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전후만화50년사, 제5장 소년·소녀 주간지의 창간

posted Jan 10, 200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9784480052018.jpg


제5장 소년·소녀 주간지의 창간

월간지로부터 주간지의 시대로


1950년대말, 중앙의 출판사가 간행하고 있던 잡지는, 전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이제까지 『소녀』『소년 클럽』『모험왕』『소년북』『소녀』『소녀 클럽』 등, 전후세대를 위해 만들어졌던 중앙의 월간잡지는, 취학아동감소의 영향을 정통으로 맞아 쇠퇴의 낌새를 보인다. 58년을 피크로 어린이 잡지의 발행부수는 눈 깜짝할 사이에 감소한다. 구체적인 대응을 모색해 나가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특히 메이저 출판사에는 허둥거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마침 대본소를 중심으로 하는 극화가 아직 형태를 갖추지 못하던 시기의 일이다. 그런 궁지에 대한 타개책이 준비되고, 실행에 옮겨졌다. 소년주간지 『주간소년선데이』와 『주간소년매거진』의 창간이다. 59년(쇼와 34년)의 일이다. 그 조금전인 56년에는, 출판사계열로써는 우리나라 최초의 주간지인 『주간신조』가 창간되어, 점점 판매고를 늘려나가고 있었다. 58년에는 『주간명성』이 창간, 2개의 소년주간지가 갖추어진 59년에는 『아사히 저널』『주간문춘』『주간평범』『주간만화선데이등이 탄생을 알린다.

세상은 주간지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거기다 주 단위로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있던 TV도, 점점 일반가정에 보급되어 가는 현실이 한쪽에 존재했다. 어린이용의 잡지가 주간화되어간 것도 신기한 일은 아니다. 이렇게 해서 거대 출판사인 소학관과 고단샤로부터 두 개의 소년주간지가 발간된다. 『주간 소년 선데이』와 『주간 소년 매거진』. 초대 편집장은, 각각 토요다 카메이치와 마키노 타케로. 또한 뒤에 기록되어 있는 창간호의 발행연월일은 4월 5일과 3월 26일로 되어 있다. 뒷표지를 보면 『주간소년 선데이』쪽이 10일정도 빠르다. 그러나 실제로는 양지 모두 59년 3월 17일에 동시발매하고 있다. 사전에 정보를 흘려온 양사였지만, 『주간 소년 매거진』측이 앞지르려고 하는 움직임을 파악하고 『주간 소년 선데이』측이 발표를 앞당기는 움직임을 보였다.

또한 매거진 측도 견제하게 된다. 이런 선봉다툼이 조정되어, 결국 이 날의 동시 발매로 낙착된 것이다. 우리 나라 최초의 어린이용 주간지라고 하는 점도 있고, 또 양대출판사의 경쟁이라고 하는 사건도 추가되어 세간에서도 이 양지의 창간은 주목을 끌었다. 양지를 포함한 주간지의 그 후의 운명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나중에 『주간 소년 킹』『주간 소년 챔피언』『주간 소년 점프』등의 잡지도 추가되어 화려하게 출판세계를 장식해 나간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소년용 잡지는, 그런 전개속에서 다양한 사건을 만들어내게 된다.

아래에서는 먼저 우리나라 최초의 두 주간지의 개요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그 뒤 관련되는 다양한 사건을 추적해 보도록 한다.

두 개의 소년 주간지

선행하는 두 잡지 창간호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주간 소년 선데이』는 지금 말한 것처럼 발행년월일이 59년의 4월 5일호, 표지를 포함해서 92페이지, 30엔. 표지는 유니폼을 입은 나가시마 시게오와 소년의 사진으로 장식되어 있다. 『주간 소년 매거진』쪽은 3월 26일, 표지를 포함해서 86페이지, 40엔. 창간호의 표지는 인기 씨름꾼인 아사시오다. 여기에 별책부록이 3권 덧붙여져 있는 것이 『주간 소년 선데이』와의 큰 차이점이다.

양지 모두 원래는 만화 전문지가 아니다. 뉴스나 스포츠 기사등을 싣는 종합잡지 체재를 취하고 있다. 만화는 셀 수 있을 정도였지만, 어린이의 흥미를 끄는 최선의 기획으로써 양지가 모두 강력하게 지원한다는 점에는 차이가 없다.

