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와 백서] 정리를 위한 사적인 회고

posted Apr 02, 200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Extra Form

정리를 위한 사적인 회고

권병덕

1.

참여연대 회원모임 행동하는 젊음“와”는 2000년 4월에 시작되어 2004년 7월까지 활동했다. 나는 모임에 참여한 한 사람으로서 이 글을 통해 지난 시간을 반추하고 비판적으로 회고하고자 한다.

‘라쇼몽 효과’라는 말이 있다. 구로자와 아키라(黑澤明) 감독의 <라쇼몽>이라는 영화에서 비롯된 말이다. 이미 벌어진 사건을 두고 네 명의 당사자들은 서로 다른 진술을 한다. 서로가 회고하는 내용은 다르지만 그들 나름의 논리적 일관성은 있다. 물론 이들이 모두 거짓을 말하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과거를 재구성하는데 있어 객관적 사실을 추적해 내는 것이 가능한지 나는 회의가 든다. 아마 그 네 사람은 각자의 이해관계에 기반해 사건을 경험하고 또 회고했을 것이다. 나는 이것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참여연대 행동하는 젊음 “와”라는 모임의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이번 백서작업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무엇보다 나를 사로잡은 것은 서술의 어려움이었다. 여러 사람이 겪었던 시간을 이해당사자가 직접 서술하는 것은 쉽지가않다. 개인의 체험이라면 모르겠으나 모임은 개인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임에 소속되어 있었고, 이해를 함께했으며 또 많은 경우 서로 이해를 달리했다.더군다나 모임의 활동은 개인들이 모여 형성된 사적 영역에 그치지 않고 시민사회라는 공공영역까지 확장되어 있는 부분이다. 사회적 시간과 개인적 시간이 상충되는 부분이다. 뒤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모임 활동은 전체 시민사회, 사회운동의 판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있었다. 이 점이 회고와 서술을 어렵게 한다.또 하나의 어려움은 대부분의 모임 구성원들이 모임에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을 보냈다는 사실이다. 모두 민감한 시기였다. 사람들은 때로는 충돌했으며 한편으로는 많은 상처를 입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함께 모여 좋은 일을 한다는 사회운동이 꼭 개인, 집단, 사회 모두에게 득으로 남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나 역시 한 사람의 個人으로서 모임에서 함께 활동했던 다른 사람들의 사정이나 생각을 알지 못한다. 모두의 경험은 다를 것이고 모임을 체험한 시기도 다르다. 이를테면 10대에 모임활동을 한 사람과 20대에 모임활동을 한 사람의 생각은 당연히 다를 것이다.

이 글은 내가 겪었던 모임에 대한 이야기와 모임활동에 대한 내 주관적인 평가를 쓰는 글이다. 모임활동이 끝나고 백서를 준비하는 동안 어떻게 활동을 재구성하여 풀어낼 수 있을까라는 화두를 지난 3년간 고민했다. 결과적으로 고민에 대한 답은 없었다. 춘추시대 공구孔丘의 말처럼 ‘종일 먹지도 않고 자지도않고 밤새 생각해 보았자 배우는 것만 못한’(吾嘗終日不食終夜不寢以思無益不如學也 論語 衛靈公) 상황이었다. 또 노신(魯迅)은 말한다. ‘회의에 빠지는 것은 나쁘지 않다. 단 회의에 빠지되 아무런 결론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라고.

이 글은 고민의 산물이자 어중간한 타협의 산물이다. 확실하고 명료한 서술을 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기획이었다. 이 글이 과격하게 느껴진다면 더 과격한 것 까지 내가 고민했다는 뜻이다. 미지근하다면 더 차가운 것 까지 고민했다는 뜻이다.

초반부터 너무 장황한 이야기들을 했다. 나에게 모임을 되돌아보는 것이 그만큼 쉽지 않았다는 뜻으로 이해를 해 주었으면 좋겠다.

2.

