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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만화50년사, 제9장 70~80년대의 사건 목록

posted Mar 05,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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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70~80년대의 사건 목록

전후만화의 10년주기

이 장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서술 방식으로서 써나가고자 한다. 70년대의 어이없이 패한 문제, 또 80년대 90년대의 사건을 나열적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마지막장인 다음장에서는 90년대의 사건 중에서도 특히나 큰 문제라고 생각되는 데츠카 작품의 「'흑인차별'문제」와 「'유해코믹'문제」에 페이지를 할애하고자 한다. 그 때문에 이 장에서는 70년대부터 90년대에 이르는 것들 중에서 그 두 개의 문제를 제외한 만화의 사건을 모아 놓은 것으로 하려고 생각한다.

그 전에 우선 간단히 이제까지의 만화의 역사를 회고하고자 한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전후의 만화는 거의 10년의 단위로 변화해 갔다. 그러한 변화를 다시금 확인해 보겠다.

첫 장에서 서술한 것처럼 전후에 있어서의 만화의 발전은 데츠카 오사무의 등장에서 시작된다. 『신보물섬』(47년)에서 오사카의 빨간책만화계에서 데뷔한 데츠카는 많은 단행본을 그려 나가면서도 50년대에 들어서 중앙의 잡지로 발표의 장을 옮겼다. 「철완 아톰」「정글 대제」「리본의 기사」등 전후만화의 대표작이 이때 그려지고, 이후의 작가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같은 시기에는 야마카와 소지와 코마츠자키 시게루등의 그림이야기작가가 활약, 전전의 소년소설을 시각적으로 재생해갔다. 40년대 말미에서 50년대에 걸친시기는 전후만화의 여명기라고 말을 해도 될까.

50년대에 있어서 월간지의 융성 이후 59년에는 소년주간지가 창간된다. 그 수년전 오사카에서 있던 히노마루 문고가 『그림자』를 창간했다. 거기서 모였던 사이코우 타카오, 사토마사아키, 타츠미 요시히로 등이 <극화>라고 하는 리얼한 표현에 의한 사실적인 만화가 발표되었다. 이후 극화는 중앙의 잡지에도 진출하고, 극화붐은 60년대 후반에 정점을 맞이한다. 「닌자무예첩」과 「카무이전」의 작자 시라토 산페이, 「묘지의 귀태랑」으로 알려진 미즈키 시게루도 이러한 움직임에 몸을 던져 활동을 전개했다. 이후 극화는 만화의 주류로 되어갔다.

60년대 후반의 만화․극화붐은 청년지와 매니아지의 창간을 재촉했지만, 한편으로 70년대에 이르면 이제까지의 소녀만화라는 다른 새로운 타입의 작품이 신예소녀만화작가에 의해 태어났다. 히기오 모토, 다케미야 게이코, 키무라 미노리, 야마기시 료코, 오지마 유미코, 등 속되게 말해 "꽃의 24년조"의 대두였다. 「포의 일족」「바람과 나무의 시」「해뜨는 곳의 천자」「솜의 쿠니호시(綿の国星)」등의 작품이 소녀들의 섬세한 감성을 뒤흔들어 놓았다. 또한 과격한 섹스묘사를 장기로 했던 에로극화는 70년대후반의 만화신을 장식했다.

이런 표현의 특이성을 픽업하면, 「50년대 데츠카 의 스토리 만화」「60년대의 극화」「70년대의 소녀만화」라고 하는 식으로 10년 마다 구획지어 볼 수 있다. 10년 씩으로 전후만화가 새로운 표현의 장을 넓혀갔다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계속해서 80년대는 어떤것 일지, 이제까지 보아온 것과 다른 큰 지각변동이 생겨나지는 않았다. 구태여 살펴보자면 오토모 카츠히로(大友克洋)의 등장 정도 일까. 프랑스의 코믹작가 뫼비우스의 영향을 받은 오토모는 세밀하고 건조한 그림과 감성으로 「총몽」과 「AKIRA」등의 작품으로 동시대의 많은 만화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의 등장은 상징적인 것이었다. 다만 80년대를 대표하는 가치의 운동체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90년대는 더욱더 불투명한 시대였다. 보다 확산된 만화상황이 잘 보이지 않았다. 86년 전후의 요리 만화 붐, 80년대 후반의 레이디스 코믹 붐, 91년의 종교만화분등이 90년대에도 여운으로서 남아있었지만, 지금까지 정도의 강렬한 임팩트는 찾기 어려웠다.

어쨌건 간에 대략적으로는 10년 단위로 전후만화는 그 표현과 체질을 변화시켜나갔다고 생각되지만, 특별히 70년대 이후는 만화문화자체가 세간의 인지되어 가게되고 많은 출판사가 이 세계에 침입해 들어왔다. 이렇게 잡지수가 증가하고, 만화가의 수도 급증해갔다. 또 다른 미디어의 정체도 나아가고, 장르도 확대되는 경향을 가졌다. 만화를 둘러싼 상황은 복잡하게 다극화되고, 혼돈으로서 상황을 보이는 것으로 되어갔다. 만화가를 스타시하는 경향도 강해지고, 이런저런 사건도 생겨났다.