창간호의 연재만화는, 다음과 같다. 『주간 소년 선데이』에서는 데츠카 오사무의 「스릴 박사」, 테리다 히로오의 「스포츠맨 킨타로」, 세토 카즈원작· 益子카츠미 그림 「남만소천구」, 타카가키 아오이案·후지꼬 후지오 그림의 「바다의 왕자」, 요꼬야마 류이치의 「우주소년 톤다」의 5가지다. 여기에 후타바 주조작·이시하라 고진그림 「휘파람탐정장」이라는 연재소설을 게재한다. 『주간 소년 매거진』쪽은 어떤가 하면, 요시카와 에이지원작·시노비 잇페이그림 「사콘우콘」, 타카노 요시테루 「13호 발진하라」, 야마다 에이지 「질풍십자성」, 이토 아키오「몬키치군」, 엔도 마사지「모험선장」으로 역시 5가지다. 연재소설은, 川內康範「월광가면」, 하야시 요시오의「탐정경사랑」의 두 가지였다.

『주간 소년 매거진』에는 3가지의 별책부록이 붙어 있었지만, 화제성이라는 점에서는 『주간 소년 선데이』쪽이 한발 앞섰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주간 소년 선데이』우위의 상황은, 그 후 잠시동안 이어진다. 창간으로부터 60년대에 걸쳐서 히트한 만화와 그 연재개시년을 다음에 잡지별로 열거해 보자.

● 주간 소년 선데이 - 데츠카 오사무 「0맨」(59년), 테라다 히로오「스포츠맨 킨타로」(59년), 데츠카 오사무「캡틴 KEN」(60년), 요꼬야마 미츠테루「이가의 카게마루」(61년), 아카즈카 후지오「오소마츠군」(62년), 오자와 사토루「서브마린 707」(63년), 후지꼬 후지오 「오바케 Q타로」(64년), 시라토 산페이「카무이 외전」(65년), 히사마츠 후미오「슈퍼 제타」(65년), 후지꼬 후지오「파맨」(67년), 요꼬야마 미츠테루 「자이안트 로보」(67년), 시라토 산페이 「사스케」(68년)

● 주간 소년 매거진 - 타카노 요시테루 「13호 발진하라」(59년), 후쿠모토 카즈야원작·치바 테츠야 그림 「지하의 마구」(61년), 히라이 카즈마사 원작·쿠와다 지로 그림「8맨」(63년), 치바 테츠야 「紫電改 타카」(63년), 모리다 켄지 「마루데 다메오」(64년), 치바 테츠야「하리스의 선풍」(65년), 시라토 산페이「와타리」(65년), 미즈키 시게루 「묘지의 귀태랑」(65년), 카지와라 잇키 원작·카와자키 노보루 그림「거인의 별」(66년), 조지 아키야마「패트맨 X」(66년), 아카즈카 후지오 「천재 바카본」(67년), 히라이 카즈마사 원작·이시노모리 쇼타로 그림「환마대전」(67년), 사이토오 타카오「무요노스케」(67년), 타카모리 아사오원작·치바 테츠야 그림「내일의 죠」(68년)

60년대 전반에서는 『주간 소년 선데이』쪽이 「이가의 카게마루」「오소마츠군」「서브마린 707」「오바케 Q타로」「카무이 외전」등, 화제작을 계속해서 발표함으로써 우세가 눈에 띈다. 실제 판매부수도 65년 당시 55, 6만부로써 40만부의 『주간 소년 매거진』을 크게 압도하고 있다. 그러나 60년대 후반에 들어오게 되면 형세가 역전된다. 숙적 『주간 소년 매거진』이 『주간 소년 선데이』를 위협한다. 「묘지의 귀태랑」「거인의 별」「천재 바카본」「환마대전」「내일의 죠」등이 그 원동력이 된 작품으로써, 『주간 소년 매거진』은 66년에는 100만부 잡지로 성장하게 된다. 그 약진의 토대가 된 것이, 대본의 세계로부터 태두해 나온 "극화"의 파워였다. (* 역자주 - 지난 몇 년동안의 판매율 경쟁은 「소년 점프」와 「소년 매거진」사이에서 벌어졌다. 600만부를 호언하던 점프와 "김전일-"을 내세운 매거진의 격투는, 최근 "김전일-"의 인기가 떨어지면서 잠잠해진 느낌이다. )