모임이 만들어진 것은 2000년 4월이지만 그 준비는 1월부터 시작되었다. 모임이 만들어 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당시 한국사회의 거시적인 흐름과 관련이 있다. 97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시민사회운동이 급속한 성장을 이루게 된다. 기존 사회운동과는 다른 새로운 사회운동이 성장한 시기가 90년대 후반에서2000년대 초반이라고 생각한다. NGO라는 말이 유행한 것도 이 시기였다. 언론은 시민운동을 ‘제3섹터’, ‘권력의 5부’라는 말로 표현했다. 전반적으로 시민사회운동이 언론과 대중들에게 상당한 주목을 받았으며 이것이 또 시민운동의 직간접적인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여기서 좀 더 상세하게 살펴 볼 수도 있겠으나 그에 대한 원인과 분석을 하는 것은 이글의 목적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회원들의 인터뷰들을 통해서도 나와 있지만 모임 회원 중 많은 경우가 언론을 통해서 시민운동과 참여연대를 알게 되었고 또 그것이 직접적인 회원가입과 모임활동으로 이어졌다. 이것은 비단 참여연대만의 일이 아니었다. 이 시기에주요 메이저 시민단체에서 청소년 모임이나 대학생 모임이 결성되고 활동하기에 이른다. 특히 이 시기에 있었던 총선시민연대의 대중적 성공은 이러한 흐름을더욱 가속화 시키게 했다.

당시 많은 고등학생, 대학생들이 참여연대를 찾았다. 많은 경우는 회원이 되거나 자원활동을 했지만 더 나아가서 참여연대 안에서 무언가 모임을 만들고자 하는 흐름들이 있었고, 이것이 참여연대 행동하는 젊음 “와”의 결성으로 이어진다.

물론 무언가 하고 싶다는, 충만한 개인적 열망이 다른 경험과 실천으로 이어지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사람이 사회에 대한 관심과 열망을 다른 곳에 쏟을 수 있는 통로는 사실 많지 않다. 20대라면 학생운동의 영역에 그 가능성을 둘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 시기에 이르면 학생운동은 꾸준한 쇠퇴로 인해 더 이상 새로운 실천을 담지하기에 부족했다. 당시 많은 모임 회원들이 학생운동과 민중운동에 대해 관심을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적인 활동에 나서지 않은 것은 생각 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더러는 학생운동에서 활발히 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이것이 모임 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다.

모임회원들의 개인적 관심이 학생운동에 걸쳐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실질적으로 모임 차원의 관심과 고민은 청소년 운동의 영역에 더 가까웠다. 실제로 모임은 처음에 ‘청소년 모임’을 표방했었다. 나는 결과적으로는 모임이 청소년 모임의 레테르를 더 오랫동안 강하게 가져갔다면 지금과는 다른 더 긍정적인 결과를낳지 않았을까 싶다. 이 부분에 대해선 뒤에서 더 다루기로 하겠다.

모임이 만들어졌을 당시 전국중고등학생연합이 결성되어(2000년 3월) 두발제한 반대운동을 벌여나갔다. 이외에도 다양한 차원에서 청소년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된다. 2000년대 초의 청소년 운동은 크게 성장한 것이 사실이다. 이런 흐름들은 2002년에서 2004년 사이에 바뀌거나 없어지게 된다. 많은 집단들이 지속성을 갖추지 못하고 무너지게 된다. 2~3년 동안의 청소년 운동 붐에 대해서는 아직 내실 있는 연구 성과는 없지만 여러 가지 추측들은 가능하다. 우선 앞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시민운동이 크게 성장하고 있는 시기였고 언론이 이에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87년 이후로 정치의 영역에서 권위주의가 크게 퇴조해가는 과정이었으나 학생사회(학교)에서는 여전히 권위주의적 잔재가 많이 남아있었다. 이러한 시간의 단차에 따른 갈등이 운동이라는 흐름으로 표출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인해 청소년이라는 사회제약으로부터 벗어난 의사개진과 실천이 가능해졌다. 이것이 소비 담론으로 포장되어 등장한것이 소위 ‘N세대’라는 세대담론이었다. 마지막으로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은 이당시 청소년운동에 참여한 많은 성원들이 80년대 초반 출생자들이라는 것이다. 인구학적으로 볼 때 이들은 에코붐(베이비붐자녀세대) 세대에 속하는 집단이다. 이들은 인구규모로 75만명을 유지한 마지막 세대로서 집단내·세대내 경쟁을 경험하게 된 마지막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10대 후반에 진입할 시기에 청소년 운동이 시작되었으며 대학에서 고학번이 되어갈 무렵에 청소년 운동의 한흐름이 종결되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비단 청소년 운동만이 아니라 학생운동역시 2003년을 경과하면서 더 이상의 대중운동이 불가능해지며 이 시기에 이르러 비운동권 총학생회가 대거 등장하게 이른다. 첨언하자면 이들이 오늘 날 ‘88만원 세대’를 이루고 있다.

