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케우치 오사무 [전후만화50년사]
1.
고교시절 3년간 내가 늘 궁금했던 것은 대체 운동권들이란 어떤 사람들일까. 맑스주의라는 게 대체 무엇일까, 와 같은 질문들이었다. 촌에서 자란 노동계급이 그런 것을 알 도리가 없었다. 대체 무엇이기에 그리도 사람들의 열정을 뽑아내는 것일까. 납득 할 수 없는 열정이란 있을 수 없다.
뭐든 주변에 있는 책부터 주워 읽던 게 그 즈음이었다. 내가 구할 수 있던 것은 죄다 반공서적이었다. 이를테면 맑스는 틀렸다, 는게 요점인데. 이것만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맑스는 이렇게 뻔히 구멍이 보이는 논리를 구사했단 말인가. 그렇다면 그 말도 안 되는 논리에 대한 무수한 열광은 어떻게 설명 할 수 있는 것일까? ‘무식’해서? 대상에 대한 설명에서 ‘무식하다’라는 논거는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무지할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논증이 뒤따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비판자가 아닌 그 안에 있는 사람의 직접적인 서술을 보아야 이해 가능 한 것이 있다. 나에겐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들이 그렇다. 한국이 일본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이미지 또한 그렇다. 한 차례 걸러진 형태로 대중들에게 전파되고 있는 견고한 담론의 벽은 실체를 향해 다가가지 못하게 막아서는 거대한 垓字와 같다. 해자 너머의 성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다가 갈 수 없는 카프카의 성인가. 아니면 성의 첨탑 밑에 도사리고 있을 - 볼 수 없는 그 무엇인 - 아 바오아 쿠인가.
2.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일본만화에 대한 이미지 역시 그 실체가 불확실하게 혼재되어 있다. 몇몇 여성단체를 비롯한 기성세대들은 일본 만화를 외설과 폭력이라는 색안경으로 바라보고 있다. 한국에서 만화 매니아라고 불리는 이들은 그에 대한 반정립으로서 일본만화에 대해서 선진문명과 비슷한 이미지로 받아들이고 있다(마치 1930년대 조선의 지식인들이 일본을 바라보는 것 처럼). 90년대 내내 한국의 만화담론을 휩쓸었던 것은 이 일본만화에 대한 인식논리의 각축이었다.
잠시 숨을 고르자. 그렇다면 일본에서 본 만화란 무엇일까. 그들의 입장에서 본 일본만화론을 통해 해자((垓子))를 건널 수는 없어도 해자 너머 성의 아웃라인은 조금이나마 추측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3.
우선 이 책의 간략한 서지 정보를 살펴보자. 저자인 다케우치 오사무(竹内オサム)는 1951년 오사카 출신으로 본명은 竹内長武. 아동문화 문학연구와 함께 만화평론에도 종사하고 있다. 오사카 국제여자대학을 거쳐 현재는 도시샤(同志社)대학 사회학부 미디어학과교수 재직중이다. 본래의 전공은 국어교육학으로 국어교재로서 만화를 연구해왔다. 오사카교육대학대학원석사과정을 수료했다고 한다. 공편저를 포함한 저작으로는 <데츠카 오사무론>, <카지와라 잇키梶原一騎를 읽는다>, <전후만화 50년사>, <어린이만화의 거인들>, <아동문화와 어린이학>, <만화-만화-만화>, <그림책 표현>, <아동문화> <오가와 미메이小川未明 ․ 하마다 히로스케浜田広介> <만화와 아동문학의 '사이'> <아동만화집> <만화비평대계>등이 있다. 책날개와 위키피디아를 통해 알 수 있는 정보는 이 정도.
그 외 책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내가 본 책이 2002년의 5쇄본이라는 것과 초판이 1995년에 나왔다는 것이다 출판사는 치쿠마책방. 치쿠마에 대해서는 대형 출판사라는 정보 외에는 없다.(그리고 70년대 후반에 한 번 도산했다는 것 정도.) 일본의 인문 사회과학 출판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지만 8년간 5쇄를 찍었다는 것은 어느 정도 꾸준히 팔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터넷을 뒤져보면 이 책의 일부를 번역한 페이지들이 검색에 잡힌다.(정확하게 이야기 하자면 제1장의 앞부분을 번역한 것과 6장까지 번역한 것.) 대게는 2000년대 초에 쓰여진 것들이다. 일정하게 한국에서도 읽혀지는 책인 것 같다. 이 책이 일본에서 가장 널리 읽혀지는 만화사 책인지(이를테면 손상익이 쓴 <한국만화통사>와 같은 대접을 받는 책인지), 이 책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는 어떠한지 더 이상의 정보가 없는 것이 아쉽다. 실은 정보가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더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이 맞다.
4.
이 책은 저자가 잡지 『倉』에 연재했던 「만화의 차별, 판금, 규제 “사건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일반적인 통사류의 책은 아니며 사건사의 소개를 기반으로 쓰여진 책이다. 여기에는 장단이 뒤따른다. 개별적인 사건의 정보를 잘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면 만화사 전반을 아우르는 관점의 부재가 단점이 될 것이다.