이하에서는 이러한 확산과 혼돈의 상황으로 발생한 사건을 나열적으로 추적하고자 할 생각이다. 초점이 희미해져 산만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이 장에서는 가능한대로 많은 사건을 언급하려고 마음먹고있다.

저작권의 침해

우선만화 저작권문제부터 볼 생각이다. 제1장의 마지막에서 단행본 『사자에상』의 위작사건을, 제3장에서는 월간지시대에서 일어난 인기작가의 도작사건에 대하여 다루었지만, 그 후에 이런 문제는 자주 일어났다.

만화가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만화저작권자협회동조합」이 설립되었지만 1970년 12월의 일이었다. 같은 때에 「사자에상」의 캐릭터를 무단사용하면서 저자인 나가타니 마치코(長谷町子)가 나고야의 올림푸스 제사회사(製絲)와 동경의 다치가와버스를 함께 소송을 걸었다. 사건은 올림푸스제사가 69년 6월경 상품운반용의 경사륜차계 74대의 문짝에 사자에상의 캐릭터를 작자의 어떤 형태의 협의도 없이 사용한 것이다. 작가측은 1대 1개월 1만엔으로서 합계 1258만엔의 사용료를 산정, 동액의 손해배상과 사용 중단을 나고야 지방법원에 송사했다. 다치가와버스에게도 소유하는 관광버스 27대의 차체의 캐릭터를 묘사, 더더군다나 동사의 관광부문에 「사자에상 관광」이라는 명칭까지 만들었다. 작가측은 이 회사에 대하여 캐릭터의 사용정지와 3672만엔의 손해배상청구를 동경지방법원에 냈다.

만화와 종이연극이었던 대중통속문화에서는, 저작권이 소홀히 되어왔다. 또한 저작물의 복제화에 의한 저작권의 침해로 민감해졌던 것으로도, 만화의 캐릭터를 무엇으로든 사용한다면, 저작권침해가 되는지의 여부는 법적인 근거가 모호하여, 상업의 관례에 맡겨왔다. 그런상황에서 「사자에상」의 소송이 일어난 것이다. 특정한 저작물의 직접복제는 아니고, 캐릭터라는 애매한 개념의 저작권이 처음으로 법의 심판대에 오른 것이다.

작가측의 소송은 그러한 현황에 대한 문제제기의 의미가 농후했다. 당시의 신문(『아사히신문』 71년 1월 12일)에 실린 작가의 코멘트에서는 ‘작가의 권리를 주장하고, 또 세간에도 저작권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하는 의미로도,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라는 말이 보인다.

재판의 결과는 그 뒤 계속된 비슷한 종류의 사건에 영향을 주었다. 74년에 도에이(東映) 가 「라이더 맨」의 캐릭터를 장난감 비닐면에 사용한 것 때문에 동경의 업자를 고소한 사건과, 같은 모양의 「가면 라이더」에 대한 소송, 또는 84년의 「근육맨」프라스틱인형 무단제조소 사건등의 판결의 판례가 되었다. 최근에는 『아사히 신문』(90년 10월 2일)이 치비 마루코쨩의 캐릭터를 무단사용한 업자에 대해 고소한다는 움직임이 전해지지만, 이후 계속된 캐릭터-저작권의 법적근거가 되었다.

이런 의미 때문에 「사자에상」사건이 가진 의미는 크다. 그래서 지금 잠깐 사건을 살펴보고자 한다. 여기서는 다치가와버스의 예를 가지고 이야기 할 것이다.

『최신 저작권관계판례집』(저작권판례연구회편 78년 교세이)에서 이 사건의 경과가 자세하게 실려있지만, 그것에 의하면 소송은 71년에 일어났고, 재판의 판결은 동경지방재판소에서 76년 5월 26일에 이루어졌다. ((와)제151호).

원고인 나가타니 마치코측의 주장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본건만화에서 사자에, 카츠오 및 와카매의 얼굴로 표현된 캐릭터를 복재한 것이었고, 그 자체복제권의 침해를 구성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캐릭터란 본건만화에 근거한 것으로서 만화에 등장하는 인물의 그림, 역할, 명칭등을 종합한 인격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장면의 그림을 카피한 것이라도 캐릭터를 그린다면 저작권의 침해가 된다는 주장이다.

피고인 다치가와버스는 ‘원고가 소위 주장하는 케릭터를 복제한 것이 아니다. 원고는 (중략) 단적으로 본건만화의 어떤 부분에 대하여 어떻게 저작권침해를 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주장 해야 하고, 추상적인 캐릭터 이론을 가지고서는 저작권침해의 주장은 성립도지 않는다’고 반론했다. 그런 애매한 이유로 대응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며, 나가타니측의 요구를 거부했다.

