릴 만큼 자기네 안전만 챙긴 놈들"이라며 씹어댔다.
혹자는 그것의 공장을 이렇게 평한다. 귀신조차 무서워 오지 않는 이 세상의 지옥.
여담으로 731부대와 우리나라는 인체실험 희생자 외에도 의외의 분야에서 인연을 가지고 있다. 바로
유행성출혈열(한타바이러스 및 서울바이러스. 둘 다 1970년대 이후에야 발견되었다.)의 매개와 감염경로의 규명 과정으로, 이는
731부대 관련자가 미군의 위탁을 받아 연구를 실시한 결과이다. 그러나 역시 치료법은 고사하고 병원체를 발견한 것도 아니었으므로
그저 기본적인 예방수칙 하나만 정리하는 데 성공한 정도이며, 이 정도는 이미 미군 중 상당수는 이런 예방수칙이 나오기 전에 어느
정도 기본적인 대책을 수립[11]하고 있었다. 오히려 731부대
관련자가 미군에 협조했던 탓에 중국과 북한 상대로 미국이 세균전을 벌였다[12]는 공산권의 선전에 철저하게
말려들어 국제적으로 욕만 먹었고 지금도 계속 구설수에 오르고 있으니 득보다 실이 훨씬 많았달까. 또한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미국보다 한국에서 한타바이러스 백신을 먼저 개발[13]했다. 한국은 그렇다 치고 미국은 대체 뭐냐? 한타바이러스에 의한 각종 출혈열은 한국만이
아니라 미국에서도 풍토병인데!;;;; 안습
PS. 충격의 캐반전
전후 미군은 이시이 시로와 731부대가 넘겨준 자료를 처음에는 실제 사람을 대상으로 얻은 자료라고 매우 중요시 했는데, 그
이유는 당연히 '동물실험으로 얻을 수 없는 자료'를 기대했기 때문. 그러면서 자기들 거랑 비교해 봤는데, 대부분
동물실험으로 해도 충분히 실험 데이터를 얻을 수 있는 실험이라 미군이 가진 자료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이는 앞에 언급되었다시피
백신이나 치료제의 연구 따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 여기에 대한 반응은 '뭐야 이새키들!' 혹은
'속였구나!' 정도.
그러나 이후 처벌하려고 해도 못 했던 이유는 731부대 출신자들의 보호 사실이 한국전쟁 시점에서 공산권의 좋은 선전거리가
돼 있었던 탓이 크다. 미국으로서는 드러내놓고 그들을 처벌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부정하기도 미묘한 입장이었던 것이,
이제 와서 처벌하면 그동안 뭘 했냐는 욕을 먹을 테고, 부정하기엔 실제로 관련자들이 살아서 일본 의료계 중진으로 자리잡은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알려진 것과 달리 731부대 관련으로 그들의 구명을 적극 추진한 일선 미군 간부들의 이름은 도쿄재판을 전후한
시점에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고, 그 추인 관련 문제도 잘 알려져 있었다. 참고로 이것 때문에 731부대의 존재와 그
임무 자체는 모든 것을 부정하기 바쁜 일본 우익들도 전혀 부정 못 하고, 단지 생체실험만은 한 적이 없다는
강변에 그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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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급수 문제는 절대 간단한 것이 아니며, 특히 일본군처럼 병참이 아주 부실한 군대가 중국처럼 물이 좋지 않은 곳에서 싸울 때는
매우 끔찍한 문제다. 이 문제로 일본군이 잃은 병사는 역대 일본군이 치른 모든 전쟁에서 전사자보다도 많았다(…).[2] 과학동아에 실린 내용을 진짜라고 한다면 이 과정에 사용한게 임산부들이라고 한다. 당연히 실험당사자를 포함한 부대원들은 모두 반대했고 그러자 이시이 시로는 실험에 응하지 않으면 강제로 낙태시킨다는 협박을 통해서 실험을 강행했다고 한다.
[3] 사실 이 부분은 확실히 검증된 것은 아닌 것이, 몇몇 테스트는 주장되는 것과 실행시 나올 수 있는 결과가 완전히 달랐다. 실험이 아니라 사고로 바로 그 상황이 재현된 것들이 여럿 있는데, 좋은 예가 원심분리기 실험과 진공 실험. 이는 사실 스 너프 에 준하는 몇몇 포르노 매체의 것이 검증 없이 곧바로 대입된 탓이 있다. 또한 다른 곳에서 한 실험이 731부대에 의한 것으로 오해를 사는 것도 있다. 어떤 의미로는 731부대를 이용해서 일본 전역에 걸친 전쟁범죄행위에 물타기를 한 것도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4] 참고로 이 사기는 고노에 후미마로 총리대신이 "우리(집) 근처의 우물물은 대단한 것이라고 해요. 그 물이 가솔린이 된다고 합니다" 라고 말한 것을 해군의 높으신 분들이 "실험해 보자!" 라고 해서 발단이 되었단다..... 이뭥미.
