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성장] 나는 페미니즘이 싫다

posted Dec 15, 200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나는 페미니즘이 싫다

2008년 12월 17일 (수) 13:35:00
건더기 rnjsqudejr@hanmail.net

어떤 결론

1980년 9월 12일... 오랜 휴교 끝에 대학 문이 다시 열렸다. 오랫동안 학생들 앞 에서 침묵하고 있던 30대 교수 하나가 칠판에 시소 하나를 그렸다. 시소 한 쪽은 철모를 닮은 커다란 바윗돌에 짓눌려 땅에 닿아 있고, 또 한 쪽은 하늘 높이 들려 있었다. 그 교수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이것이 우리의 현재 상황이다. 균형 감각이 있는 지식인들이 서야 할 곳은 어디일지 곰곰이 생각해 보기 바란다."교수는 그 상황에서 학생들을 믿을 수 없었다. 극우가 판치는 세상에서 사회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유일한 선택은 극좌일 수밖에 없다는 말을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윤구병, <해방에서 오늘까지 우리 대학생> 中에서)


나는 기독교인이 싫다

존경하는 사람은 없지만 좋아하는 사람은 있다. 서양 사람들 중에서는 폴 라파르크와 버트란드 러셀을 좋아한다. 오늘은 러셀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 꺼내보자.

러셀은 사람들이 가지는 종교와 신념을 공격한다. 러셀은 열정적으로 옹호하는 주장중에 근거를 제대로 제시하는 의견은 없다고 못 박는다. 열정이 있다는 것 자체가 냉정한 확신이 없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러셀은 지독한 논리학자였는데, 이런 그의 생각들이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책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수학자, 논리학자, 철학자, 그리고 사회주의자였던 버트란드 러셀(Bertrand Russell 1872~1870)
사진 출처 http://www.nndb.com/people/954/000044822/


러셀의 공격을 확장시켜 보자. 그 대상을 신념을 가지고 주장하거나, 실천에 옮겨지는 모든 사상으로 확장한다면 사실 대게의 해방의 이데올로기조차 그것이 가고 있는 비합리성을 전면 부정하기는 어렵다.

이쯤에서 간디의 말을 떠올려보자. “나는 예수를 좋아한다. 하지만 난 기독교인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를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은 나도 비폭력주의자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들이 전혀 간디를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진출처 http://blog.joins.com/hansha/ (브레송 作 간디, 암살 직전의 모습)



내가 페미니즘을 싫어하는 이유

나는 페미니즘을 싫어한다. 그것은 간디의 말처럼 페미니스트가 싫다는 것이기도 하고, 러셀의 주장처럼 신념을 가진 하나의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여기서 내가 이야기 하는 것은 모든 페미니즘이 아니라, 내가 보고 겪은 어떤 패미니즘일 것이다.

90년대를 지나 대학가를 중심으로 확산된 페미니즘의 흐름을 보통 영페미니즘이라고 부른다. 수많은 논자들이 이야기 하듯 영페미니즘의 실체가 과연 있기나 하는지, 그것이 실은 실재하지 않은 허수아비에 불과하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분명 90년대 이후 대학가를 중심으로 한 어떤 운동은 있어왔다. 그것을 영페미니즘이라 부르든, 영마초이즘이라 부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나는 이들이 기초로 하는 ‘피해자 중심주의’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근대 법철학의 기본전제를 인정하지 않는다. 무죄추정의 원칙이 근대적이고 남근적인 지배 이데올로기라고 비난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그 '남성적 지배 이데올로기'가 관철되는 과정은 험난한 투쟁의 역사였으며 대부분의 지배계급 ‘남성’들마저도 쉽게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그 남성적 이데올로기와 맞서 싸운 프랑스 혁명기의 귀족들이 여성주의자들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이 점에서 난 여성주의자들이 이야기 하는 근대-남성성 비판이 역사에 대한 무지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의심을 지우지 못한다.)

또한 페미니스트들은 운동 내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운동금지’라는 희대의 처방을 내리기도 했다. 이는 개인의 실천은 범죄가 아닌 이상 그 누구도 규제 할 수 없으며 그러해서도 안 된다는 나의 생각과 충돌한다.