그 당시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운동의 인적 구성은 대부분 80년대 학번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2000년대 초반은 차츰 90년대 학번들이 활동가로 충원되는 시기였다. 회원들 역시 대부분 80년대에 20대를 보낸 3~40대 층이었다. 시민사회운동에서 청소년이란 비어있는 영역이었다. 참여연대가 운동의 지속과 성장을 위해서 청소년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당연하다.

80년대나 90년대 초반을 보낸 활동가들 중 일부는 모임 회원들이 더 진보적인 이념과 지향을 가지고 활동하지 않는 것을 못마땅해 했다. 이것이 가시화 된 것이 2003년의 녹음기 사건이었다. 이 사건에 대해서 약간의 설명을 하자면.2003년 3월 당시 회원참여팀 모 간사가 대학생 회원들이 참여연대에서 진행하는 캠페인에 활발하게 참여하지 않는 것을 질책하자 이에 대학생 모임 참께와“와”가 반발한 사건이다. 그 이전부터 사석에서 ‘마음에 들지 않으므로 해체시켜 버리겠다’는 식의 질타가 있어왔고, 이에 회원모임차원에서 회원참여팀과 수 차례 비공식적으로 사과를 받고 재발방지를 약속 받았으나 이후에도 계속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어 참여연대 회원게시판에 이를 공개화 시킨 사건이다. 회원들이 이를 ‘녹음기 사건’이라 부르는 것은 당시 모 간사의 발언을 녹음기로 녹음했었기 때문이다. 사건은 해당간사와 사무처장의 공식 사과와 함께 재발방지 약속을 하면서 마무리 되었다.

모임은 청소년이라는, 시민사회의 비어있는 영역에 뛰어든 모임이었으므로참여연대 차원에서도 원활한 관계맺음을 가지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다른 회원모임들과 달리 행동하는 젊음 “와”의 경우 참여연대의 주 회원 층과 상이한 연령층의 집단이 주축이 되었으며 그 활동 목적역시 참여연대의 운동을 지원한다는 기존의 모임들과는 상이했다. 모임에서는 독자적인 활로를 끊임없이 모색했다. 마찰과 충돌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또 그런 과정 속에서 조직의 견실함이 형성되어 가는 것이다.

모임 회원들을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든 것은 상근자, 기성회원들이 모임을 ‘어린아이’로 취급한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인식을 가졌기에 모임의 실수나 회원들의 강한 개성이 크게 마찰을 일으키지 않았던 측면도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모임회원들에게 자부심을 빼앗아 갔으며 지치게 만들었다. 참여연대와 모임간의 명확한 위치설정의 과정이 없었던 것도 이에 기반한 바가 적지 않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참여연대의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3.

행동하는 젊음 “와”는 단체 규모는 아니었고 작은 소모임이었다. 주도적으로 활동했던 회원들은 5~10명 내외라고 생각된다. 이 경우 거시적인 사회적 배경 못지않게 행위자들의 개성과 우연적 요소가 중요 변수로 작용 된다.