그러나 판결은 원고의 요구대로 되었다. 그 근거가 된 캐릭터권에 대하여 거의 그 주장은 인정했다. 판결문의 일부를 발췌해 보겠다.

만화의 등장인물자체의 역할, 용모, 자태등은 항구적인 것으로서 주어진 표현은 이야기로 표현되는 화제의 근간으로 특정한 장면에 있어서 특정의 등장인물의 표정, 얼굴의 모습, 몸의 움직임등을 넘어선 것으로 해석된다. 그리하여 캐릭터라는 말은 오른쪽에 쓰여져있는 연재만화를 예로하면, 그것에 등장하는 인물의 용모, 자태, 성격을 포현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 가능한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캐릭터란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의 용모, 자태, 성격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파악한다는 것이다. 특정의 컷에서 카피하는 것도 그 인물로 안다면, 캐릭터권의 침해도 간주한다는 판단이 내려지는 것이다. 이제까지 관례로 통용되었던 것이, 이러한 모양으로 명문화되어 법적인 판단이 내려지는 의의는 컸다. 앞에서 썼더시피 그 이후의 소성에 영향을 주었기 때
문이다.

다만 배상금은 원고의 주장이 통하지 않았다. 하루에 얼마로 계산하는 것이 아니고, 종래의 업계의 관례에 의하여 판매가격의 3퍼센트라는 기준에 의해 산정이 떨어졌다.

"인용"의 허용범위와 패러디의 문제

「사자에상」사건에 의하여 캐릭터권이 문제된 것이 아닌 직접 원화를 복제하는 경우에도 지극히 미묘한 문제가 겹쳐있었다. 말하자면 만화의 평론활동과 학술연구에 의하여 원칙적으로 컷의 사용은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그 글들이 평론․학술연구등의 정보의 영역을 넘어서서 계속 논의가 되었다.

예를 하나 들자. 『잡학․그리운 만화의 재밌는 의외의 역사』(二見文庫)는 인용 컷이 무단사용 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지만, 저자인 아이카와 노부히코(逢河信彦)는 신간 『그리운 만화왕』(93년 實業之日本社)에서 이러한 "인용"과 저작권의 관련을 문제 삼는다. 이 책의 머리말에서 아이카와는 다음과 같이 쓴다.

사족이지만, 필자는 이제까지 만화를 대상으로 하는 비평․ 연구에 관하여 당연히 다른 미술의 저작물과 같이 대상이 되는 만화의 "인용"은 저작권법 제32조에 의하여 인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부 만화가들 중에는 사전에 승인과 사용료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만화가와 평론가의 사이에는 일본문예가협회와 일본음악저작권협회에 의한 각서와 같은 것은 아직은 존재하지 않는다.

요컨대 만화의 인용에 대한 범위․허락에 대해서는 명확한 경계선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합의 없이 평론한다면 그 책은 일부 만화가들에 의해 출하정지나 회수를 법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현실이다. 법에 의한 결론을 어쨌든 만들어 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저작권 제32조란, '공표된 저작물은 인용하여 이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 경우에 대해서 그 인용은 공정한 관행에 합치하는 것으로서, 활동사진, 보도, 비평, 연구, 그 외의 인용의 목적상 정당한 범위내에서 행사는 것으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라는 것이다. 지당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나도 이러한 저작의 문장을 인용했다. 다만 다시 생각 해 볼 점은 아이카와의 말 '비평․연구에 관하여'에서 그 '관하여'에 대한 것 같다. 단순하게 페이지의 첨가된 작품의 분위기를 전하기 위해 사용 할 뿐인 것은, 필연성이 부족하다. 논의 전개의 과정에서 직접적으로 관련된 필요불가결한 인용등이라면 아이카와가 말하는 것은 납득이 가는 것이다. 『그리운 만화왕』중에서 컷의 인용이 그런 위치에 놓여져 있는지 어떨지 말하자면, 약간 질문이 남는다고는 말 할 수 없다.

관련한 사건을 살펴보자.

「만화와 저작권을 둘러싼 복잡한 문제」(『倉』 93년 9월)라는 글에서 츠루미 와타루(鶴見済)는, 86년 12월에 만화전문지 『COMIC BOX』지면에서 일어난 사건을 소개하고 있다. 그것에 따르면 이 잡지에서 인기만화「켑틴 츠바사」(『주간소년점프』게재)의 패러디만화를 게재했던 것이 슈에이시에서 저작권 침해로 사과문과 200만엔의 배상금의 청구가 있었던 것이다. 사실 『COMIC BOX』(87년 3․4월 합본호)에서는 「『캡틴 츠바사』판권문제」라는 기사가 쓰여졌고 슈에이샤에서 내용증명의 글과 발행처인 "퓨전 프로덕트"에서의 「답신」이 전문게재되었다. 여기서도 논점은 캐릭터권에 대한 것이다. 그렇지만 더욱 한 사건을 복잡하게 한 것은 패러디라는 표현 장르 방법에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패러디란 오리지널을 웃기기도 하고 풍자하기도하는 정신활동이라서, 당연하게도 어느 작품을 암시적으로 인용하는 것에서 성립된다. "인용"을 위해서 저작권의 침해를 하지 않는다면 패러디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문화의 자살행위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83년에 일어난 마토 아마노의 작품을 둘러싼 사건도 그러한 인용에 관한 사건의 하나였다. 마토는 자기의 패러디 작품에서 산악사진가의 작품을 무단으로 도용한 것으로 소송당하고, 동경고등법원에서 50만엔의 배상금지불과 신문에 사과광고게재를 명하는 판결을 받았던 것이다. 근거는 ‘원작품의 표현형식상의 본질적인 특징은 몽타쥬사진 자체로부터 직접 감을 얻은 것이라 할 수 있고, 원작자의 동일성 보지권(保持權 저작자인격권의 하나)을 침해한 바꾼 것이 맞다.’(『마이니치신문』 83년 2월 24일)라고 하는 것이었다.