무엇보다 그들은 반지성주의적 멘털리티가 팽배해 있다. 이는 영페미니즘이 가지는 언어관에서 여실하게 드러난다. 여성의 언어가 남성적 언어와 다르다는 이들의 전제에는 관심이 없다. 그러나 합리적인 언어를 남성지배언어라고 규정하는 순간, 이들은 자신과 생각을 달리하는 그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폐기하게 된다. 그들이 내세우는 여성적 언어로 문학적 감동을 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논리적 설득은 불가능하다. 나는 이것이 소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소통이라는 단어가 싫다면 ‘대화’라고 표현해도 좋다)


소통은 늘 어려운 법.
사진출처 오마이뉴스


또한 이들은 상대방과의 대화를 단절하기 위한 언어적 도구들을 지나치게 발달시켜왔다. 패미니스트들이 걸핏하면 말하는 폭력, 소통, 상처, 상상력들과 같은 단어들은 그 실제 의미와 상관없이 상대와의 대화를 차단하는 도구로 쓰인다.

그런 말은 폭력이에요. 당신의 말에 상처 받았어요. 그런 식으로는 진정한 소통이 될 수 없어요. 그건 당신의 상상력이 협소하기 때문이에요. 이런 식으로 반복되는 레토릭은 대화를 지치게 할 뿐이다. 혹시 자신들만이 폭력을 감지하고, 자신들만이 상처를 받으며, 자신들의 대화만이 진정한 소통인지, 자신들만이 진정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특정집단만이 독점 할 수 있는 생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마초들도 상처 받을 가능성이란 언제든 있게 마련이다. 그들도 타인과 진정한 소통을 할 가능성은 언제든 열려있다.


상처엔 후시딘이다.
사진출처 동화약품


나는 영페미니즘이 그들 특유의 어법과 정서로 인해 (적어도 대학-운동사회에서는) 서로의 합리적 의사소통의 기회와 가능성을 차단하고, 수많은 여성주의자들을 니힐리스트로 만들어 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마초만큼이나 위험하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필요하다

이런 수많은 결점과 해악에도 불구하고, 나는 페미니즘이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앞서 내가 그토록 싫어한다고 밝힌 영페미니즘 역시 사라질 필요가 없다. 나는 페미니즘이 ‘반성해야한다’ ‘새로운 전환이 필요하다’들과 같은 모호한 말로 주장의 본질을 흐리고 싶지 않다. 페미니즘, 여성운동은 지금 보다 더 많이 필요하며, 더욱 확산되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여성주의적 실천이 지금까지 사회에 기여한 바가 크기 때문에 그렇다. 그들의 실천이 반지성주의적이며, 때론 폭력적이며, 무자비 했는지도 모른다.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여성주의 운동의 결과가 나쁘지만은 않았다.

어찌되었든 성을 매게로 한 폭력, 성폭력은 사라져야 한다. 아마 인류가 존속되는 한 성폭력을 박멸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회가 성폭력을 ‘해서는 안되는 일’로 분명하게 인지하고 이를 막아내거나 처벌하는데 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가능하다. 이에 총대를 맨 것은 여성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이 없었다고 했을 때, 우리가 맞닥뜨릴 대학사회의 풍경은 매우 처참하다. 신입생 환영회에서는 새내기 여학생들이 예비역 선배님들에게 무릎을 꿇고 술을 따르라고 강요당할 것이다. 전체 엠티에서는 술자리 벌칙으로 키스를 하거나, 여학생을 눕게 한 뒤 그 위에 남학생이 팔굽혀펴기를 하는 진풍경을 보게 될 것이다. 농활에서는 막걸리에 취한 누군가가 동생 같다며, 딸 같다며 엉덩이를 만지거나 볼에 뽀뽀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수업이나 세미나를 마친 뒤에 펼쳐질 뒷풀이에서는 험난한 세월을 이겨낸 선배님들께서 들려주시는 온갖 음담패설을 이겨내야 할 것이다. 교수가 학생을 추행해도 우리는 이를 교육적 차원에서 묵인해야 할지도 모른다.

차라리 이 정도는 귀엽다 
사진출처 http://denniss80.tistory.com/

물론 위에서 이야기 한 일들은 그동안 비일비재 하게 일어났고 지금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모든 남성들에게 ‘이건 성폭력이니까 하면 안돼’라는 인식을 가지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걸 하면 X된다.’라는 경각심을 가지게 할 수는 있다. 진심으로 공감하여 이루어지는 동의든, 더럽고 치사해서 안하는 것이든 그것은 중요치 않다.(남성들을 진심으로 '공감'시키기에 페미니즘의 언술들은 아직까지 문제가 많다.)