처음 모임이 만들어 진 것은 참여연대의 청소년 회원들이었다. 청소년 모임이 만들어 지는 것과 동시에 청소년 이라는 정체성의 문제가 가시화 되었다. 현실적으로 대학생이 되어버린 회원들을 청소년으로 분류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있었다. ‘청소년’이라는 말을 어떻게 정의내릴 것인가의 문제가 시작된 것이다. 격론이 벌어진 것은 아니지만 이 문제는 잘 매듭짓지 못하고 넘어가게 된다. 이로 인해 모임의 정체성이 불분명해 진 것이 사실이다. 이 문제를 확실히 결론 지으려고 시도한 적이 많았으나 현실적인 장애가 많았다. 이 부분은 뒤에서 설명하겠다.

앞서 말했듯이 청소년층은 시민사회의 주력층이 아니었으며 이 영역에 대한실제적 활동 역시 참여연대의 주 사업이 아니었다. 여기에 모임의 한계가 있었다. 돌이켜 보건데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모델은 회원모임으로 참여연대의 사업에 지속적으로 결합하는 형태 외에는 없었던 것 같다. 누가 되었든 실천의 주체가 청소년이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청소년 모임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와”가 회원모임의 역할과 조건을 뛰어넘는 일을 해왔다고 생각한다.모임을 지탱하는 사회적·물질적 기반이 원활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나, 늘 그이상의 역량을 발휘했다. 나는 여기에 활동의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하나의 변수를 언급해야만 할 것 같다. 애초에 모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당시 상근 활동가의 개입이 있었다. 이전부터 대안교육과 청소년운동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실천해오던 활동가였다. 당시 어떻게 모임을 만들어야 할지 모르던 회원들에게 방법을 제시하고 독려해준 것도 그에 의해서 가능했다.“와”가 청소년이라는 세대규정을 벗어난 “행동하는 젊음”이라는 명칭을 붙여준것도 그의 제안이었다. 모임에서 실질적인 활동을 하는 회원들은 따로 있었지만한 개인 활동가의 강한 영향력 아래 있었던 것은 부인 할 수 없다.

모임이 시작하는 단계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고 또 많은 의지가 되었던 것이사실이다. 간사에 의한 직접적 개입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점에서 문제를 드러냈다. 첫째로 성인, 상근활동가의 개입으로 인해 회원모임의 독자적인 자생력이 약해졌다. 다음으로는 모임을 상근자 한 사람의 사조직처럼 만들고자 한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모임의 활동방향을 장기지속적인 실천 보다 일회성 이벤트 사업을 우위에 둠으로서 모임의 정체성 형성을 어렵게 했다.

앞서 지적한 참여연대 상근활동가들과 모임회원들의 세대 갈등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상당수는 중간 채널로 역할했던 상근활동가에 의해 조장되거나 증폭된 측면이 있다. 결과적으로 모임과 참여연대 사이에 신뢰가 형성되는 것을막았으며 자신과의 관계에서만 신뢰와 파트너쉽이 형성하게끔 했다.

그는 자신이 개입하려는 운동영역에서 권위를 확장하기 위해 “와”나 다른 대학생 활동가 층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실질적인 움직임으로 나타났으며 자신의 패밀리를 만들어 참여연대를 떠나 다른 단체를 만들게되었다. 당시 활동하던 많은 사람들이 더 지속적으로 참여연대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은 이 과정에서 입었던 상처가 결코 작지 않았던 것도 있다.

한 개인에 대한 언급이므로 길게 이야기 할 수는 없을 것 이다. 하지만 모임이 만들어지고 활동하는 과정에서 그 영향력을 무시 할 수는 없었기에 이 정도로 서술하고자 한다.

4.

나에게 모임 활동 시기는 20대 초반을 경과하는 시간이었다. 모두가 열정적인 시기였다. 내 또래에 활동한 다른 회원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학생운동과 시민운동의 거리감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더러는 더 급진적인 실천을 위해 학생운동을 하기도 했는데, 나는 학생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는 않았다. 상대적으로 모임이 재미있고 스스로 배워가는 것도 많았던 것에 비해 학생운동은 권위주의적이었고 숨막히게 느껴졌던 것 같다.