또 카츠가와 카츠시(勝川克志)가 자신의 만화 캐릭터를 무단으로 사용했다며 아니메 「도라에몽」의 제작회사인 타츠노코프로와 니혼테레비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조금 다른 것으로는 오오츠의 소학교 6학년생들이 졸업기념회에서 미키마우스를 수영장 바닥에 그렸다. 이것이 매스컴에 보도되자, 전해들은 디즈니 프로덕숀이 항의 곧바로 지운 사건도 일어났다.(『아사히신문』 87년 7월 9일)

94년 8월에는 니혼소프트시스템등 3개 회사가 공동으로 제작한 비디오 『난파금융전 미나미의 제왕 1』이 아오키 유지(靑木雄二) 의 『나니와 금융도』제2권에서 이야기를 차용해서 문제가 되었다. 3사는 게재지 『주간모닝』에서 '귀측의 저작인 『나니와 금융도』제1권(주식회사 고단샤)을 부분적으로 번안한 것으로서 귀하의 저작권을 침해한 것이다.'라고 제목에는 '사과드림'이라고 게재했다.

다음의 사건을 살펴보자.

이야기가 약간 어긋나지만 평론가의 문장을 무단 수록한 예로는 JICC출판국의 『1억인의 데츠카 오사무』(同편집위원회編 89년)의 예가 있다. 이 책은 모두 이제까지의 데츠카 오사무와 그의 작품에 대하여 쓴 이런저런 사람등의 문장을 본인에게 허락받지 않고 짜깁기 한 것으로서 그것을 지나치게 날림으로 만든 책의 일종으로, 모리 타쿠야(森卓也)등의 평론가들의 이의제기가 일어났다.

이 책을 쓰는 동안 날아든 소식이 디즈니 프로덕션 제작의 극장 아니메 「라이온 킹」이 데츠카 오사무의 대작 「정글 대제」의 모방이 아닐까 하는 이슈였다. 『마이니치신문』(94년 7월 13일)에 의하면 미국에서는 상당이 문제가 되었던 것 같다. 7월 11일자의 『센프란시스코 크로니컬』지가 1면에 미국의 아니메 관계자의 분노를 전했다고 한다. 데츠카 프로덕션은 기자회견을 준비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니메 연구가로서도 어떤 데츠카 만화의 콜렉터로서도 저명한 와타나베 야스시(渡辺泰)가 『포럼』6호(95년 오사카국제여자대학 아동학과발행)에 상세하게 다루고 있는데, 그것을 참고했으면 좋겠다.

하여간 저작권의 침해는 만화에 있어서는 특히 애니메이션화 되어서 히트친 작품에서는 극히 빈번하게 일어난 사건이었다. 한편에서는 다른 분야인 만화가 그런 것으로 저작권등 주장하는 것이 우습다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더욱 그런 시대에서는 아닌 것을 충분히 변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용>과 <가공>의 문화=만화

만화가의 저작권이 침해되는 사례를 보았지만, 역의 경우로 일어났다.만화가가 다른 작품을 도용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혹이다.

같은 일이면 크지 않으면 안 되지만, 92년 3월에는 이케다 리요코(池田理代子)의 역사만화 「에로이카」에 프랑스의 라루스社 편집의 『극화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의 컷이 도용되었다고 신문이 보도했다. 91년에는 요미우리신문사가 대대적으로 선전한 세계적인 한컷만화의 상 '오호츠크 만화대상'의 입선작이 기성작가의 만화의 도작이었던 것이 문제가 되어 입선을 취소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최근에는 사진에서의 도용사건도 눈에 띈다. 만화가는 항상 자신의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잡지와 책에서 오려 붙여 스크랩해둔 것이 많다. 그 사진을 '참고'로 해서 그림을 그린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이 사진의 자작권을 침해하는 일이 간혹 생겨난 것이다.

