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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만화잡지史와 소녀의 탄생

posted Dec 22,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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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락현은 한국의 독보적인 만화평론가라 할 수 있다. 가끔 그의 블로그(링크)를 즐겨 보는데 최근에 日本소녀만화잡지사(링크) 라는 제목의 포스팅이 올라왔다. 재밌게 읽었다. 이는 한국에 잘 알려져 있지 않던 일본의 소녀만화잡지사를 정리한 것으로 상당히 귀중한 글이다. 송락현님의 노고에 감사를 드린다. 이런 분들 때문에 우리는 공들이지 않고 고급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몇 가지 의문이 들어 간략한 코멘트를 남기고자 한다. 이 글은 정리된 글이 아니며 개인의 단상을 적은 메모에 가깝다. 또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충분한 자료조사가 뒷받침 되지 않았음을 밝힌다. 이는 내가 꺼낸 견해는 얼마든지 사료에 의해 수정되거나 철회 될 수 있음을 밝힌다.

문제가 되는 것은 첫번째 글(1950-60 순정만화의 시장 선점)의 몇가지 견해다.
(용어상의 문제가 있는데, 이 글에서는 송락현씨의 용어사용법과 달리 일본순정만화를 소녀만화로 부르기로 한다. 한국어로 번역할 때는 순정만화라고 해도 큰 문제가 없으나 소녀만화라고 부르는 것이 일본의 소녀만화를 보다 명확하게 지칭하는 용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견해를 다소 단순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전후 일본 만화시장에서 소녀만화가 소년만화보다 먼저 형성되었다.
2) 1950년대의 만화시장은 소녀만화 일색이었다.

구체적인 주장은 뒤에서 다루기로 하고 그에 앞서 약간의 사실관계를 확인 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우선 송락현씨는 일본 최초의 만화 잡지로 <만화소년漫画少年>을 거론하고 있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물론 1947년에 만화 잡지가 아닌, 일반 교양 잡지였던 코분샤(光文社)의 통쾌 소년(痛快少年)이 창간 되면서 이듬해 분책된 만화 소년(漫畵少年)이라는 잡지가 일본 최초의 만화 잡지로 기록은 되어 있다.

기록에 근거한 서술이라는 뉘앙스를 풍기지만 어떤 기록을 참조한 것인지는 알수가 없다. 하지만 기록을 찾아보면 코분샤의 <만화소년>을 전후 일본에서 간행된 첫 만화잡지라고 하기는 무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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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1월호 <만화소년>의 표지

우선 1945년에 창간된 <만화그림책まんがえほん>이라는 잡지가 있다. 타케우치 오사무는 <전후만화50년사>에서 45년에 창간된 잡지로 추정한다. 하지만 전후일본 소년소녀잡지데이터 베이스(링크)에서는 1946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46년 3월에 발행된 <어린이만화コドモ漫画>라는 잡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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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그림책>의 표지

하지만 이 시기는 아직 만화, 자체가 형성되지 않았던 시기라 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이 시기(굳이 정치적으로 분류하면 GHQ점령기와 일정하게 겹친다) 만화의 상당수가 테즈카 오사무식의 스토리만화가 아닌 에모노가타리였다. 또한 위에 열거한 두 잡지는 만화 잡지였지만, 이 시기 오락물 아동잡지는 대게 만화외에 다른 내용도 포함된 것들이었다. 이를테면 <순간어린이신문旬刊子供マンガ新聞>, <소년少年>등이 그것이다. 멀리 갈 것 없이 보물섬 이전의 소년중앙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기록상으로 <만화소년>을 최초의 아동만화잡지로 부르기는 어렵겠지만 사실상 전후 가장 영향력 있는 만화잡지로서 <만화소년>이 선발주자였던 것만은 확실하다. 이는 당장 일본 검색사이트의 검색 결과만 놓고 보아도 알 수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송락현씨의 두 가지 주장을 검토해보자.

1) 전후 일본 만화시장에서 소녀만화가 소년만화보다 먼저 형성되었다.

앞서 언급한 소년소녀잡지데이터베이스를 살펴보면 50년대 까지 출간되었던 이 분야의 잡지수는 619종에 이른다. 그야말로 후덜덜.

검색을 해보면 “소년”으로 검색할 때 118개가 잡히며 “소녀”는 38회가 잡힌다. 이중에 출판사 이름 등을 제외하고 순수한 잡지명으로만 보면 소년은 90개 잡지의 이름에서 쓰이고 있으며 소녀는 34개의 잡지명으로 사용되고 있다. 적어도 이런 단순한 양적 접근으로는 소녀만화가 소년만화 시장보다 먼저 형성되었으며 압도했다는 결론은 추출하기 어렵다. 앞서 언급한 1940년대의 잡지들도 그렇고, 패전 후 50년대 후반까지 간행된 잡지들에서도 소녀를 전면에 내세운 잡지들의 종수는 소년보다 적었다. 그 이후라면 모르겠지만 적어도 50년대에 소녀만화가 소년만화보다 먼저 형성되었다고 하기는 어렵다.