이념의 그늘, 그늘속의 성

나는 헌신적인 운동가가 성매매를 즐기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이들의 말은 한결 같았다. 성매매란 사회적으로 좋은 것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성매매가 있기에 남성의 폭력성이 사회로 분출되지 않는다는 주장은 그나마 들을만하다. 나를 아연케 한 것은 한 번도 성구매의 경험이 없다는 사람에게 ‘그것(성구매)이야 말로 민중을 만나는 일인데, 너는 그러면서 어떻게 민중을 이야기 할 수 있느냐’는 힐난이었다. ‘꼴려서’, ‘밤이 외로워서’라고 말하는 게 그렇게 창피한 일인가. 나는 성매매를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성매매가 옹호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자신들만이 도덕을 독점하고 있다는 운동권의 착각을 공격한 것 또한 여성주의의 공으로 돌릴 수 있다. 물론 이들이 우파거나 역사의 반동이거나, 운동의 암적인 존재로 보일 수는 있다. 그러나 이 정도 공격에 맥없이 무너질 운동권이면 차라리 없는 게 낫다. 빈대 잡는 불에 다타버릴 초가지붕 따위는 필요 없다. 필요한 것은 내열설계 된 내외장재일 뿐이다.작년에 왔던 바퀴벌레가 죽지도 않고 또 온 것은 고밀도의 살충제 샤워로 단련된 내성이 있기 때문이다. 여성주의가 운동을 건강하게 이끌어 준 측면이 있으며 건전한 내부 비판자로 존재해 온 것은 부정 할 수 없다.


21세기에 언제까지 초가삼간 타령만 할 것인가.
사진출처 http://blog.naver.com/rainbowmaru/



그렇다고 해서 페미니즘에 대한 나의 반감이(반지성주의에 대한 반감) 줄어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와 상관없이 페미니즘의 실천은 아직 유효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페미니스트들의 반지성주의보다 남성지배문화에 의한 폭력이 낳는 주변의 풍경이 너무나 처참하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는 더 많은 페미니즘이 필요하다. 앞서 인용한 한 철학자의 말처럼 균형을 잃은 시소에서 해야 하는 일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호영아, 니가 있어야 할 곳이 거기겠냐?
사진출처 http://fgtg-god.com/



Who's 관리자

profile

80년대에 태어나 90년대를 성장해 2000년대를 살고 있다. 사회학과 정치학을 전공했지만, 스스로를 역사학도라고 생각한다. 면식과 만화 수다와 어린이를 좋아한다.

  • ?
    KW 2008.12.16 02:03
    글 잘 읽고 갑니다.^^
  • ?
    건더기 2008.12.16 02:32
    대단히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ㅡ.ㅡ;;(이 글의 결론이 온건히 전해질지 꽤 의문이 들정도로... 졸필임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 ?
    나비 2008.12.16 08:53 SECRET

    "비밀글입니다."

  • ?
    건더기 2008.12.17 01:12
    나비/ 일종의 인신공격이므로 제가 그 질문에 답변을 해야 할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 ?
    나비 2008.12.17 10:39
    알고 계시겠지만 답변을 바라고 한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인신공격을 하고자 한 것도 아니었구요,
    그런 의도였다면 굳이 비밀글로 달지도 않았겠지요. 그렇게 받아들였다니 안타깝습니다.
    물론 애초에 댓글을 달았다는 것이, 지금 건더기님의 반응을 접하고 보니 무지 후회가 되기는 하지만
    굳이 이 게시판을 통해서 제가 건더기님께 인신공격을 가했다는 오해를 사고 싶지는 않아서;
    실례를 무릎쓰고 댓글을 답니다.

    댓글을 달 때, 저의 의도는 진정한 궁금함이거나 나름의 충고였다고 한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만,
    저의 댓글에 대한 건더기님의 코멘트 한 줄이 저에게는 꽤나 풍부한 텍스트로 읽히는군요.
    단선적 텍스트가 보여줄 수 있는 한계와 상상력을 동시에 보여주는 예가 될듯 싶습니다.
    (물론 이러한 여지는 저와 건더기님의 관계적 관성에 의해 저에게만 해당되는 것이겠지요.)

    어찌되었든, 저의 의도와 관계없이 이런 식으로 읽히게 되어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하는 수밖에는 없겠네요.
    건필하시기를 바랍니다.
  • ?
    redjin 2008.12.22 16:01
    대체적인 반응을 알 수 있는 비밀글..

    예상했던 반응과 너와 비슷한 견해.

    더 많은 페미니즘이 필요한 현재...
  • ?
    건더기 2008.12.23 17:04
    네? 무슨 말씀이신지... -.ㅡa

  1. No Image

    武田晴人 <고도성장> 시작하며

    당분간 짬을 내어 이 책의 번역을 하기로 했습니다. 일어 실력이 일천하므로 이 번역문의 내용은 자신 할 수 없습니다. 이 글에 문제가 있거나 오역-오타-비문이 있으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이 책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는 없으며, 이 책의 내용도 아직 모릅니다. 당연히 저자가 누군지도 전혀 모릅니다. 이 모든 것들에 대...
    Date2008.06.13 Category번역 Reply1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Nex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