여론의 동향

두 가지 소년주간지는, 창간 직후부터 매스컴의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아동문화평론가인 칸 타다미치는, 「2권의 아동주간지」(『교육평론』59년 4월)에서, 「스포츠 기사와 그래프에 뉴스성이 있다는 사실을 제외한다면, 월간 소년잡지와 성격적으로는 전혀 아무런 변화가 없는 듯 하다」「주력은 만화에 두고 있다. 더구나 TV연속방송극을 만화화 한 것이 많아.(중략) 재주없는 것은 어쩔 수 없다」라고 별로 아름답지 못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주간 소년 매거진』의 편집장인 마키노 타케로는, 『예각』지상에서 포부를 밝히고 있다. (「창의있는 기획을-아동주간지에 대해서-」『예각』39호 59년 7월 25일). 마키노는 「현재 아동잡지에 대해서 가장 독자들이 원하고 있는 것이 만화와 부록이라는 사실은, 월간지가 오랜 시간을 들여 테스트하고, 명확하게 밝혀냈습니다」라는 인식하에서, 「새롭게 탄생한 아동 주간지도, 이 현실을 무시하려고 하거나, 단번에 거기서 비약하려고 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습니다」이라고 현실노선을 세습하려고 하고 있다. 그 점이 관 등에게는 월간지 시대와 아무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처음에는 팔리지 않았던 주간지도,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점점 부수를 늘려나간다. 만화가도, 월간지 시대와는 틀린 신인이 기용되게 되고, 신구의 세대교체가 진행되어 갔다. 월간지 페이스로 창작을 계속하는 것은, 만화가에게 있어서는 상당한 부담이었던 것이다.

거기에 맞춰서, 월간지가 부수를 떨어뜨린다. 휴간에 들어가는 잡지도 속출한다. 그것은 주간지의 신장과는 반비례되는 움직임이었다. 특히 61(쇼와36)년이라는 해가 어수선했다. 먼저 『히노마루』가 2월에 휴간. 『즐거운 1년생』부터 『즐거운 6년생』까지가 3월에, 『소녀』도 3월호를 내고 휴간했다. 『중학생의 벗』 1년-3년, 및 『고교진학』도 3월에 휴간. 또한 긴 역사를 가진 고단샤의 아동잡지 『소년 클럽』『소녀 클럽』이 이 해의 12월호로 휴간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을, 기관지 『예각』은 「아동잡지계의 대이변-휴간, 합병을 둘러싼 문제점!」(『예각』73호 62년 1월 25일)이라는 타이틀로 크게 보도하고 있다.

한편, 소년주간지에 이어서 소녀 주간지의 발간도 기획실행되었다.

63년 1월에는 고단샤로부터 『주간 소녀 프렌드』가 창간. 처음에는 읽을거리나 예능 뉴스가 잔뜩 포함되어 있던 이 소녀잡지는, 점점 만화의 게재량을 늘리고, 결국 아오이케 야스꼬, 쇼지 요꼬, 사토나카 마치꼬, 야마토 카츠키 등의 재능을 키운다. 또한 같은해 5월에 스타트하게 되는 슈에이샤의 『주간 마가레트』에서는 우라노 치카꼬, 이께다 리요꼬, 야마모토 레미카 등이 히트 작을 만들어내게 된다. 이 소녀주간지는 구상자체는 소년용 주간지 창간시부터 있었던 듯 하며, 소년용과 마찬가지로 소학교의 5, 6년생 소녀를 독자대상으로 삼아 보다 광범위한 독자를 획득하려 한 것이었다.

주간지 체제는 이렇게 해서 이후에도 유지되어 나가지만, 나중의 전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소녀용으로는 『리본』『별책 마가레트』『나카요시」등 월간지 쪽이 건투함으로써 반드시 주간지가 만화잡지의 주류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소년용으로는 단연 주간지쪽이 많이 팔리고 있다.

소년 만화의 전쟁물 붐

어린이용 주간지가 부수를 늘려나감에 따라, 게재되는 만화에도 매스컴이 주목하게 되었다. 물론 비판적이다. 먼저 『도서신문』(63년 5월 4일)에는 아동문학자인 스나다 히로시가 「어린이의 정신을 유혹하지 마」라는 타이틀 하에, 소년소녀 주간지에 게재되고 있는 만화 작품이나 기사가 어린이를 획일적인 정신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비판한다. 「주간 소녀 프렌드」나 「주간 마가렛」의 멋쟁이 특집을 예로 들면서 「그녀들은 이미 여자라는 사실을 강요받고 있다」「소녀들로부터 인간성을 ㅃㅒ앗아 가는 사실에 대해서 격렬하게 항의해야 한다」라고 한다. 소년용의 주간지쪽은 「충실한 샐러리맨」의 예비군을 키우는 장소가 되었다고 한다.

