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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욱 外 <골뱅이를 요리하는 사람들> 사이間

괜히 읽었다. 건질게 없는 책이다.

친구 녀석이 개성으로 떠난다고 한다. 대규모 발굴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단다. 사학과 출신으로서 발굴이 얼마나 힘든일인지 대강은 알고 있다. 하지만 부러웠다. 오랜기간 외국에서 일을 하는 것이 내 또래의 젊은이들에게, 나와 같은 ‘미천한 출신’들에게는 쉬운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디 좋은 경험 쌓고 돌아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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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부터 어금니가 조금 깨졌다. 좀 긁어내고 때우면 될 것 같은데, 그 정도는 군대에서 치료를 받아도 될 것 같아서 사단 의무대로 외진을 나갔다. 7년만의 치과 진료였다. 알고보니 깨진게 아니라 충치로 속이 다 썩어있어서 테두리만 조금 남기고 다 깨부수더니 아말감으로 대충 매웠다.7년전에도 금박을 입힌 녀석이었다. 군의관에게 금 조각을 건네받았다.

“이거 진짜 금입니까?”

“18k쯤 될거야”

치료는 짧았지만 기다리는 시간은 길고 지루했다. 우연히 책을 발견하고 해치워 버렸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칠레의 모든 기록>

저자는 <100년 동안의 고독>으로, 노벨상 수상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내 알바 아니다. 난 노벨상에 관심이 없다.

르포르타주라고 해야 할까.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망명한 칠레 영화인이 조국 칠레의 현실을 담기위해 밀입국한다. 6주간의 촬영을 마치고 유럽으로 돌아간 리겔 미틴 감독은 장편 다큐멘터리 <칠레의 모든 기록>을 발표한다. 때는 바야흐로 1985년.

이 소식을 들은 노벨상 수상작가 마르케스(http://windshoes.new21.org/literature/marquez.htm)가 리겔 미틴을 찾아가 인터뷰를 요청한다. 감독은 촬영과정에 대해 일주일간의 구술을 해주었고 마르케스는 이를 세상에 내놓았다. 목숨을 걸고 촬영한 반체제 영화감독의 6주간의 기록, <칠레의 모든 기록>의 탄생이었다.

박진감 넘치는 모험으로 가득 찬 재밌는 책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건강하고 힘이 넘친다. 민중에 대한 애정과 변혁의 열정이 곳곳에 묻어난다.

마르케스 소설은 읽어본 적도 없고, 그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다. 마르케스는 콜롬비아 출신이다. 칠레와는 별다른 연고도 없지만 칠레의 정치 현실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이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 세계적인 작가는 국지적인 민족주의를 뛰어넘지 않고선 불가능한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다른 나라의 작가들이 한국에 대해 관심을 기반으로 작품을 쓸 때 한국 문학의 시야가 반도를 넘어서는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오에 겐자부로가 한국의 민주화 운동에 대하여 소설을 썼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한국의 중견 작가가 재일 조선인에 대해 글을 썼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방현석을 떠올릴 수도 있다. 방현석으로는 부족하다. 진부한 계몽주의가 필요하지는 않다.

며칠간 <자본의 시대>를 요약하고 있다. 사실 어려운 일은 아닌데, 간만에 머리쓰는 공부를 하려니 집중이 오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머리 안쓰는 공부를 심심풀이로 시작했다. 일본어 단어 쓰기를 하고 있다.

혀에서 자꾸 아말감 맛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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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本의 時代> 6장을 요약중이다. 지겹다. 10개의 장을 더 요약해야 할텐데, 언제끝날지 모르겠다. 잠시 햇볕이나 좀 쐬어야 겠다.

7장을 요약중이다. 스스로에게 한 약속이 아니라면 진작 그만뒀을 것이다. 집에 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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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보니 비비안 리가 나왔다.

“비비안 리 허리가 19인치 였던가?”

19인치인든 29인치인지든 남의 허리 사이즈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잠자고 듣던 당직사관이 묻는다.

“넌 어떻게 그런걸 다 아냐?”

난 황당하게도 사학과 출신이라 그렇다고 답했다. 사실 이렇게 둘러치는게 편하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그래? 나도 역사 좋아하는데, 좋아하는 역사학자가 누구야?”