원래 딱딱하고 차가운 성격이 모임을 통해 조금이나마 고쳐졌던 것은 사실이다. 애초에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기질도 다분했으나 더 어린 회원들과도 허물없이 지내야 한다는 생각에 노력을 많이 하게 되었다. 모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은 내 또래 세대들이 흔히 할 수 없는 경험을 가져다주었다. 각종 행사를 기획하고 연출해내는 것, 또는 참여하는 것, 운동사회의 중심에서 세상을 바라 볼 수 있었던 것은 오늘날까지 굉장히 소중한 체험으로 남는다. 이런 기억들이 지금도 나에게 자신감으로 남는다.

어린 나이에 사회운동을 체험한다는 것은 잘못하면 사회와 인간에 대한 편협한 인식을 낳게 할 위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참여연대 활동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체험을 하면서 많은 각성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상처도 많았다. 나는 모임 활동과 함께 나의 첫 멘토를 만난 셈인데, 결과적으로는 좋지 못한 관계가 되었다. 프레이리의 개념으로 굳이 말하자면 ‘반교사’였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험과 다른 회원들의 경험은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꽤 많은 회원들은 모임을 합리적이고 근대적인 소통의 공간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것은 그만큼 자신이 발 딛고 서있는 현실, 즉 학교나 지역사회가 척박했다는 뜻도 있을것이다. 전반적으로는 모임이 성장의 기회를 주었던 것 같다.

5.

결과만 놓고 보면 모임에서 활동을 했던 회원들은 각자의 영역으로 나아갔다. 이 과정에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사이에 체험했던 모임의 경험과 기억들이 일정한 역할을 했으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들 중 현재 사회운동에 남아있는 사람은 많지 않으며 그러한 지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또한 많지 않다. 아쉬운 부분이다.

성장기에 사회운동에 근접했던 이들이 결과적으로 사회운동에 남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 몇 가지 원인을 생각 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사회운동이 하나의 사회진출의 경로로서 사람들에게 매력으로 다가오지 못 한 부분이 있다. 최근 화제가 된 책『88만원 세대』에서 지적하듯이 이는 기성세대가 사회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후속 세대가 진입할 여지가 확장되지 못했다는 측면이 있다. 또한 오늘날의 20대에게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매력적인 직장으로서 권장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 문제는 사회운동의 지속력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시민사회 안에서 더 많은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2000년대 초반은 상대적으로 좋은 시기였다. 시민사회 안에서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 만들어져있는지의 여부와 관계없이 끊임없이 청소년들이 흘러 들어올 수 있는 시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오늘날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청소년들이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을 구축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조건 와서 일을 거들어 달라는 주문으로는 해결 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물론 이와 관련해서 몇몇 단체를 중심으로 고민이 지속되고 있으며 자원활동가에 대한 가이드 라인이 만들어지거나 교육에 대한 지원이 강화되는 등 긍정적인 움직임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5.

마지막으로 이번 백서작업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몇 가지 소감을 남기고자 한다. 백서 작업은 3년간 다소 미적지근하게 진행되었다. 이 3년이라는 시간은 내 20대 초반이라는 시기를 끊임없이 반추하게 만들었다. 쉽지만은 않았다. 심지어 밤마다 악몽을 꿀 정도였다. 백서작업을 이렇게나마 마무리 짓게 된 것은 빨리이 악몽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도 긍정적으로 작용을 했다.

모임 활동이 어떤 기억으로 남을지는 각자에게 남겨진 몫이다. 대체로는 성장기에 경험한 일들이며 일정하게 성장통을 겪었던 것 같다. 아픔도 많았지만 나는 겪었어야 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픔만 있는 것은 아니다. 즐거운 추억과 경험들이 힘으로 남아 이를 훨씬 상쇄했기에 과거를 반추하는 작업이가능했을 것이다.