[5] 생물학전 및 화학전의 상식은 사실 무기가 아니라 보호수단부터 만드는 거다. 그런데 이런 법칙은 생각보다 잘 안 지켜져서, 생물학전은 몰라도 적어도 화학전은 최초의 실행 사례였던 1915년 이프르 전투 당시 저지른 독일군도 보호수단은 만들 생각 않고 일단 뿌리기부터 하고 봤다. 사실상 2차 세계대전 시점에 있어서 독일이나 일본이나 생물학전 및 화학전은 무기가 있는데도 보호수단이 없어서 보복에 대응하기 힘든 탓에 쓸 생각을 못한 것. (...) 또한 만만한 민간인 대상 작전에선 두 나라 모두 거의 대놓고 생화학전을 벌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독일도 파르티잔 소탕 및 농성전 진압에서 신경가스 및 생물학병기 사용이 사실상 거의 사실로 밝혀져 가는 단계.
[6] 731부대가 주요 연구대상으로 삼았던 페스트는 아직도 안전한 백신이 없다. 치료에 쓸만한 약품조차 1950년대가 되어서야 미국에서 처음 개발됐으니 안습이라면 안습.
[7] 그러나 녹십자사도 시작부터 줄줄이 인체실험을 자행한 탓에 항상 잡음에 시달려 왔고, 결국 1980년대 후반 혈우병 치료제에 AIDS 환자의 혈액을 사용, 일본 내 혈우병 환자들 4,500여명 중 무려 2,000여명이 줄줄이 AIDS에 걸리는 사상 최악의 병크를 내지르고야 말았다. 결국 1998년 파산. 한국 녹십자는 이들에게서 기술지원을 받아 극동제약이 이름을 고친 것이며, 그 외에도 교류, 사업 협력을 했다. 이후 일본 녹십자가 망하자 협력했던 지분은 한국 녹십자가 다 챙겼다고.
[8] 매음굴을 겸하는 숙박업소와 실험용 흰쥐 농장이었다.
[9] 저렇게 한 번 동료들에게 버림을 받고 나서는 회개를 했는지 기독교로 개종하고 윤락업소 경영과 병행해서 동네 주민들에게 무상 의료 행위를 하며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도 위법으로, 이시이의 의사 면허는 1945년에 박탈됐으므로 걸리면 빵에 가게 돼 있었다.(...) 참고로 비슷한 짓을 한 요제프 멩겔레는 수영을 즐기다 뇌졸중 발작으로 물에 빠져 뒈졌다!
[10] 요시무라 히사토. 이시이의 대학 후배이자 동상 연구를 했으며 이후 쿄토대학 의학부 학장을 지냄.
[11] 당대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타바이러스에 의한 유행성출혈열은 미국 본토, 특히 서부의 풍토병이기도 하며, 많은 인디언 부족들이 이 병의 예방을 위해 쥐를 피하거나 보는 족족 죽이는 관습이 있었다. 한국전에서도 관련된 조치가 일선부대 병사들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12] 부분적으로는 실험했다는 징후도 있으나, 구두증언밖에 없는데다 증언 당사자가 중국군의 포로심문 과정에서 진술한 것이 전부로, 거의 전원이 송환 후 이를 부정했기 때문에 진실은 아직 미확인이다.
[13] 여담이지만 이호왕 박사 팀의 한타바이러스 백신은 한창 임상실험이 진행되던 중 충분한 야외 임상실험을 전제로 정식으로 생산이 허가된 후 곧장 군 대량접종 백신으로 결정되었다. 말하자면 군이 대규모적인 야외 임상실험 대상이 된 것. 이 때문인지 한타바이러스 백신의 접종지침은 면역을 2년 이상 유지할 필요가 없는 군인에게나 맞는 3차 접종(1년간 2회 후 12개월 후 1회 접종. 3차 접종 이후의 지침은 아직 없다.)까지밖에 없다. 참고로 제작사는 한국녹 십자. (...)
[14] 그의 마지막 마장기 갓초에는 사람의 뇌가 이식되어 있다.














다음달에 의학부는 꼭 가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