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武田晴人 <고도성장> 시작하며

posted Jun 13,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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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제가 따로 볼때 참고하기 위해, 인명이나 고유명사는 일본 위키피디아의 페이지를 링크해두었습니다. 하이퍼링크는 파란글씨로 처리되었습니다.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타카다 하로히토(武田晴人) <고도성장>

시리즈일본근현대사 -8- 이와나미 신서 1049


타카다 하로히토(武田晴人) <고도성장> 시리즈 일본근현대사 -8- 이와나미 신서 1049



시작하며 - 경제성장 신화의 탄생

 

지금은 일본의 경제상태를 보도하는 여러 미디어에서 ‘경제성장’이 주제가 되고, ‘경제성장률’의 고저로 일희일비하는 것은 일상적으로 드문 일은 아니다. 그러나, 60년쯤 전에, 패전으로부터 머지않았던 일본에서는 그러한 광경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그것은 패전의 혼란에 의해 경제성장이 ‘먼 꿈’이었기 때문은 아니다. ‘경제성장’이라는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사람들은 경제상태의 역사적인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경제발전’이라는 말은 사용했어도, ‘성장’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것은 전문가들도 마찬가지였다.

 

경제성장의 이론

 

경제학의 전문적인 글에서 ‘경제성장’이라는 말을 제목으로 넣은 글이 등장 하는 것은, 1955년 전후의 일이었다. 국립국회도서관의 소장도서검색에서, '경제성장'이라는 말로 검색하면, 책 제목으로 이것이 사용된 가장 오래된 책은, 타카타 야스마(高田保馬) 편 <<경제성장의 연구>> 제1권, 유희카쿠(有斐閣)로 1954년의 것이다. 그 책에는 모리시마 미치오(森嶋通夫) <경제성장에 의한 완전고용정책>이라는 논문등이 수록되어있다. 또 같은 해에는 나카야마 이치로(中山伊知郞) 편 <<일본경제의 구조분석>>상하권이 동양경제신문사에서 간행되었고, 아라 켄지로(荒憲治郞) <일본 경제의 성장률>등이 논문 제목으로서 성장과 관련한 말을 쓰고 있다. 전문가의 논의에서 경제성장은 키워드의 하나로 되면서 있던 것을 엿보는 것은 가능하다.

 

그리고, 그 다음해 훗날 <<경제성장의 제단계 - 하나의 비공산주의 선언>>(원저의 간행은 1960년)라는 약간 센세이션한 제목의 책을 쓴 W.W.로스토우의 <<경제성장의 과정>>이 동양경제신문사에서 번역 간행되었다(원저의 간행은 1952년). 이 책은 경제학자들이 경제성장의 이론에 대한 관심이 높아갔던 것을 배경으로 하여, 역사적인 관점에서 경제성장과 경기 순환의 과정을 쓴 것이었다.

 

국민소득개념의 도입

 

이러한 움직임에 등을 떠밀린 격으로서 관청 이코노미스트들(경제관료)도 경제성장에 대한 관심을 명확하게 가져가게 되었다. 그때까지 경제백서와 같은 정부 간행물은 일본경제 상황을 이야기 할때, 광공업생산지수의 성장률을 들거나, 혹은 물가의 변동을 가지고 경제활동의 전반적인 이미지를 독자에게 주었을 뿐이었다. 미국에서 유학한 케인즈 경제학 출신으로 일찍부터 일본에서의 소개로 명성을 알린, 츠루 시게토(都留重人)는 제1회 경제백서에 있는, <<경제실상보고서>>(1947)의 집필자로도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츠루 시게토도 경제성장이라는 말을 이 백서에서는 사용하지 않았다. 이 당시 경제상황에 대한 설명은 말하자면 '광공업 생산은 심각하게 저하되고, 물가는 급등을 계속했다'는 등의 표현이 일상적이었다.

 

그런식으로 쓰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국민경제를 하나의 단위로서 그렇게 매년 일어나는 경제활동의 총산출량을 부가가치로 계산하는 경제통계가 정비된다면, 경제성장을 성장률로 표현하는 것이 가능하지는 않다. 광공업생산지수와 물가지수는 꽤 일찍부터 통계적인 관찰이 이루어졌지만, 서비스 생산량과 정부의 생산량을 집계량으로서 파악하는 방식은 케인즈 경제학적인 수요관리정책이 제창되는 등, 경제학의 발전과 함께 새롭게 개발된 경제학적인 인식수단 이었다.