답하고 싶지 않은 질문이 집요해진다. 뭐라도 답해야 할 것 같아서

“예전엔 EP톰슨을 좋아했습니다.”

라고 말하자, 화색을 띄며 나도 안다고 외치는 것이었다.(뭐, 뭐냐!)

알고 봤더니 녀석은 신학과 출신으로 목회자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면서 사관에 관심을 가져 많은 고전들을 독파한 양반이었다. 특히 아날학파의 주요 저작들을 모두 해치워 버린(물론 중교에 대한 관심의 연장선이지만) 독특한 양반이었다.

별일도 다있군... 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니, 상대도 무척이나 반가워 했다.

그는 나에게 이런 말을 전했다. 공부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외로움 이었다고, 남들은 이름도 모르는 뒤비나 자크 르 고프의 책들을 읽고 흥분 했지만, 함께 이야기 할 사람이 없었다고,  이상한 책이나 보는 이상한 사람 취급 받아왔다고, 친한 친구들과도 자신의 공부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없었다고.(뒤비나 고프가 어때서? 다 史學係의 주류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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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과 출신(?)이긴 하지만 뒤비나 고프를 읽었다는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다. 비전공자의 흥미위주의 점근이야말로 전공자에게는 무서운 자극이다.

잡담하느라 <자본의 시대> 진도가 안나갔다. 이번 주중으로 끝내보자

오늘은 별이 영롱하다. 안타레스를 보며 요동치는 전갈의 심장을 떠올려본다. 그래도 크리스천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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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작업을 좀 했다. 나 같은 녀석은 종종 생기는 노동에 대한 환상을 깨기 위해서라도 육체노동을 해둘 필요가 있다. 대기는 충분히 달궈져있고, 옷은 금새 땀으로 흥건해졌다. 역시 육체노동은 힘들다. 이쯤되면 환상따위는 땀처럼 나가버렸다고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삽을 들고 싶지 않았다. 노동은 힘들다. 나머진 후임들이 알아서 하겠지.

후덥지근한 여름이 시작되었다. 여름엔 시원한 레모네이드를 마시며 <스모크>를 봐야 하는데...

영화를 사랑하는 지인은 내가 <스모크>를 좋아한다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토록 아름다운 영화를 저런 시덥 잖은 녀석마저 반해버렸다는 것이 그렇게 싫었나보다. 인격과 취향이란 별개의 것이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 그러기에 우리는 아직 人間으로 존재한다.

보물이란 혼자만 알고 혼자만 간직하고 있을 때 더 신비스럽다.

아름다운 서점 직원에게 맥주를 대접하고 아주 말 같지도 않은 우스꽝 스런 춤을 함께 추고 싶다. 멕시칸이나 플토리칸이 동석한다면 더욱 즐거울 것이다.

틈나는 대로 붓글씨 연습을 하는데, 작전과장이 보더니 요즘 녀석치고는 잘 쓴다며 애매하게 추켜 세워줬다. 나이든 사람에게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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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피는데 지나가던 C군이 나를 보더니 “우리 부대에 비양심적인 사람이 있습니다.”라며 이야기를 꺼냈다.

고열로 의무대에 입실한 이틀간 누가 그의 지갑을 뒤져 PX를 이용한 것이다. 체크카드를 이용할 때 부모님 헨드폰으로 사용내역이 전송되게 했나보다. 커피를 사주고 다독이는데, 녀석이 울음을 터트렸다. 듣던 나도 너무 분해 어쩔줄 몰랐다.

이 사건이 어떻게 진행될 지 알 수 없다. 서무계원과 이야기를 해보니 이런 사건이 꽤 많았다고 한다. 조용히 넘어가거나 음지에서 처리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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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거침없이 하이킥>을 본다. 다시 고등학생이 되고 싶어졌다. 그 풋풋하고 재기발랄한 시절로 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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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에서 특별히 정신 교육을 나오셨다. 늘 그렇듯 교회에 모여 정훈장교의 말 같지도 않은 안보교육을 무시하고 자고 있었다. 끝날 때 쯤 되니 슬슬 잠이 깬다. 정훈장교가 갑자기 날 지목하며 묻는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차이점”이 뭐냐고.