앞서도 이야기 했지만. 한국에서 일본만화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이미지들은 대게 몰역사적인 것이다. 마치 일본만화는 애초부터 그랬던 것 처럼 묘사된다. 그것이 일본만화에 호의적인 쪽이던 부정적인 쪽이던 일본만화는 원래 그런 것 인양 그려지곤 한다. 일본만화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일본만화는 외설-폭력의 문화로서 원래부터 그랬던 것이고 일본만화가 뛰어난 성취를 그리고 있다는 쪽도 원래 일본만화산업은 그렇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불안정한 한국의 만화산업을 걱정한다. 이러한 담론은 얼마나 현실에 근접한 것일까. 그리고 이 책은 그러한 일본만화가 어떻게 형성되어왔는지를 알려주고 일본만화 역시 대단히 유동적이고 불안정한 과정을 통해 오늘에 이르렀음을 알려준다.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한국에서도 화제가 된 만화 중에 遊人의 <ANGEL>이라는 만화가 있다. 내가 중학교를 다닐 적에(94~97) 친구들 사이에서 엄청난 반응을 불러일으킨 만화였다. 나는 안타깝게도 보지 못했는데, 당시 친구들의 반응은 어떻게 이런 만화가 있을 수 있을까, 였다.(참고로 저자인 遊人은 일본에서 20세기 3대 에로망가작가로 손꼽힌다.) 일본이라는 선진국은 자유가 흘러넘쳐 이런 만화가 버젓이 유통되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ANGEL>은 연재 중에 이미 일본에서도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당시 지방의 학부모 단체들은 <ANGEL>을 비롯 외설만화들에 대한 연재중단을 요구하고 법률제정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에 들어갔으며 심지어는 서점주인들이 체포되는 소동에 까지 이른다. 이 만화의 운명은 순탄치 않았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이러한 소동이 있은 뒤로 출판사는 자체규제를 시작하게 되면서 에로망가는 서서히 시장에서 그 영역이 줄어들게 된다.
90년대 초반 에로물(딱히 이런 종류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의 등장 역시 사회와 시장의 변화에 따른 것이다. 이미 70년대부터 에로만화나 로리콘만화가 존재해왔지만 이들이 문제되지 않은 것은 중소출판사에서 매니아들을 대상으로 발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형출판사의 시장지배력이 강화되면서 이런 컬트적인 문화에 손을 내밀었다. 결국 에로만화가 시장에 대량 유통되어 뒤이어 강력한 반대운동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한국에서도 비슷한 사례들은 자주 있어왔다.)
만화에 대한 세간의 곱지 않은 시선은 이때 만이 아니었다. 50년대에 이미 악서추방운동이라는 형태의 운동이 있었으며 60년대 이후 극화가 등장했을 때도 곱지 않은 시선이 늘 존재했다. 하지만 그 시선역시 역사적 시간과 궤를 같이 한다. 특히 50년대의 악서추방운동과 90년대의 섹스만화 반대운동을 비교하면 50년대의 악서의 기준은 상대적으로 평화를 부정하고 전쟁이나 폭력을 미화시키는 것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전후 일본사회에 드리운 반전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60년대 후반의 아카츠키 사건 역시 만화의 현상공모로 권총 모형등을 내걸었다가 군국주의를 조장한다는 대중의 비판에 직면한다.
하나의 사건을 더 소개하고자 한다. 데츠카 오사무 사후 벌어진 데츠카 만화의 흑인차별 논란이다. 데츠카의 작품 <정글대제>가 백인우월주의를 은연중에 드러낸다는 주장은 한국에서도 어느정도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조금 더 여론의 동향과 사건의 경과를 알 수 있다. 이 논쟁은 50년대 후반 야마카와 소지(山川惣治)의 <소년케냐> 비판을 연상시킨다. 소년케냐 역시 백인우월주의와 아프리카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에 빠져있다는 비판을 받게 된다. 이것을 표현에 대한 지나친 간섭이라고 해야 할지 인종주의에 대한 시민사회의 성숙한 인식수준이라고 해야 할지 나는 모르겠다. 하지만 야마카와 소지의 <소년케냐>가 발표되던 것이 50년대 후반이라는 것은 다소 생각 해 둘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이런 논쟁이 있었던가. 혹은 앞으로 가능 할 것인가. (<소년케냐>는 한국에서 <밀림의 왕자>라는 이름의 복제본으로 나와 크게 히트쳤다.)
5.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지나온 일본만화의 궤적이 한국 못지않게 순탄치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일본만화의 결이 매우 다양하며 이것이 어느 간단한 이미지로 환원시켜 이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궁금증을 키우는 책이라 할 수 있다. 기회가 되면 일본만화에 대한 다른 연구서도 볼 생각이다.
한국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는 점이 있다. 그간 몇몇 만화에서 재일조선인이나 한국인들이 부정적으로 묘사된 만화가 있었다. 이 경우 시민사회의 비판에 직면한 사건들이다. 한국만화중에는 노골적으로 반일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작품들이 많다.(이를테면 이현세와 허영만의 만화들) 이것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 것인지 나는 아직 모른다.
아 바오아 쿠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끊임없이 다시 오르다 보면 언젠가는 아 바오아 쿠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주:
아 바오아 쿠는 승리의 탑-인도의 라자스탄주 우다이푸르군의 치토르에 15세기경에 세워진 탑-에 살고 있는 전설의 생물이다. 형상도 색깔도 없으며 영적으로 각성한 순례자가 탑을 올라감에 따라 조금씩 모습을 보이여 탑의 꼭대기에 이르면 그 모습을 완전히 볼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순레자가 영적으로 완전히 각성하지 못한 경우 아 바오아 쿠도 불완전한 모습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전설에 따르면 지금가지 완전한 모습의 아 바오아 쿠를 본 사람은 단 한명만이 있다고 한다. 자세한 것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상상동물 이야기> 참조. (그리고 아 바오아 쿠는 <기동전사 건담>에서 지온의 우주요새 이름이기도 하다.)
이 책은 한국에서 번역되지 않은 원서이므로 구하기가 쉽지 않다. 내 경우는 일어 실력이 딸리는 지라 문장 하나하나를 직역해가며 읽었다. 해석한 내용은 홈페이지에 나와있다.(오탈자와 오역의 쓰나미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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