『아사히 신문』(64년 2월 20일)의 「이대로 좋은가 소년잡지」에서는 사카니시 시호가 「하리스의 선풍」「마루데 다메오」「오소마츠군」등을 예로 들면서, 뭉뚱그려 「격렬한 승부와 폭력의 세계」를 규탄한다. 이 문장에 대해서, 동지의 같은해 2월 28일에는, 대상인 『주간 소년 선데이』의 편집부원인 야마자키 이꾸오가 반론을 기재하고 있다. 야마자키는 「어린이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공부를 강요받는 생활속에서,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만화를 읽는 것이 그렇게도 유해한 일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하였으며, 혹시 어른의 상식에 맞는 만화를 어린이들에게 안겨준다고 해도 절대로 어린이들은 기뻐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언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라는 말이다.

『주간 소년 매거진』의 편집장인 마키노 타케로도 사카니시의 비판에 반발한다. 「이걸로 좋은가 소년 주간지평」(『예각』79호 64년 5월 5일)에서 「마루데 다메오」에 대한 비난을 중심으로, 일부분을 들어서 전체를 비난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 독자가 어떤 인물에 공감을 느끼는가, 독자를 고려한 비판이 필요하다 라고 반론하고 있다.

이렇게 그 스타트 시점부터 우리나라 최초의 소년용 주간잡지의 평판은 환영할 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떻게 궤도에 올라서게 된 후에도, 그 편집방침이 문제시되어 갔다. 특히 소년주간지에서 다루는 戰記붐시기에는 논의가 백출하고 있다.

60년대 초반, 양지는 전함 야마토나 제로센 등, 제2차대전시 일본의 병기를 지면에서 "멋지게"소개했지만, 여기에 대해서 보호자·교육자들로부터 지속적인 비난의 목소리가 튀어나오게 된 것이다. 전쟁의 비참함에 눈을 감고, 그것을 멋대로 찬미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냐 하는 것이다.

전쟁물의 붐은, 61년에 시작되고 있다. 그 직전에 전차나 비행기등의 프라모델 유행이 일어나고, 또 「라이플맨」이나 「권총무숙」등 미국제 서부극의 TV방송과 연관되어 일본에서 건붐이 일어나고 있었다. 병기나 메카에 어린이의 눈이 향하는 환경이 만들어져 있었던 것이다.

결국에는 인기만화가가 권총불법소지죄로 체포되는 사건조차 일어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움직임과 연동해서 어린이 잡지에도 전쟁물 붐이 찾아오게 된다. 「제로센 하야토」「백호전차대」「아아 특별공격대」「紫電改 타카」「제로센 레드」「아카츠키 전투대」등, 전기만화가 잡지를 장식해 나간다. 그 피크는 62년이지만, 63년이 되어도 병기, 전쟁물이 소년잡지의 중심이 되어 있다. 그들 만화작품, 기사에서는 전전의 일본 비행기나 전함의 우수함이 찬미되고 있으며, 「병기·전쟁물 붐이 단순한 군사지식의 해설·도해로부터 시작되어 점점 계통적인 『대동아전쟁긍정론』의 소년판이 되어 있다」(토이 요시오「아동문화와 반전사상」『문화평론』67년 5월)라는 우려도 무리가 아니었다.

이런 속에서 64년 7월 27일에는 「동경도 청소년의 건전한 육성에 관한 조례에 대한 기본적인 제정요강」의 수정안이 도의회에서 강행채결되고 있다.

이 시기의 만화의 변질상에 대해서, 아동문학자인 토리 코시노부는 당시 흥미깊은 발언을 하고 있으므로 인용해 보자(「신포지엄·소년잡지의 전기 붐『독서과학』24호 63년 9월 20일).

최근 수년동안의 아동잡지의 경향은, 전체적으로 과거의 「꼬마장군」「월광가면」등에서 볼 수 있었던 정의 대 악(비록 어설픈 정의이기는 하지만)이라는 패턴이 모습을 감추고, 일정한 룰에 따른 기술상의 다툼이라고 하는 패턴이 늘어가고 있다. 그 전형적인 예가 야구만화이지만, 전쟁물도 게임화 되었다는 점에서 동일한 계열에 속하는 것이 많다.

그러나 동시에, 게임화한 대립·갈등의 패턴 속에서 새로운 정의관이 태어나려고 하고 있다. 그 하나가 민족주의적인 경향이며 (중략) 최근에는 편협한 애국주의에 입각한 정의관이 강요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 발언의 전반부분, 이제까지의 정의와 악이라고 하는 이야기의 대립구조가 기술대 기술의 다툼이라는 패턴으로 변화해 왔다고 하는 항목은, 주목할 만하다. 이 시절 만화의 이야기구조 그 자체가 변질되어 왔다는 사실이 지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의미없이 에스컬레이트되는 전투장면이나 대결장면도, 그런 기술과 기술의 대결이 주안점이며, 사상적인 배경은 이차적이라는 것이다. 아마 독자도 그런 문맥을 보고 만화를 즐겼던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지만, 과연 어떨까.

