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성공회대학보, 비동시성의 동시성으로 보는 가족의 현대사

posted Sep 04, 200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성공회대학교학보에 실린 글

http://www.read-kpec.or.kr/UserFiles/%EB%8C%80%ED%95%9C%EB%AF%BC%EA%B5%AD%20%EC%9B%90%EC%A3%BC%EB%AF%BC.jpg


비동시성의 동시성으로 보는 가족의 현대사 - 대한민국 원주민

 

역 사적 통념은 여러 매개로 대중에게 각인된다. 지식인은 정사(official history)를 만들고, 미디어는 이야기(narrative)와 인상(image) 만들어 준다. 물론 여기에는 정치적 갈등과 그 구조가 담겨있다. 나 또한 알게 모르게 그런 역사적 통념에 중독되어 있을 것이다. 식민지 시기는 수탈과 억압, 그리고 이에 대한 민족해방의 투쟁으로, 해방공간은 좌우의 갈등으로, 50년대는 한국전쟁으로 인한 혼란과 무질서, 6·70년대는 군사독재와 경제개발, 80년대는 신군부와 민주화운동들의 이미지가 강하게 각인 되어있다. 머릿속 깊은 곳에 자리잡은 역사의 통념은 시대의 흐름을 빠르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이 正史의 여백에 담겨있는 다른 질서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최 규석의 만화 <대한민국 원주민>은 그러한 역사적 통념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만화다. 이 만화는 식민지 이후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지만 그 시선을 철저하게 개인과 자신의 가족에게 맞추어 우리가 그동안 통념에 눌려 보지 못했던 여백의 질서를 볼 수 있게 해준다.

 

만 화에 나오는 주인공의 가족은 시골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도시와 지방의 격차는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는 근대화의 모순을 드러나게 해준다. ‘모단걸’과 ‘마르크스보이’가 ‘네온싸인’ 찬란한 ‘경성’의 ‘딴쓰홀’에서 ‘자유연애’를 즐기고 있을 때, 여전히 시골은 반서(班庶)의 구별과 남녀의 유별(有別)이 온존했다. 야심 있고 똑똑했으나 구질서의 압박을 거부하지 못하고 끝내 도시로 가지 못한 주인공 아버지 시대의 이야기들은 새삼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그보다 흥미로운 것은 주인공과 그 누나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6·70년대에 태어나 성장했지만 그들의 성장기는 시계를 10~20년 전으로 돌려놓은 것만 같다.

 

내 셔널리즘의 세례를 받은 세대인 주인공이 부모 세대의 경험담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정사의 여백은 확연하게 드러난다. 70년대에 태어난 작가는 아버지의 어린 시절 반항을 일제에 대한 반감으로 이해하지만 실은 천황에게 절을 시키는 친구가 미웠을 뿐이다. 어머니에게는 좀 더 극적인 전쟁체험담을 기대하지만 어머니의 그것은 그저 담담할 뿐이다.

 

최 규석이 풀어놓는 이야기들은 진솔하기에 친근하고 정직하다. 그리고 잔인하며 생경하다. 그것은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가져다주는 낮설음이자, 캐릭터들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드러내는 작가의 정직한 자세에서 나오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도시의 산업화 시계와 상당한 오차를 두고 다르게 흘러간 농촌의 시간과 개인들의 삶을 발견한다. 이것은 거대 담론에 묻힐 뻔한 우리 주변의 삶이자 이제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원주민’들의 풍경인 것이다.

 

역 사학에서 보면 이는 그간 구술사나 미시사가 밝혀내고자 했던 가려진 민중의 삶과 맞닿아 있다. 최규석은 만화라는 매체로 생경하며 익숙한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생생한 시각적 즐거움으로 대중들에게 전해주는데 성공했다. 한편으로는 작가가 자신의 뿌리와 끊임없이 갈등하고 소통하는 과정을 통해 작품을 완성해 간다는 점에서 미국 만화가 아트 슈피겔만의 <쥐>와 비견될 만한 성과로 생각된다.

<대한민국 원주민>은 두 세쪽 분량 단편들의 모음이라 호흡이 짧고, 가족의 경험담을 정직하게 담았기에 일반적인 극화만화에 비해 극적인 재미가 높지는 않다. 그러나 작가는 예민한 문제제기와 독백을 통해 끊임없이 독자를 생각하고 고민하게 만든다. <대한민국 원주민>은 만화를 읽으며 역사와 사회, 가족과 개인에 대한 성찰을 가능케 하는 쉽지 않은 성과를 이루는 데 성공했다. 문학적 감성과 사회과학의 날카로움이 만화에서 한데 어우러져, 어떻게 읽어도 좋은 책이다.

최규석은 강도영, 김태권과 함께 사회 비판적 시선을 고집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만화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한 작가다. 강도영(강풀)이 웹툰(26년)에서, 김태권(김태)이 교양만화(십자군이야기)에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한데 비해 최규석의 그것은 정통 극화에 가깝다. 80년대의 성과를 간직한 채 90년대에서 성장했기에 그들의 만화는 21세기에 빛을 발하고 있다.

 

여전히 통념을 의심하고 새로운 시선으로 독자의 감성을 환기시켜준다는 점에서 최규석은 대한민국의 원주민이자, 이방인으로 자리매김 할 것이다. 매 작품마다 도약에 가까운 성장을 하고 있다는 것도 최규석 만화를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Who's 관리자

profile

80년대에 태어나 90년대를 성장해 2000년대를 살고 있다. 사회학과 정치학을 전공했지만, 스스로를 역사학도라고 생각한다. 면식과 만화 수다와 어린이를 좋아한다.


  1. No Image

    성공회대학보, 비동시성의 동시성으로 보는 가족의 현대사

    성공회대학교학보에 실린 글 비동시성의 동시성으로 보는 가족의 현대사 - 대한민국 원주민 역 사적 통념은 여러 매개로 대중에게 각인된다. 지식인은 정사(official history)를 만들고, 미디어는 이야기(narrative)와 인상(image) 만들어 준다. 물론 여기에는 정치적 갈등과 그 구조가 담겨있다. 나 또한 알게 모르게 그런 ...
    Date2008.09.04 Category언론 Reply0
    Read More
  2. 대한민국 원주민

    0. 일단 생각나는 것들을 뒤죽박죽 적어본다. 1. 문학과 지성사는 산업화 시기 자유주의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출판사로서 문학과 지성사는 꽤나 까다로운 곳이었다. 문학과 지성사에는 세 가지 철칙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자비출판, 아동서, 만화는 출판하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문학과 지성사에서 자비출판을...
    Date2008.08.19 Category책읽기 Reply0 file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Nex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