순간 뭐라 답해줄까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이런 답은 짧고 간결한 것이 좋다.

“사회주의는... 간단히 말하자면 생산수단의 사적소유를 철폐하거나 제한-제제하려는 모든 사상과 운동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공산주의는 그중의 하나라고 할수 있는데... 간단히 말해 맑스-레닌주의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믿기지 않겠지만, 토씨하나 안틀리고 위와 같이 말했다. 말년엔 정말 겁대가리가 없어지나 보다. 정훈장교의 답은 이랬다.

“자네는 뭔 가 좀 알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틀렸어. 사회주의는 그런게 아니야. 사회주의는 공산주의로 가는 전단계(前段階)를 말하는 거야.”

순간 잊혀진 열정과 분노 따위가 부글부글 솟아올랐다. 세상에 틀렸다니! 날 뭘로 보고! 반박하고 싶었다. 니가 말하는 것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명확한 정의가 아니다. 레닌이 정의한 것을 이야기 했을 따름이다(국가와 혁명). 레닌이 소련을 건설하고 맑스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PT독재를 설명하기 위해 ‘사회주의’개념을 전유한 것이라고, 너야 말로 뭔 책을 읽고 그런 구닥다리 같은 소리를 하는가. 장담하건데 녀석은 <국가와 혁명>의 서문이나 <맑스주의의 세 가지 원칙>을 읽어보지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공산당 선언만 제정신 차리고 읽어도 저런 겁대가리 상실한 발언은 하지 않는다. 너야 말로 이념교육이 필요하다.

사실 앞선 발언만으로도 충분히 위험한 발언이라 뭐라 더 말할 수는 없었다. 주체사상의 ABC도 모르는 녀석이 와서 레닌주의나 말하고 있고... 잘하는 짓이라며 속으로 빈정거렸다.

그나저나 정권 바뀌면 대적관도 좀 손질을 볼 것 같은데... 그때 되면 다시 짱구 좀 굴리느라 고생 좀 할 것 같다.

오랜만에 마선생 글이나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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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처음으로 반딧불이를 봤다. 아버지가 어릴적 보았다던 도깨비가 혹시 저것은 아니었을까? 물론 내 아버지가 반딧불이와 도깨비불을 구분 못할 정도로 도회지에서 자란 사람은 아니다. 50년전 목격했다던 도깨비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한 동안 언론에서 6月 抗爭 20週年을 맞아 꽤 떠들썩하게 이야기를 한 모양이다. 떠들썩한 만큼 87년의 정치운동이 제도권으로 들어왔다는 반증일 것이다. 好不好를 떠나 당시 정치적 열정을 가졌던 이들이 제도 정치권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것이 사실이다. 한편으로 80년대 운동은 추억으로 남거나 화석화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얼마전 라디오에서 이에 대한 토론회를 녹화 중계해주었다. 이 동네에서 가장 잘 잡히는 국방방송은 새벽이 넘어가면 KBS로 바뀐다. 근데 바로 KBS로 넘어가자마자 문제의 6월 항쟁 토론회가 나온 것이다. 각 정당의 정치인과 시민운동가들이 참석한 심포지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부러 도발하려는 티가 확나는 최갑수 교수였다. 당시 쟁취하려던 것이 사실 BG민주주의였는데, 그 때 BG민주주의 자체를 너무 의심없이 받아들이고 요구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었다. BG민주주의라는 용어자체가 함께했던 참석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을지 모르겠다.(근무시간에 잠시 들은 거라 앞부분 밖에 듣지 못했다.)

개인적으로는 제도적 민주주의 쟁취보다는 대중의 등장이라는 면에서 80년대에 주목한다. 사회 문화적으로 우리는 80년대에 형성된 대중사회의 유산위에 서 있는 것 같다.

그 당시 거리에 서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 혹은 거리로 나섰으나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밥풀’들에게 80년대는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을까? 역사는 대게 승리자의 기억만 남기게 마련이다. 승리와는 상관 없는 사람들의 기억이 무시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박수를 보내든 야유를 보내든 87년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남겼을 것이다. 노동자들의 실질임금도 높아졌다.