2) 1950년대의 만화시장은 소녀만화 일색이었다.

송락현씨의 글을 다시 살펴보자

하지만 곧바로 1949년에 소년소녀 모험왕(少年少女冒險王)이라는 잡지가 등장하면서 소녀 만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 기준이 싹트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교양지 성격이 짙은 여학생의 친구(女學生の友)와 최초의 소녀 대상 만화 전문 잡지 소녀 클럽(少女クラプ)이 각각 1950년과 1953년에 연속적으로 창간 되면서 소녀 만화는 소년 만화가 채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만화 시장의 상당 부분을 점유하게 된다.

이 말대로면 앞서 내가 설명한 수많은 소년잡지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물론 각 잡지의 시장영향력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각 잡지들의 발행부수를 비교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는 출판통계를 통해 확인 가능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일본에서 50년대 발행된 출판연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각 잡지의 발행 부수까지 나와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매우 애석한 부분인데, 한번 찾아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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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소녀모험왕>의 표지

여기서 송락현씨는 1955년에 창간된 나카요시와 리본의 중요성을 언급한다.

이같은 흐름은 마침내 1955년, 현재까지 일본의 출판 만화계를 양분하고 있는 코단샤와 슈에이샤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것 처럼 동시에 순정 만화 전문지 나카요시(なかよし)와 리본(リぼん)을 창간함에 따라 일본 만화계의 판도는 소녀 만화권에 아예 점령 당하고 만다.

그나마 테즈카 오사무(手塚治蟲)가 분전한 '소년'과 1952년에 창간된 만화왕(漫畵王), 그리고 일부 신문에 연재되던 만화들을 빼고나면 초창기 일본의 만화는 이처럼 소녀 만화 일색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리본>과 <나카요시>가 나왔던 50년대 중후반에도 소년잡지들이 소녀잡지들에 밀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단 송락현씨의 언급과 달리 <소년>, <만화왕>, <재미있는 북おもしろブック>과 같은 잡지들이 비교적 건재했다. <재미있는 북>은 1959년, <소년>은 1968년, <만화왕>은 1971년 까지 발행을 계속했다. 일부만화들이 소년만화의 명맥을 유지하던 차에 소녀만화가 만화시장을 압도했다고 볼수 있는 근거는 찾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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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북>의 표지

일단 전후 초기에 창간된 많은 잡지들이 50년대 후반 이전에 폐간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소년만화시장 전체의 침체라기 보다는 월간지에서 주간지로 변화해가는 진통의 과정이라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이와 관련해서는 타케우치 오사무의 <전후만화 50년사> 3장(링크)과 5장(링크)을 참고 바란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제기로 넘어가면 과연 소년만화, 소녀만화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과연 무엇을 소년만화, 소녀만화라 정의 할 수 있을까.

일단 당시의 “소년”이라는 말이 어떤 대상을 지칭하는 의미인지 명확히 살펴 보아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한 충분한 사료를 접하지 못했기에 함부로 추측하는 것은 어렵다고 본다. 다소 불성실하게 추측하는 것이 매우 미안하다.(이 부분에서는 좋은 사료를 접하는 대로 반드시 주장을 수정하거나 철회해야 할 것이다. 순전히 감으로만 주절거리는 부분이다. 양해를 구한다.) 아마도 전후 초기에 소년이 다소 무성적인 어감으로 사용되었다면 소녀만화의 본격적 등장은 소년과 다른 제2의 성(물론 시몬 드 보부아르가 말한 것은 소녀가 아니라 여성이지만)의 탄생으로 볼 수 있다. 소녀라는 개념이 새로 생기면서 소년이 사후 정의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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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그다지 완전하지 못한 인간과 그다지 완전하지 못한 커플의 세기의 만남

이는 전후 소비자본주의 속에서 여성이 소비의 주체로 재발견되면서 적극적으로 대중매체에 등장했다는 것으로 연결지어 생각 해 볼 수 있다. 결국 아동만화의 남성성과 여성성이 명확히 분화하지 않은 상황에서 여성아동용 만화가 성립되자 기존의 만화들이 남성 아동용만화로 재정립되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혹은 아예 남성 위주의 시장에 여성이 새롭게 등장했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1950년대의 전후호황과 고도성장은 여성의 삶의 궤적(life cycle)에 큰 변화를 주게 되었다. 교육수준과 소득수준의 확대는 노동으로부터 보호받는 여성아동을 창출했을 것이다. 이는 상대적으로 노동으로부터 보호받는 남성아동보다 형성이 늦었을 가능성이 높다. 일단 가능한대로 여성보다 남성을 가급적 많이 교육시키려는 가부장적 문화는 이곳 남조선이나 다이니뽄떼이꼬꾸나 다를바 없었을 것이다.(노동으로부터 격리된 아동에 대해서는 필립 아리에스의 연구 <아동의 탄생>을 참고바람) 결국 소년만화 시장에 새롭게 소녀만화라는 새로운 장르가 개척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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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은 근대의 발명품이었다?