90년에는 쿠도 카즈야(工藤かずや)글 이케가미 료이치(池上遼一)그림의 「노부나가(信長)」(『빅코믹․스페리얼』연재)가 건축가의 사진집을 배껴 그린것이 문제화 되었다. 보수화라는 세상 속에서 화제가 되었고 카와구치 카이지의 해양로망 「침묵의 함대」중의 함선등의 컷이 사진가의 작품집에서 도용된 것이 아닌지 하는 소송이 걸린 것이 91년 11월의 일이다. 92년 4월에는 尾瀬 아키라의 사회파 작품 「내 마을의 이야기」(『주간모닝』연재)의 그림의 구도가 사진가의 작품집에서 다수 인용 되었다는 것이 문제시 되었다. 『마이니치신문』(92년 4월 17일)에 전하는 바에 따르면, 사진가에게는 사전에 사용하고 싶다고 연락이 갔지만, 약속했단 1페이지 분량이 아니라 다수 사용되었다고 한다. 같은해 12월에는 사와이 켄(沢井健)의 「이오나」(『주간빅코믹 스피리츠』연재)가 역시 상업사진의 모방이라는 것 때문에 분쟁이 일어났다.

이상은 사진을 주로 한 예지만, 인기배우에게 비슷한 캐릭터를 시킨 경우와 전전의 종이연극의 캐릭터를 만화로 옮겨 바꾸는 등 만화의 내부에서도 여러가지 문제가 생긴 적이 많지는 않았었다. 이전 『만화와 아동문학의 '사이'』(89년 대일본도서)에서 서술했지만, 만화쳐란 기본적으로 <인용+가공>에서 성립된 문화로서, 엄밀하게 그 점을 파고들자면 만화의 목을 쳐내는 것이 어렵게 될지 모른다. 매드의 사건을 시작으로 한 패러디의 예등 그 제일의 것 같다. 물론 나는 자신들의 작품의 저작권을 주장을 하는 등과 말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당연히 권리로서 주장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 반면 지금 말하는 것과 같은 사태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만화의 저작권문제는 이제까지 보아온 것 처럼 만화 표현의 체질에 관련되어있고, 미묘한 점이 많이 합쳐있다. 또한 한 점의 컷이 액자처럼 완결된 작품일지 아닐지 하는 판단에도 관련되어있는데, 일률적으로 정리되지 않는 것을 내부에 걸쳐있는 것이다. 그점은 확실하다.

만화의 성표현

화제를 옮기자. 저작권문제에서 페이지를 낭비했지만, 다른 이런저런 사건에도 눈을 돌려보자.

이제까지 「자포자기 마리아」와 「파렴치 학원」에로극화등을 다룬 것 처럼, 섹스묘사가 문제를 일으킨 예도 많았다. 사회문제화된 것으로도, 작은 그룹에서 잘 의논된 테마이기도 하다.

76년 『아사히 신문』(1월 21일)은 14일에 개최했던 <국제부인의 해를 맞이함으로서 행동을 일으키는 여성들의 모임>의 토론집회의 상황을 보고했다. 그에 따르면 아동문화의 분화회에서 나가이 고(永井豪)의 「이야하야 南友」(『주간소년매거진』연재)와 야마가미 타츠히코(山上たつひこ)의 「가키데카」(『주간소년챔피온』연재)에 있어서 여성의 묘사방법을 문제시, 양 작품은 「여성으로서 존엄을 상처입히고 있다」고 한다.

82년에는 어린이용 아니메 「마이칭 마치고선생」이 여성에게 대하는 차별표현이 과도하기 때문에, 교토의 「"마이칭 마치고선생"에 대항하는 모임」이 항의운동을 펼쳤다.

이것은 직접 만화에 대한 사건으로는 아니지만, 84년 2월에는 자민당의 미츠카 히로(三塚博)대의사(代議士)가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당시의 소녀만화잡지를 거론하며, 흥미위주로 인해 도를 넘은 섹스기사를 규제대상으로 포함해야 한다는 발언을 하여 사회문제화 되기도 했다. 자민당은 규제를 입법화하는 안이 있었지만, 4월에 출판윤리협의회 의장이 미즈카 대의사와 협의, 그 결과 출판관계자에 대한 자체규제도 움직여 '유해도서'규제의 입법화에는 유연한 자세를 보였다. 그 사이 청소년육성국민회의는 일본 체인스토어 협회에서 「저질잡지류」의 규제등을 요구했던 「청소년의 비행대책에 관한 협력방법 의뢰에 대하여」라는 문서를 송부했다. 마지막으로는 자민당의 일부에서 「소년소녀에게 있어서 좋지 못한 내용을 가진 잡지」의 하나로 거론되었던 적 있는 주부와 생활사의 소녀지 『GALS LIFE』가 휴간에 들어가기도 했지만, 최악의 사태인 입법화만은 회피되었다.

모델사건과 차별사건

모델사건도 과거 몇 번이나 일어났다.

유야무야로 해결된 것이 많은 가운데, 오늘날 상세하게 사건의 기록이 남아있는 것은 호라우치 마사토(塀内真人) 의 「바다여, 너는」이라는 단편이 불러일으킨 사건이었다. 이 작품은 『주간소년매거진』84년 9월에 게재되었던 것인데, 오키나와현 이시가키시마(石垣島)를 무대론 한 이야기다.