그 점에서 오히려 7.8.9 대투쟁이 6월에 비해 묻혀진 것 같다. 난 직선제가 삶의 질보다 월등히 중요한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87년은 나에게 아무런 정치적 기억을 남기지 못했다. 물론 6월의 어느 날은 기억한다. 저녁에 방영하는 만화를 보기 위해 뿔뿔이 집으로 들어간 나와 친구들은 나와야 할 메칸더 브이는 나오지 않고 웬 넓데데한 아저씨가 알 수 없는 말만 웅얼거리는 모습만 봐야했다. 다시 골목으로 쏟아져 나온 우리는 격분했다. 대체 메칸더 브이보다 중요한 게 있기는 한 것인가. 저 재미없는 아저씨가 메칸더 브이보다 중요하다면 왜 그리 재미없는 말만 늘어놓느냔 말이다(더 재밌는 게 중요한 프로그램 아닌가!).

한참을 놀다 어둑해질 무렵 집에 들어갔다. 그날 따라 그 지겨운 기자회견 장면만 주구장창 시청해야 했다. 뉴스는 하루 종일 같은 장면만을 보도했다. MBC가 초인기 만화영화 메칸더 브이를 포기하고 방영한 것은 6.29선언의 생중계였다.

반상회에선 늘 정치 이야기였다. 반장집 평상에는 아줌마들만이 아닌 아저씨들도 모이기 시작했다. 반장집 아주머니는 한 달에 한 두번은 리플렛을 나눠주었다. 당시 보았던 선전물중 하나가 인상에 남는다.

보통사람 노태우는 인자하게 그린 반면에 무식한 김영삼과 빨갱이 김대중은 아주 우스꽝 스럽게 캐리커처를 그린 것이다. 일곱 살 아이의 눈에도 보통사람이라는 양반이 하는짓이 유치해보였다. 남을 흉보는 일은 유치한 애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잘나지도 못한 보통사람이라 이러는 것인가.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아줌마 아저씨들이 이 유치한 아저씨를 좋아라 했다는 것이다. 물론 YS나 DJ의 선전물이나 그들의 주장은 들은 기억이 없다.

이 모든 것은 나에겐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은 기억이다. 내 관심은 온통 이성관계에 있었다. 앞집에 살던 S는 나에게 노래를 불러주었다. 까만얼굴에 반바지를 입은 그는 늘 예쁜 센들을 신고 다녔다. 미인이었다. 큰 길가에 살던 K는 부모의 친분으로 친해졌다. 눈이 예쁜 아이였다. 누가 봐도 녀석이 날 좋아하는 분위기였다. 그해 겨울이 되면서 사이가 멀어졌다. 같이 유치원에서 연극을 했는데. K는 대본을 읽을 줄 몰랐다. 결국 내가 대본을 몇 번이나 읽어주며 연습을 도와줬다. 갑갑한 시간이었다. 글을 읽지 못해 버벅거리는 여성에게 난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이웃집 J가 내게 몇 번의 연애편지(?)를 보냈음에도 내가 심드렁한 이유도 비슷했다. 그녀의 편지는 도통 알아 볼 수가 없었다. 그냥 자기가 아는 단어의 총집합이었다. 동네에 81년생 여자는 수두룩했는데, 81년생 남자는 나 하나였다. 70년대생 누나들은 나에게 별명 하나는 붙여주었다. 왕자. 그들이 날 곱게 볼 리가 없다. 그래서 앞에 단어 하나가 더 붙었다. 지렁이. 자신의 동생과 스캔들이 나는 꼬마가 얼마나 미웠을까. 87년의 마지막 5개월간 4번이나 루머가 돌았다.(안믿어도 좋다) 적어도 나에게 87년은 스캔들의 해였다. 88년이 오기 전, 나는 참으로 의기 양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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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시대> 요약이 끝났다. 혼자 축하하고 있다. 이제 <제국의 시대>를 읽을 것이다.

profile
80년대에 태어나 90년대에 성장해 2000년대를 살고 있다. 사회학과 정치학을 전공하지만, 스스로를 역사학도라고 생각한다. 면식과 만화, 수다와 어린이를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