 

경제정책의 입안자들이 이렇게 발전하기 시작했던 거시경제학의 새로운 방법에 착목하고 이용하는 것이 된 것은 1950년대였다. 일본에서도 이러한 새로운 흐름이 즉각 받아들여졌다.

 

경제안정본부(훗날 경제기획청)가 이러한 국민경제의 집계수치로서 추계에 착수했던 것은 1950년 전후의 시기였다. 그리고 국민소득조사실에 의한 시험계산이 <백서>에 사용된 것은, 51년판에 <국민소득과 생활수준>이라고 이름붙인 항목에 추계결과로 언급된 것이 최초의 일이다. 그러나 거기서 문제가 된 것은 소비지출의 戰前과 대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통계가 매년 쌓여갔어도, 55년 백서까지는 그 추계에 따른 설명은 ‘(쇼와)29년도의 국민총생산은 전년도보다, 약 3%, 금액으로는 2천억엔 정도 증가했고, 물가의 변동을 소거한 실질액으로도 2%쯤 증가했다. ······ 무엇보다도 지금까지의 국민총생산은 27년도가 11.6% 28년도가 15.8%로 급격한 팽창을 보였기 때문에, 그렇게 비교하면 현저하게 늘어남이 둔하다.’라고 쓰여져 있다(<<쇼와29년도년차경제보고서>>). 전년대비 증가를 보고 파악하는 방법은, 이미 보여졌지만, 그 전후도 포함해서 ‘경제성장’이라는 말도, ‘성장률’이라는 말도 보이지 않는다.

 

예측된 미래상

 

56년 백서에 따르면 앞에서, ‘높아진 성장률의 비밀’, ‘성장률의 둔화와 투자유인의 감퇴’ 등의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 이 백서는 그 결어에서, 잘 알려져 있는 구절 ‘이제 전후는 아니다’에 이어서 ‘우리들은 이제와는 달라진 사태에 당면한 것이다. 회복을 통한 성장은 끝났다. 이제부터의 성장은 근대화에 의해 지속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56년 백서가 부제로 <일본경제성장과 근대화>를 내걸었던 것은 이런 방법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 이렇게 ‘경제성장’이라는 말은 경제활동의 실태를 표현하는 중요한 말로서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있는 ‘이제 전후는 아니다.’라는 말로 데뷔하게 되었다.

 

그러나 전후와의 결별을 선언했다고 받아들여진 이 백서의 기술은, 실제로는 경제성장의 조건인 근대화의 실현이 곤란한 과제라는 것을 예고하는 의도가 강했다.

 

예상되었던 곤란을 강조하는 점에서 ‘이제 전후는 아니다’라는 말을 경제백서의 저자가 차용했던 것으로 생각되는 나까노 요시오(中野好夫)의 평론에서는 보다 명료했다. 그것은 나까노가 <<문예춘추>> 56년 2월호에 기고했던 <이제 ‘전후’는 아니다>라고 쓴 문장이었다. 나까노는 이 평론에서 눈 앞에 펼쳐진 보수합동 등에 의한 구세대의 부활에 경종을 울리고, 전후의식으로부터 뽑아낸 미래 지향적인 비젼을 명확하게 하기 위한 시기로 오는 것을 호소했다(<<고도성장과 일본인>>3).

 

‘구세대의 부활’이란, 보수 합동을 기반으로 하여 성립된 제3차 하토야마 이치로(嶋山一郞) 내각의 각료 18명 중 13명이 공직추방을 당한 것에서 상징되는 것으로, 戰前期의 정치적 지도자층의 부활이 두드러졌던 것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마스다 히로시(增田弘) <공직추방해제의 영향>). 피추방자의 정계복귀는, 역대내각 각료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서서히 올려, 제5차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내각(53년 5월 성립)에서는 과반을 넘어서게 되었다. 그당시만 해도 보수합동 후, 하토야마 내각의 70% 정도의 비율은 구세대의 복권을 인정한다는 인상이 강했었다. 나카노는 ‘이제 '전후'는 아니다'라고 표현하는 것으로 전전과의 결별을 더욱 함의하고 있었을 것이다. 새로운 세대에게 미래를 부탁했던 것이다.