앞에서 라쇼몽 효과에 대한 이야기로 글을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이 글 역시 한 개인으로서 편향적 시각을 가지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나로서도 그것을 인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만으로 모임을 기억하고 평가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것이다. 모임에 대한 각자의 기억이 이번 작업으로 고정되고 일원화될 필요는 없을 것 이다. 다양한 기억과 평가가 가능 할 것이다. 백서가 그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


-----------------------
백서에 쓴 글.
제목은 김병익의 글에서 빌어왔음을 밝힌다.



wah.jpg




TAG •

  1. No Image

    중앙일보, 청소년들 시민운동 참여 활발

    청소년들 시민운동 참여 활발 중앙일보 2001년 05월 21일 시민단체 안에서 청소년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다. 자신들의 시각으로 환경과 사회문제 등을 바라보고 행동하며 기성세대에 자극제가 되고 있는 것. 이들 청소년들은 자체적으로 모임을 만들고 활동하면서 사회를 변화시킬 싹으로, 미래의 시민운동가로 성장하고 ...
    Date2009.01.11 Category언론 Reply1
    Read More
  2. 참여연대 행동하는 젊음 "와"백서

    2000년에 결성되어 2004년에 해산한 참여연대 회원모임의 백서. <잊어버리기 위하여> 백서최종본.pdf 나는 초대, 3대 모임지기를 맡았다. 나중에는 (공식적으로는)홈페이지 관리를 맡았다. 백서를 만들며 쓴 글 <정리를 위한 사적인 회고>는 예전에 올려두었다. 당시 활동에 대해서는 이 글 만을 참고해도 무방하다. 또한 ...
    Date2009.01.01 Category언론 Reply2 file
    Read More
  3. [와 백서] 정리를 위한 사적인 회고

    정리를 위한 사적인 회고 권병덕 1. 참여연대 회원모임 행동하는 젊음“와”는 2000년 4월에 시작되어 2004년 7월까지 활동했다. 나는 모임에 참여한 한 사람으로서 이 글을 통해 지난 시간을 반추하고 비판적으로 회고하고자 한다. ‘라쇼몽 효과’라는 말이 있다. 구로자와 아키라(黑澤明) 감독의 <라쇼몽>이라는 영화에서 비...
    Date2008.04.02 Category언론 Reply0 file
    Read More
  4. [참여사회] 참여연대 행동하는 젊음 “와”의 5년을 돌아보며

    참여연대 행동하는 젊음 “와”의 5년을 돌아보며 2000년 1월 15일 참여연대의 대학로 거리 공연이 있던 날이었다. 공연이 끝난 뒤 참여연대에서 자원활동을 하던 고등학생 5명이 참여연대에서 청소년 모임을 만들자고 다짐을 했다. 이날의 뒤풀이 자리가 참여연대 청소년 회원모임 <행동하는 젊음 “와”>로 이어지게 되었다. ...
    Date2008.01.18 Category언론 Reply0 file
    Read More
  5. [한겨레] 부정부패 때 빼는 ‘낙선세제’ 퍼포먼스

    부정부패 때 빼는 ‘낙선세제’ 퍼포먼스 | 기사입력 2004-04-06 18:20 | 최종수정 2004-04-06 18:20 [한겨레] ■낙선운동 발표장 이모저모 유권자 위원“희망정치오라”구호 ‘낙선’의원실등 항의전화 수백통 6일 오전 10시 ‘2004 총선시민연대’(총선연대)가 낙선운동 대상자 208명의 명단을 발표한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는...
    Date2004.04.06 Category언론 Reply0
    Read More
  6. [프레시안] 청소년 아르바이트 국가가 나서야

    "청소년 아르바이트 국가가 나서야" - 참여연대 토론회, 종합적 실태조사ㆍ법 개정 주문 | 기사입력 2002-09-03 16:54 | 최종수정 2002-09-03 16:54 "청소년보호법이나 청소년기본법은 2중 3중으로 10대를 보호하려 하지만 실제로 일터나 아르바이트현장에서 느끼는 것은 '변방의 무시' 뿐이다" "일년에 5만명의 10대가 '탈(...
    Date2002.09.03 Category언론 Reply0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Nex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