적어도 오늘날의 장르적 기준으로 볼 때 1950년대 아동만화의 초히트작들은 <리본의 기사>와 같은 예를 제외하고는 (어느 잡지에 실렸는지와 상관 없이) 소녀만화 보다는 소년만화의 범주에 넣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다. 적어도 테즈카의 <신보물섬>이나 야마카와 소오지의 <소년 케냐>를 소녀취향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50년대 소녀만화의 본격적 등장 이전에 나온 이런 만화를 소녀취향이라고 할수 있을까?(이것이 그 이름도 유명한 <밀림의 왕자>의 원작 되시겠다.)

송락현씨도 글의 말미에서 적절하게 지적한바 있듯이 실질적인 소녀만화의 붐은 1972년 소위 "꽃의 24년조"(링크)로 대표되는 일군의 소녀만화 작가군에 의한 것이었다. 1970년대의 소녀만화에 대해서는 전후베이비붐으로 등장한 단카이 세대에 대해서 언급한다던지 여러 가지로 귀찮은 것들이 많으므로 이 글에서 주구장창 언급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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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일본 대중문화를 설명하려면 반드시 이 양반들을 짚고 넘어가야 하기 때문이다.(아이 귀찮아.)

사실 내 이야기는 단순하다. 송락현씨가 다소 무리한 주장을 한다. 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물론 그간 제대로 조사와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소녀만화에 대해서 친절하면서도 대중적인 글을 제공해준 노력은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짧은 식견으로 생각해 볼 때 각론에서 몇 가지 석연찮은 구석이 발견되었을 뿐이다. 부디 아마추어 후학의 경거망동으로 이해해주길 바라며, 이와 관련된 후속 논의가 이어질 수 있다면(그리고 좀 더 관련된 자료들을 찾아볼 여유가 생긴다면) 더 바랄 나위 없이 기쁠 것이다.

Who's 건더기

profile

80년대에 태어나 90년대에 성장해 2000년대를 살고 있다. 사회학과 정치학을 전공했지만, 스스로를 역사학도라 생각한다. 면식과 만화, 수다와 어린이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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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캅셀 2009.12.23 18:05 SECRET

    "비밀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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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더기 2009.12.24 03:11
    앗! 이런 누추한 곳에 발걸음 해주시다니. 너무나 감사합니다.
    실은 저 역시 자세한 자료를 검토하지 못하고 추측에 의거해서 글을 썼습니다.
    제가 전문가가 아니라서 잘은 모르겠지만...

    몇몇 자료를 보다가 다소 놀란 것이, 한국과 달리 일본은 전후 아동독서시장에서 여성의 비중이 한국과 달리 꽤 높았던 것 같습니다. 소녀만화가 소년만화를 압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처럼 만화와 같은 대중오락물이 꼬꼬마마초들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던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60년대 초에 후쿠오카 지역의 대본옥(대본소)과 관련된 조사를 봤는데, 대략 이용자의 절반 정도가 여성으로 나오는 것을 봤습니다.(표본들마다 남녀비율의 편차가 큰데, 이는 각 점포의 특성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글의 말미에도 좀 적어놓았지만, 개인적인 관심은 아동 혹은 소년소녀에서 어떻게 "소녀"가 따로 떨어져나와 하나의 개념으로 등장 할수 있었는지에 다소 관심이 있습니다. 자본주의 성립과정에서 '아동'이 탄생되었듯이 소녀 역시 역사적 산물로서 그 발생과정을 추적해 보는 것이 가능 할 것입니다. 다만 제가 당장  어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선생님의 글은 블로그에서 자주 읽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1. 소녀만화잡지史와 소녀의 탄생

    송락현은 한국의 독보적인 만화평론가라 할 수 있다. 가끔 그의 블로그(링크)를 즐겨 보는데 최근에 日本소녀만화잡지사(링크) 라는 제목의 포스팅이 올라왔다. 재밌게 읽었다. 이는 한국에 잘 알려져 있지 않던 일본의 소녀만화잡지사를 정리한 것으로 상당히 귀중한 글이다. 송락현님의 노고에 감사를 드린다. 이런 분들 ...
    Date2009.12.22 Category책읽기 Reply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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