「아카츠키 戰鬪隊 大懸賞」문제

이런 전기만화붐속에서 『주간소년 선데이』에 연재되어 인기가 있었지만, 상량준보원작·원전광경그림의 「아카츠키 전투대」였다. 연재개시는 67년의 11월. 이 작품은 제2차 대전중, 남태평양에 있는 섬을 지키기 위해서 미국군과 싸우고, 나중에는 특공을 가해 죽어가는 청년들의 비극을 그린 것이었다. 이 「아카츠키 전투대」가 문제가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직접 적으로 그 내용이 비난 받은 것은 아니라, 작품명을 빌린 현상모집이 문제가 되었다. 만화 그 자체가 만들어낸 사건은 아니지만, 만화를 중심으로 하는 당시의 풍조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으로써 여기에 소개한다.

동지의 68년 3월 24일호에서는 「아카츠키 전투대 대현상」을 대공모, 그 상품으로 전기 만화에 관련되는 상품들을 내걸었다. 일등상이 일본해군병학교제복·제모·단검·띠세트, 2·3등상이 미국 콜렉션, 4·5등상이 독일군 콜렉션, 이하 9등까지는 철모·피스톨·군기 등이 독자에 대한 상품으로 내걸렸다.

이것을 본 古田足日, 토리 코시노부 등의 아동문학자는 「마치 전쟁중의 소년잡지 같다」라고 반발한다. 그 결과 『아사히 신문』(68년 3월 15일)에서 「소년주간지의 현상품에 군국주의 색이 잔뜩 들어가 있다는 비판도」라는 타이틀하에 보도하고 있다. 작품 그 자체도 군국주의 색채를 띄고 있으며, 리얼한 모조품을 경품으로 내건 사실 자체가 큰 문제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동지에서는 『주간 소년 선데이』편집장의 코맨트도 게재한다. 「이 잡지에서는 태평양전쟁에서 살아남은 병사들의 이야기 등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어린이들의 태평양전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원하는 물품 조사에서도 그 시절의 물품을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그 관심이나 흥미는 역사적 자료, 혹은 단순한 장난감으로써 가지고 싶다는 정도의 것이다」라고 해석하고 있다.」

먼저 아동문학자 44명, 화가 12명, 완구 디자이너 1명이 작성한 「『소년 선데이』의 대현상에 대한 아동문화관계자의 성명」과 소학관 사장에 대한 「요청서」가 3월 18일에 제출되었다. 요청서는 「유소년의 건전한 심정의 발달상 바람직하지 못한 영향이, 절대로 적지 않다」라는 관점에서 상품의 변경을 요구하였으며, 동지에 최근 「군국주의의 읽을거리 및 만화가 상당히 눈에 띄고 있는」점을 우려해서 그 사후처리를 요구하고 있다. 요청자들은 같은 날, 일본 어린이를 지키는 회와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개최, 폭넓게 이 문제를 어필한다. 나중에는 어린이와 관계되는 단체가 되는 「소년잡지 간담회」도 결성되어, 삼십 수개의 단체가 연명으로 새롭게 소학관에 항의하기에 이른다.

소학관측도 사태에 대응한다. 상품은 역사적인 자료이다, 전쟁물은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것이다 라고 응답한다. 그 후 相賀 사장 스스로가 출석해서 회의가 열리지만, 문제의 처리는 장기화되어 갔다. 이런 경과의 상세나 당시의 자료는, 항의하는 당사자인 古田足日의 평론집 『아동문학의 기』(70년 이론사)에 기록되어 있으므로 한번 읽어 보시라.

전쟁물은 50년대 말부터 만화속에 침투되어 온 장르였지만, 어린이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와 상관없이, 제작하는 측이 반성없이 그것을 점점 더 에스컬레이트 시키게 된 경위에는 역시 문제삼을만한 점이 다수 있었다. 소년용 주간만화 잡지가 부수를 늘리고 있는 시기에 발생한 하나의 사건이었다.

이야기를 본론으로 돌리자.

이런 사건을 발생시키면서도 『주간 소년 선데이』와 『주간 소년 매거진』이라고 하는 두 개의 소년 주간지는 그 후 치열한 경쟁을 전개하면서 부수를 늘려나간다. 결국 어느 쪽이 우위를 차지했는가 하면, 『주간 소년 매거진』쪽이었다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65년에 우치다 마사루가 3대째 편집장으로 취임하고 나서는 보다 비쥬얼한 지면구성과 극화의 게재에 열을 올려서, 비약적으로 부수를 늘려나가게 되었다. 66년말에는 100만부의 궤도에 올라섰고, 70년대 초반에는 150만부를 돌파하기에 이르렀다.