이시가키시마에서는 산호초등의 자연을 파괴되는 이시가키시마공항이 건설되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연보호지구등 지역주민이 반대운동을 전개, 이야기는 반대파의 한 사람인 소녀 쇼코(礁子)를 중심으로 그녀 심경의 변화를 그려냈다. 쇼코는 자연보호구역에서 민박을 운영하는 집의 딸로서 공항건설에 반대해왔다. 그러나 사업을 추진하는 젊은 지사가 생명을 구해주면서 스스로 목숨을 걸고 폭풍우의 바다를 뛰어나간 것을 계기로 공항건설도 멈추지 말자는 입장으로 전향했다.

게재지가 발매하고 1개월 정도 쯤에 신이시가키시마공항건설저지위원회와 야에시마(八重島) 자연보호구역의 바다를 지키는 모임에서 편집부과 작가에게 공개질문장을 내용증명우편으로 보내졌다. 출판사측의 관계자였던 고마츠 미치오(小松道男)(『매스컴사건始末記』86년 시사통신사)의 회상에 의하면, 질문장의 논점은 복잡다단했지만, 문제의 중심은 실제하는 소녀를 모델로한 명예훼손과 인권침해가 있다는 점, 공항건설은 있지도 않은 것으로 작품에서는 '내일부터 매립이 시작된다' '시작이다'등의 사실오인으로 다르게 기술된 점이다.

편집자와 작가는 게재에 대하여 해당지역을 취재했었다. 그러나 모델로한 사실은 아니라는 반론을 했다. 그러나 자연보호지구에서는 민박은 하나밖에 없고 이야기의 소녀가 중학 3학년인 것도 같고, 그 민박에서도 반대파의 중학 3학년의 있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만화 중에서 컷에서도 그 민박의 이름이 그대로 사용되어 모델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면이 없지 않았다.

몇 번으로도 교섭이 되풀이 되었지만 결국 게재지에서 사과문을 게재하는 것, 모델로 보여진 여성과 그의 부모에게 사과의 편지를 쓰는 것 이상의 두가지로 해결을 보았다.

작품은 한 걸음을 끝냈다. 얼마나 픽션인지 작가측이 주장했어도, 유사한 요소가 갖추어져있다면, 특정한 이미지가 스스로 생겨버리게 된다. 그런 사례였다.

「바다여, 너는」의 경우에는 때 마침 해당한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었지만, 고의로 실제하는 사람과 단체를 모델로 하는 경우도 보여진다. 80년에는 『주간 소년점프』연재의 「사립극도고교」에서, 실제로 존재하는 고교명이 기재되어서 화제가 되었다. 실제의 졸업생의 이름까지 사용되었기 때문에, 시가현의 교육위원회와 학교관계자가 슈에이샤에게 항의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89년 10월에는 74년에 일어난 미츠비시(三菱)重工빌딩의 폭탄범인을 모델로 한 작품이 『스파이 점프』에 게재되었다. 히라마츠 신지(平松伸二)의 「마다 라이센스 牙」의 「죄의 청산」권에서 같은 사건에서 살인죄로 거론되어, 87년에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된 피고 두사람이 직접 모델로 되어있다. 두사람을 지원하는 후쿠오카의 시민그룹 「바다의 모임」등 5개단체가 이 작품에 대하여 사형저지운동을 모욕했다며 슈에이샤에 항의 10월호에 회수와 사과광고의 게재, 단행본으로 재수록하지 않을 것등의 사항을 요구했다.

자주 작품의 바깥에서 「이 작품은 픽션이고, 실제의 개인․단체등과는 관계가 없습니다」고 쓰여있는 것이 있다. 이런 사건들 회피하기 위해 배려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양해문으로 문제가 모두 해결되지 않는 다는 것을 출판사측도 작가측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모델사건이상으로 차별사건도 계속되었다.

90년에는 『주간소년점프』게재의 사토 타다시(佐藤正)의 학원개그물 「타오르는 형님」의 내용이 문제가 되었다. 10월 22일호(45호)에 게재된 이 작품의 「사이보그 용무원님의 권」에 있어서 용무원을 '공짜로 일하는 아저씨' '바보직원'으로 표혀느 '전편에 대해여 용무원의 일과 그 존재를 부정하는 내용으로 되어있고, 학교원용무원과 그 가족에 대해 가슴아픈 굴욕을 준 것'으로서 자치노조 오사카부 본부등이 항의, 슈에이샤측은 사과문을 게재하는 것과 함께 회수를 시작했다.

고이케 마사하루(小池正春)는 「개그만화에 표현되는 웃음과 차별」(『倉』 94년 10월)에서 『주간소년점프』연재의 개그만화 「임금님은 로바」(나니와 小吉 94년 4월 11일호)가 불붙인 차별사건의 결과를 상세하게 보고했다. 문제가 된 것은 학동옹호직원(學童擁護職員)(미도리의 아주머니)를 개그의 소재로 삼으면서 한 컷에서 같은 직원들을 날개를 붙인 화려한 모양의 모습으로 묘사된 것과 함께 '음란해서 멋진 미도리의 아주머니'라는 말장난을 보여주었다.