 

그 때 나카노는 패전후 소국이었던 일본의 현실을 직시하고, 아시아·아프리카 등의 ‘소국’에서 배운 소국으로서의 사람들의 행복을 실현하는 이상에 다가서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런 나카노가 묘사한 미래상에서도, 전후의 종결이란, 시대의 새로운 정신을 추구하는 의미로서 혁신적인 것이지만, 많은 곤란함이 예상되는 소국으로서 이상적인 국가건설로의 출발점을 세우고 있는 것을 의미했다. 다가올 미래의 곤란을 예측하는 것이라는 의미에서는, 백서도 나카노 요시오도 같은 시선을 공유했다.

 

그러나 이러한 저자들의 의식과는 관계없이, ‘이제 전후는 아니다’라는 말은, 패전후의 경제부흥의 고난으로부터의 결별로 받아들여진 것 같았다. 그중에서도 백서는 그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생각의 방식이었던 ‘경제성장’이라는 포착방법으로서, 오게 될 시대를 표현하는 것으로서, 시대의 전환을 예고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경제성장’이라는 말은, 전후 일본의 경제사회를 상징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나카노가 ‘이제 전후는 아니다’라고 하는 말에 담은 생각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고, 일본은 경제‘대국’의 길을 한결 같이 달리기 시작하게 되었다.

 

스피드광의 시대

 

무엇보다도, 경제성장이라는 말이 가지는 의미와 그것이 국민소득으로 연결되는 추계로 기인하여 보여 지는 것으로서 있는 것을, 많은 국민이 이해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더구나 그것이 경제활동의 총량을 보는 것이었어도, 거기서 생활수준의 질이 반영되지는 않는 것, 추계에서 누락된 가계노동 등 중요한 경제활동이었던 것 등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성장이라는 말이 가지는 이미지에 직감적으로 반응하고, 거기서 처리된 일본경제의 규모확대를, 마치 자식의 키를 측정하는 기둥의 상처와 같이 보고 있던 것은 아닐까.

 

그랬기 때문에, 국민소득배증계획이 공표되었을 때, 국민의 많은 수는 ‘소득’이란 월급봉투의 알맹이 같은 것이라는 정도의 인식 밖에 가지지 않고, ‘배증’이란 적금이 두 배가 되는 것이라는 정도로 받아들여졌을 뿐이다. 국민소득의 배증이 적금 두배론으로 오인되어, 기대를 높였던 시대의 상황이 표현되었다.

 

국민소득배증계획이 공표된 1960년으로부터 2년 후에 하야시 슈지(林周二)가 쓴 <<유통혁명>>(中公新書)가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그 저서에서, 하야시는 유통혁명의 역사적인 필연성을 ‘세상의 가속화’라는 말로 표현했다. 가속화하는 의식주라는 예를 사용하여, 일상적인 상품이 시대와 함께 빠른 스피드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 하야시는, 사람들의 나날의 생활의 변화가 급속하게 변하는 것을 실감나게 알려주는 것으로, 고도성장의 시대의 특성을 훌륭하게 묘사하는데 성공했다. 성장이 무엇에 의해 재어진다고 해도, 그리고 그 집계량이 어떤 것일지라도, 경제성장을 의식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변화의 양적인 크기와 스피드(변화율)에 관심을 모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자주, 생활의 질에 의해 관심을 배경으로 밀어놓는 등, 후에는 성장경제의 잘못이라고 인식되어진 문제를 동반하게 되었다.

 

그것은 여하간에, <<유통혁명>>이 널리 읽혀진 것은, ‘경제성장’이라는 말이 백서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불과 6년 정도에, 그 내용에 대한 이해는 미숙한대로,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1990년 전후의 버블붕괴 이후, 제로에 가까운 성장률 밑에서, 사람들은 ‘고성장경제’의 시대를 기준으로, 눈앞에 펼쳐진 경제실태를 이상하게 느끼고, 성장률의 회복이 무엇보다도 불가결한 것이라는 언설로 질문을 품은 사람이 없는 만큼으로 되었다. 격세지감이지만, 그정도까지로, ‘경제성장’이라는 말은 탄생부터 40년 정도, 우리들의 일상적인 경제관념의 중심으로 자리잡은 것으로 깊게 침투했던 것이다.

 

이 책이 이야기 하는 것은, 이러한 ‘경제성장의 신화’가 일본의 사람들 속으로 깊이 침투한 시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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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더기 2008.07.17 01:56
    조금씩 하다보니까, 서문을 다 쓰는데 한달이 걸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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