우치다는 학생시대교육학자인 카라자와 토미타로에게 사사, 전후의 민주국가에서의 인간의 생활방식을 재고, 친구이면서도 엄부이기도 한 새로운 부자관계를 잡지편집의 기본으로 갖추었다고 한다. 그 구체적인 전개가 「거인의 별」이며, 이후 이 만화는 『주간 소년 매거진』의 성격을 결정지어버릴 정도의 영향력을 가졌었다. 동시에 우치다는 70년 1월 신년호의 권두 「극화입문」에서, 「이 한 장의 그림은 1만자의 글보다 뛰어나다」라고 하는 큰 활자의 카피를 채택하고 비쥬얼한 지면구성을 강조했다. 이것은 대반창사입안의 일러스트 기획을 염두에 둔 것이었지만, 극화라고 하는 표현 그 자체의 파워를 전면에 드러낸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는 대학생이 만화를 읽는 다고 하는 사실 자체가 매스컴의 화제를 불렀던 그런 시대였다. 『주간 소년 매거진』의 부수 증가도, 그런 독자층의 위로의 확대와 합치되고 있다. 양 주간지 모두 이 순수한 어린이용 만화잡지라고는 할 수 없는 지면제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70년대에는, 『주간 소년 매거진』에서는 카게마루 죠야의 「와루」(70년), 조지 아키야마의 「제니 게바」(70년), 역시 조지 아키야마의 「아슈라」(70년), 마츠모토 레이지의 「오또꼬 오이동」(71년), 나가이 고「데빌맨」(72년), 미즈시마 신지「야구광의 시」(72년), 카지와라 잇키 원작·나가야스 다쿠미 그림의 「아이와 마코토」(73년), 츠노다 지로「우시로의 백태랑」(73년), 데츠카 오사무의 「세눈의 토오루」(74년) 등의 화제작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 책의 주제와 관련되는 점에서 본다면, 상기한 작품 중 「아슈라」가 논쟁을 불러일으키게 되지만, 잡지의 제작도 작자의 의식도 독자층을 상당히 높이 잡고 설정되어 있다. 그 때문에 초기 소년주간지를 취급해야 하는 이 장에서 다루기에는 위화감이 생겨나므로, 이 작품에 대해서는 제7장인 청년지 항목에서 전체적으로 다루려고 한다.

「파렴치 학원」과 「자포자기 마리아」

이 장에서는, 마지막으로 나가이 고의 「파렴치 학원」 및 데츠카 오사무의 「자포자기 마리아」가 불러일으킨 문제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주간 소년 선데이』『주간 소년 매거진』 양지에 이어서, 소년 주간지가 몇 개인가 창간된다. 63년에 창간된 『주간 소년 킹』(소년화보사), 68년 창간의 『소년점프』(슈에이샤), 69년창간의 『소년 챔피언』(추전서점)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월간지인 『소년 북』의 편집자들에 의해서 창간된 소년지 『소년 점프』일 것이다. 처음에는 격주로 스타트한 이 잡지는, 선행하는 소년용 주간잡지가 독자층을 올려나가고 있는 틈을 메우면서, 주로 소·중학생을 대상으로 하였다. 또한 유명 만화가를 갖추지 못했던 현실을 역으로 살려서, 신인의 발굴에 힘을 기울였고 성공한다. 니시무라 시게오의 회상록 『안녕 내 청춘의 『소년 점프』』(94년 비조신사)에 그 전말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지만, 마켓 리서치 결과를 바탕으로, 편집의 키워드로 「우정」「노력」「승리」를 제창하였고, 만화가의 전속성, 인기투표의 철저함을 시도했다는 점에 그 성공의 비결이 있다 하겠다.

이런 편집방침하에서 『소년 점프』는 당초 나가이 고의 「파렴치 학원』(68년 8월), 모토미야 히로시「사나이 한명 골목대장」(68년 12월)이라는 2대 히트작을 만들어 내지만, 특히 「파렴치 학원」은 그 성묘사에 의해서 무수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파렴치 학원」이 연재된 60년대 말에는 TV프로그램 「꽁트 55호의 뒷 프로그램을 날려버려!」에서 야구권에 의해 여성을 나체로 만드는 장면이 화제가 되고, 「8시다! 전원집합」(TBS)에서는 카토 차가 스트립을 연기, 「조금뿐이야 당신도 밝히는군」이라는 아슬아슬한 대사가 유행어가 되고 있다. 그런 여세로 어린이 만화에도 섹스가 적나라하게 그려지게 된 것이다. 나가이 고의 「파렴치 학원」도 그런 시대현상속에서 눈깜짝할 사이에 어린이들이 주목하는 작품이 되어 간다.