'직업차별'에 대한 표현이라고 自治勞都職勞의 제기하여 동경도 본부가 항의, 편집부와 작가와의 사이에서 협의를 계속해나갔다. 결과 학동옹호직원에게 사과문이 직접 전달되는 것 외에, 게재지에서도 사과를 게재하게 되었다.

고이케는 이 기사에서 또 후루가와 이치로(古川一朗)의 개그만화 「반칙개그」(『주간프로레스』90년 5월 24일)에 대한 차별용어가 사용된 예도 소개하고 있다.

시대는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보자. 77년 1월에는 데츠카의 「블랙잭」제153화(『주간소년챔피온』 1월 1일호)가 장애인에 대한 lobotomie수술(대뇌절개수술)을 정당화하고 장애인 차별을 조장하는 것 때문에 '전국 푸른 잔디의 모임'과 'lobotomie을 규탄하는 A씨를 지지하는 모임'등이 작자에게 항의했다. 후에 데츠카는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문을 게재했다.

만화는 몇 번으로도 터부 파괴를 범하는 만화지만, 동시에 그 낙서정신이 역으로 작용하여 인권침해를 불러일으킬수도 있다. 그러한 측면을 부정할 수는 없다. 92년에 발족한 「코믹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모임」은 이후 부락해방동맹과 그외 다른 단체와 연결을 계속하는 활동을 하는 방침이라고 한다. 만화는 잡지의 부수가 강대하기 때문에 극히 큰 영향력을 가진 미디어일 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것이 확실 한 것 같다.

리키이시 토오루(力石撤)의 사망과 카지와라 잇키(梶原一騎)

60년대 후반에 열광적인 팬을 만들어낸 극화가 「내일의 죠」였다. 카지와라 잇키(작가명은 타카모리 아사오(高森朝雄))의 원작에 치바 데츠야가 그림을 담당했던 이 작품은 특별소년원에 들어갔던 야부키 죠(矢吹丈)라는 아나키한 내면을 가진 청년이 같은 소년원의 숙적인 리키이시 토오루과 싸우기 위해 복싱에 빠져들어가는 설정을 가진 이야기다. 출소한 뒤에 프로복서가 된 죠와 싸우기 위해 리키이시는 웨이트를 한 단계 떨어트려 죠와 대결한다. 그러나 지나친 감량으로 인해 리키이시는 링을 내려온 뒤 의식을 잃고 삶을 마감하게 된다. 더욱이 카지와라의 원작에서는 두 사람의 체중차가 크지 않았지만, 그림을 담당하는 치바데츠야가 리키이시를 크게 그렸기 때문에 생긴 계산된 설정이라고 한다. 그 뒤에 계속된것은 고뇌와 책망이었다.

하여간 리키이시는 죽었다. 그 때문에 팬은 놀랐다. 다소 과장된 말이지만, 비판하고 슬픈 일이었다. 죠도 매력이 있었지만 리키이시도 실제로 매력 있는 캐릭터였다. 잡지의 페이지 위에는 사후 극작가 테라야마 슈지(寺山修司)가 실제로 '고별식'을 열기로 제안하고, 테라야마가 이끄는 「天井桟敷」극단원의 협력으로 70년 3월 24일 고단샤 강당에서 고별식이 행해졌다. 대회장을 매운 팬은 약 7000명. 대회장의 중앙에는 특설링이 설치되고, 승려의 염불 후에, 애니메이션이 상영, 리키이시의 추모시합, 뮤지컬등 다채롭게 열렸다. 이 모양을 아사히, 산케이 등에서 신문과 주간지가 빠짐없이 보도함으로서 큰 화제를 낳았다. 마노하의 등장인물이 그것도 주인공도 아닌 인물이 허구의 틀을 깨고 사랑받은 유례없는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장례에 앞서 리키이시의 죽음에 대해 테라야마는 『일본독서신문』(70년 2월 18일)에 짧은 글을 실었다. 테라야마는 말한다. 리키이시에게는 체제사회의 권력이 투영되어있는데, 죠에게 패한 것이 결코 아니라고. 그러나 무엇 때문에 죽음으로 끝낼 수밖에 없었는가. 그 답이라면 리키이시가 드라마의 최초부터 반드시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리키이시는 처음부터 죽음이 예견되어있고, 죠의 경우에 '싸워야 할 이유'등 무엇보다도 가질 수 없다고 말 했던 것 같다. 생각이 나서 알게 된 것이지만, 리키이시는 언제나 죠의 리액션으로서만 등장했다. 어떤 극적인 두사람의 '마주침'은 죠의 모토로 '내일을 위해'의 글귀를 움직이는 자전거의 남자가 리키이시 였던 것이다. 리키이시는 죠의 가슴 속에 있는 환상으로서 살아나, 그런 죠의 링위에서 파생되고 함께 사라져갈 것이다.