비판의 화살을 뒤집어 쓴 것은 스커트 뒤집기를 필두로 하는 성을 놀이화한 장면, 수염 고질라라는 소학교 교사가 권력과 성의 노예로써 그려지고 있는 점 등이다. 특히 70년에 TV화되고 나서는 한층 더 그런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간다.

당시의 신문은 되풀이 해서 이 작품을 화제로 삼았다. 『아사히 신문』(70년 1월 8일)은, 「만화의 세계」라는 연재기사의 제4회째에 「우왓 파렴치」라는 표제를 통해 「파렴치 학원」을 소개하며 「서점의 진열대에서 말야. 소학 2,3학년생 정도의 소년들이 남성 주간지의 누드 사진을 대충대충 들춰보고 있는 겁니다. 불쌍할정도로 겁에 질려서 말이죠. 그 애들에게 명랑한 에로티시즘을....이라고 생각하고」라는 작자의 코멘트나, 현대 어린이 센터의 아베 스스무의 의견 등을 싣고 있다. 비난의 톤은 얼마 되지 않는 소개기사다. 다음날의 『마이니치 신문』의 기사 「성의 조숙화와 젊은이들」도 소개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양지가 크게 보도함으로써 많은 어른들을 포함하는 논쟁의 범위가 넓어지게 되었다는 사실은 틀림없다.

『마이니치 신문』 1월 17일의 「파렴치 만화 어떻게 보는가」에서는 三重縣 四日市의 중학교장회가 추방을 결정, 청소년보호조례심의회에 유해도서(성인용)로 지정해 주도록 압력을 가한 사실을 보도 하고 있다. 거기다 동지의 19일의 사설 「어린이와 파렴치 만화」에서는 어른의 성급한 가치관으로 규제하는 일에 의문을 던지고 있으며, 2월 6일의 「파렴치 만화를 좋아하는 아이라도 걱정 없다」에서는 동경어린이 교육센터의 조사보고를 바탕으로, 파렴치 만화와 정신발달의 장애와의 관련성이 희박하다는 결과를 보고 하고 있다. 그 외에 『주간 신조』나 『주간 문춘』 등의 주간지나 NHK의 보도프로그램에서도 취급되고 있으며, 출판사 내부에서의 편집자 개인의 발언을 둘러싼 트러블까지 발생했다. 편집자의 한명이 71년 1월에 개최된 일교조(日敎祖)의 대회에서 잡지제작의 현상을 비판한 것을 상사가 문책, 시말서를 쓰라고 요구한 사건이다.

「파렴치 학원」에 대해서는, 현의 청소년보호심의회와 청소년육성현민의회는 연명으로 슈에이샤에게 「저질책을 발간하지 않도록」요망서를 보내고, 교장회나 PTA나 부인회에도 추방협력을 요청하고 있다. 「파렴치 학원」의 묘사는 현재 시점에서 본다면 얌전하게 보이지만, 당시로써는 충격적인 것이었다는 사실을 이런 보도로부터 알 수 있다. 실은 어른이 의식하고 있던 것은, 나체가 아니라 여성의 생생한 육체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나가이 고가 그린 것은 어른들의 그런 망상과는 달리, 표면적이며 시기적인 인상에 멈춘다. "나체"에 대한 흥미로 생각된다. 어른과 어린이의 의식의 차이를 드러내는 사건이었다고 받아 들일 수 있겠지만, 과연 어떨까.

「파렴치 학원」과 마찬가지로, 성묘사가 문제가 된 것이 『소년 챔피언』에 연재되던 데츠카 오사무의 『자포자기 마리아」다. 퓨그마리온 신화의 현대판인 이 작품에서, 데츠카는 성교육을 겸해서 성교나 여성 성기의 구조를 명확하게 그렸다. 문제가 된 것은 동지의 70년 8월 24일호다. 후쿠오카현 아동복지심의회는 동월 27일, 동호를 유해도서로 지정해 주도록 신청, 금방 인정되었다. 지정된 이유는 소년용 성교육을 의도하기는 한 것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아직 자극이 너무 강하고, 청소년의 건전한 발육을 방해한다」라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작가인 데츠카는 「어린이들에게, 만화를 통해서 올바른 성교육을 할 필요를 느끼고, 대단히 진지하게 착수했습니다」(『적기』70년 8월 28일)이라고 코멘트하고 있다. 또한,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의 어린이들은 성 그 자체를 잘 알고 있습니다. 2DK의 아파트 같은데서는 양친의 성교를 보기까지도 합니다. 내 아이들도 소학교 3학년생이지만, "어젯밤은 대단했죠"라고 간단하게 말하곤 합니다」(『주간 포스트』70년 9월 18일)라고 발언하고 있다. 그 정당성을 주장하지만, 결국은 무시당하게 된다.

「자포자기 마리아」는 원래 「파렴치 학원」에 자극받아서 연재가 시작된 것이었지만, 『주가 포스트』의 기사에 의하면 같은 해 2월 16일 방송된 NHK판 성교육(「안녕하세요 부인」에서 방송)에 직접 영향을 받은 작품이라고 한다. 70년 4월부터 『주간 소년 킹』에 연재된 「아폴로의 노래」도 마찬가지 테마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카나가와 현으로부터 유해지정을 받았다.

70년대의 소년주간지는 민족차별사건도 일으키고 있다. 70년 8월 하순, 재일외국인의 인권을 지키는 회와 일본조선연구소가 『주간 소년 선데이』에 연재된 「남자의 길」에 항의를 했다. 카지와라 잇키 원작·야구치 타카오 그림의 연재만화였다.

문제가 된 것은 8월 30일, 9월 13일호에서 「종전직후의 혼란기에 암시장에 등장한 "제3국인"이 일본인 상인으로부터 자릿세를 뜯어내거나, 일본여성을 추행하려고 하는 장면등이 그려지고 있다」「당시의 "악의 상징"으로써 조선인·중국인이 취급되고」있다(『아사히 신문』70년 11월 30일)이라는 것이다. 차별할 생각은 없다고 하는 출판사측의 회답에, 일본조선연구소가 거듭되는 항의, 그 후 편집부와 교섭의 자리를 가진 다음 최후에는 출판사가 사죄하게 되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시인인 吳林俊이 『아사히 저널』(70년 10월 11일)에 「차별을 확대하는 매스컴」이라는 장문의 비판을 싣고 있다. 여기서 오는 「제3국인」이라고 하는 취급이나, 조사를 생략한 독특한 어조등의 표현을 축으로 이 문제의 배후에 있는 차별구조를 지적하고 있다.

소년 소녀용 만화주간지는, 이런 다양한 사건을 일으키고 있으면서도 이후 일본의 만화 문화를 지지하는 출판물로써 군림해 간다. 현재의 『주간 소년 점프』의 600만부라고 하는 부수는 이상이라고 할 수 밖에 없으며, 다른 출판물을 훨씬 능가하는 괴물 미디어로까지 성장하게 된 것이다.

Who's 관리자

profile

80년대에 태어나 90년대를 성장해 2000년대를 살고 있다. 사회학과 정치학을 전공했지만, 스스로를 역사학도라고 생각한다. 면식과 만화 수다와 어린이를 좋아한다.


  1. 전후만화50년사, 제1장 패전과 만화출판

    제1장 빨간책 만화의 출판 패전과 만화출판 1945년의 패전의 시점을 경계로, 일본은 큰 방향전환을 했다. 정치경제는 문론, 대중문화도 급속하게 변모했다. 미국에서 전혀 새로운 문화와 생활습관이 이입되어, 지금까지 전쟁에서 심신과 함께 피폐했던 대중의 생활에 급속하게 침투했다고 보인다. 여성의 패션을 중심으로 ...
    Date2007.11.21 Category번역 Reply4
    Read More
  2. 전후만화50년사, 목차

    잠깐 시간을 내어 적어둠. 번역어 선택의 기준 같은 것은 없음. ㅡ.ㅡ;; ----------------------------------------- 목차 시작하며 3 제1장 딱지본 만화의 출판 패전과 만화출판 11 어린이 만화잡지의 창간 13 딱지본 만화 출판통제 18 딱지본 만화의 정점 24 딱지본 만화의 출판실태 28 그 후의 전개 30 제2장 월간지와 ...
    Date2007.11.13 Category번역 Reply0
    Read More
  3. 다케우치 오사무 [전후만화50년사] 서문

    최근 읽고 있는 책. 재미는 있는데 일본어가 안되니 아주 답답하다. 공부하는 셈 치고 책의 서문을 해석해 보았다. 틀린 해석을 지적하면 할 말은 없는데, 어차피 이 책의 다른 번역문을 가지고 있으니 해석상의 지적은 별 영양가가 없을 것이다. 몇가지 이해 안되는 표현 때문에 좀 해맸다.(그 부분들은 여기서도 잘 처리...
    Date2007.11.12 Category번역 Reply0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Nex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