그뒤 10년후 83년 5월, 원작자인 카지와라 잇키가 상해와 폭행용의로 체포되었다. 『주간 소년매거진』의 편집자에게 ㅍㅛㄱ행을 가하여 전치 4주의 상처를 입힌 것이 그 이유였다. 10년쯤 전의 사건 이지만, 지금 사람들의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것 같다. 지나치게 유명한 극화의 원작자가 일으킨 사건으로 당시 큰 화제가 되었다. 그 뒤 카지와라는 87년에 서거했다. 그 후 수년을 지났기 때문에, 요약평전『극화왕 카지와라 잇키 평전』(가부키 가즈오(蕪木和夫) 94년 風塵社)와 평론집 『「카지와라 잇키」를 읽는다』(타카토리 사카에 (高取英) 94년 파라오 기획)이 나왔다. 그러나 이제는 카지와라 잇키의 작품에 대한 진정한 평론-연구서는 나오지 않는 것 같다. 같은 전후만화의 유행을 만들어 냈던 데츠카 오사무의 경우 비교해보면 규모가 다른 적지 않다고 말 할 수 없다. 이후 깔끔히 정리된 평가가 나왔던 것이다. 그런 것들을 또 바라는 것이다. (이 책의 고료문제가 있어 『다름과 거짓을 본 남자 평전 카지와라 잇키』(사이토 타카오(齋藤貴男) 95년 新潮社)가 간행된 것을 덕붙여 둔다)

그 외에는 92년부터 아니메 붐이 있던 「크레용 신짱」의 단어 사용이 문제가 되었다. 93년 3월에는 「사자에상」의 작가 故타니오카 마치코의 유골을 훔쳐, 가족에게 수천만엔을 요구하는 협박이 들어오는 사건이 발생했다. 후에 유골은 무사히 발견되었지만, 범인이 누군지 모르는 사건이었다.

「사자에상」에 얽힌 것이 92년에 간행된 동경사자에상 학원편『이소노가(磯野家)의 수수께끼』(아즈카신사(飛鳥新社))가 베스트 셀러로 이후 만화의 「수수께끼 책」이 붐이 되기도 하고, 「아돌프에게 고함」「블랙 잭」등 데츠카 오사무 작품의 문고화를 추진하여 94년에는 만화의 문고붐이 불게 되었다.

만화에 ㅇㅓㅀ힌 사건은 이 밖에도 그 수가 끝 없이 생겼다. 매스컴에 의해 먼저 다루어져, 표면에 등장하지 않는 사건이 날이 갈수록 일어나는 날이 없었다. 그러나 그중 많은 것이 지금까지 보아온 것과 같은 저작권문제와 인권문제, 섹스의 묘사등과 관련된 문제들이 많지 않을까?

그런데 카타로그 식으로 사건을 모아서 말하는 것은 이제 이정도로서 하고, 마지막 장에 해당되는 다음장에서는 90년대의 가장 큰 일이었던 데츠카 만화의 '흑인차별문제'와 '유해만화문제'에 대하여 다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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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에 태어나 90년대를 성장해 2000년대를 살고 있다. 사회학과 정치학을 전공했지만, 스스로를 역사학도라고 생각한다. 면식과 만화 수다와 어린이를 좋아한다.


  1. 전후만화50년사, 제1장 패전과 만화출판

    제1장 빨간책 만화의 출판 패전과 만화출판 1945년의 패전의 시점을 경계로, 일본은 큰 방향전환을 했다. 정치경제는 문론, 대중문화도 급속하게 변모했다. 미국에서 전혀 새로운 문화와 생활습관이 이입되어, 지금까지 전쟁에서 심신과 함께 피폐했던 대중의 생활에 급속하게 침투했다고 보인다. 여성의 패션을 중심으로 ...
    Date2007.11.21 Category번역 Reply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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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전후만화50년사, 목차

    잠깐 시간을 내어 적어둠. 번역어 선택의 기준 같은 것은 없음. ㅡ.ㅡ;; ----------------------------------------- 목차 시작하며 3 제1장 딱지본 만화의 출판 패전과 만화출판 11 어린이 만화잡지의 창간 13 딱지본 만화 출판통제 18 딱지본 만화의 정점 24 딱지본 만화의 출판실태 28 그 후의 전개 30 제2장 월간지와 ...
    Date2007.11.13 Category번역 Reply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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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다케우치 오사무 [전후만화50년사] 서문

    최근 읽고 있는 책. 재미는 있는데 일본어가 안되니 아주 답답하다. 공부하는 셈 치고 책의 서문을 해석해 보았다. 틀린 해석을 지적하면 할 말은 없는데, 어차피 이 책의 다른 번역문을 가지고 있으니 해석상의 지적은 별 영양가가 없을 것이다. 몇가지 이해 안되는 표현 때문에 좀 해맸다.(그 부분들은 여기서도 잘 처리...
    Date2007.11.12 Category번역 Reply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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