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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원주민

posted Aug 19,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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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일단 생각나는 것들을 뒤죽박죽 적어본다.


1.  

문학과 지성사는 산업화 시기 자유주의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출판사로서 문학과 지성사는 꽤나 까다로운 곳이었다. 문학과 지성사에는 세 가지 철칙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자비출판, 아동서, 만화는 출판하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문학과 지성사에서 자비출판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두 개의 원칙은 깨지게 되었다. 그것이 문지를 일군 문지스쿨의 1세대가 일선에서 물러나서 인지, 새로운 시대를 맞아 경영이 어려워져서 인지는 잘 모르겠다. 흰 바탕에 빨갛게 포인트를 준 세네카, 이재하의 캐리커처 문지에서 다른 것을 상상 할 수 있을까? 그에 비해 창작과 비평사는 상대적으로 다양한 책들을 만들었다. 오히려 그 점에서 창비가 문지보다 유연했다.(그 대신 문지와 같은 일관성은 보이지 않는다.)  

최규석의 만화가 창비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한동안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창비나 문지에서도 만화책을 만드는 시대가 온 것이다.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기쁘지만, 사라져간 모든 것을 추억하는 역사학도의 입장에서는 아쉬운 마음도 든다.  

2.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념형 만화를 지향하면서도 대중적으로 성공한 작가로는 강도영, 김태권, 최규석 정도를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가는 방향은 모두 다르다.  

강풀은 잘 알려진대로 웹툰에 승부를 걸고 있다. 강풀은 과도한 계몽주의적 색채로 인해 그의 이념적 지향(NL?)을 스스로의 형식에 담아내는 데 실패했다는 평가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26년>에서 이러한 일부의 평가를 가뿐히 뛰어넘으며 웹툰의 미래를 개척하고 있다. (늘 지적받는 그의 그림실력은 데뷔 이후 지금까지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다. 다만 작가가 이에 대해 엄청나게 노력을 하고 있으며 다채로운 연출력으로 이를 극복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최규석은 강풀에 비해 여러 가지로 대비가 된다. 그의 주력은 웹툰이 아닌 출판만화며 그림의 성격도 사실적이고 섬세하여 많은 대조를 이룬다. 또한 강풀이 새롭고 신선한 연출력을 과시하는데 비해 그는 정직하고 전통적인 틀을 고수한다.   김태는 앞의 두 사람과 달리 교양만화를 지향한다. 단순하고 명료한 그림체와 기발한 해학이 그의 주 무기라고 할 수 있다. 교양만화는 작가 스스로가 상당한 지적 수양을 쌓아야 하는 영역이다. 조심스럽게 생각해보면 앞의 두 사람보다 김태권의 만화가 오래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된다.(쉽게 말해 경쟁자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김태권의 경우 리우스나 오스카 자레트 같은 해외의 작가들이 경쟁 대상이라고 생각 할 수 있다.)  

세 사람의 공통점을 간략히 살펴 보면, ① 모두 90년대 중반 학번으로 학생운동의 곁에서 성장한 점, ② 80년대 민중만화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점, ③ 새로운 기술과 형식을 적극적으로 실험했다는 점(최규석의 경우 페인터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등), ④ 풍부한 사회과학적 교양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 ⑤ 대외적으로도 꾸준히 사회적 발언과 참여를 하고 있다는 점 등을 꼽을 수 있다.  

3.

작가로서 최규석의 성장은 놀라워 보인다. 그의 만화가 세간에 알려진 것은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를 통해서 였다. 여기서 그는 기발한 상상력과 사회과학적 상상력을 통해 둘리라는 서사를 재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 당시 최규석의 만화들은 다분히 운동권의 계몽적 성격에 매어있던 것이 사실이다.  

뒤이어 발표된 작품들은 두 가지 점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인다. 하나는 같은 작가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림실력이 향상되었으며, 상당히 안정된 연출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운동권의 도식적 세계에서 벗어나 독자에게 더욱 풍부한 생각의 기회를 제공해준다는 점이다. 이는 특히 <습지생태보고서>에서 잘 드러나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규석에게 여전히 운동권의 도식적 세계관의 의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최근작 <100'C>는 그러한 혐의가 너무나 짙다.(그것이 비록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고 해도.)  

4.

<대한민국 원주민>은 작가 자신의 가족사를 그린 만화다. 최규석은 이를 단순히 개인사의 차원을 넘어, 구술을 통해 구성된 하나의 가족현대사로서 그려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실제로 인터뷰를 해보면 알겠지만, 이는 인터뷰이와 인터뷰어 간의 끝없는 갈등의 연장이다. 갈등의 양상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이를 온건히 작품에 담아내는 일은 쉽지 않다.  



<대한민국 원주민>에서는 대략 두 가지 갈등이 포착된다.  

하나는 작가와 부모사이의 갈등이다. 이는 작가의 욕심과 구술된 경험 사이의 갈등이다. 작가는 더 극적인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하지만 구술자들이 그런 열망에 자신의 경험을 끼워 맞추기는 쉽지 않다. 자식의 죽음이나 전쟁체험에 대한 채근은 그런 작가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놓고 있다.  

다른 하나는 작품에 대한 누나들의 욕심이다. 이들은 자신의 증언이 만화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강하게 인식하고 있다. 또한 부모와 다른 오누이들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로 신경을 쓰고 있다. 그 속에는 스스로에게 상처로 남은 부분은 그리지 말라는 부탁도 있고, 어린시절의 갈등이 커서도 장난스럽게 남아있는 면도 있다.  

5. 

<대한민국 원주민>은 가족들의 기억을 소재로 새로운 만화를 그렸다기 보다는 사건을 담담하게 재구성하고 작가의 생각을 덧붙이고 있다.   아마 작가가 <태백산맥> 같은 극적이고 장엄한 서사를 바랬는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최규석은 다른 길을 택했고, 이것이 오히려 더 좋은 성과로 이어진 것이라 생각된다.  

6.



최규석의 그림체는 탄탄한 뎃셍력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얼핏 보면 만화라기 보다는 사실적인 일러스트에 가까운데 이것은 작가가 만화학과 출신이라는 것이 일정하게 영향을 준 것 같다. 한편으로는 백성민, 오세영 같은 80년대 리얼리즘 만화의 흔적도 보이는 것 같다.  

7. 

굳이 이 만화의 키워드를 꼽자면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될 것이다. 그것은 부모들의 체험이기도 하고 누나들의 체험이기도 하며 70년대 후반에 태어난 작가의 체험이기도 하다.  

전근대와 근대는 일정한 시간을 두고 마치 지하철 노선을 갈아타듯이 바뀌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작가는 자기 또래와는 상당히 다른 체험과 기억을 가지고 있다. 이는 경상도의 시골이라는 지리적 환경과 손 많은 집의 막내라는 실존적 조건들이 서로 얽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동시성의 동시성은 근대화 과정에서 원주민이 된 듯한 작가의 부모세대, 시골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또래들과는 너무나 다른 삶을 살아야했던 작가와 작가의 누나들에게 고스란히 각인되어 있으며 때로는 그로 인한 생채기들이 여기저기 남아있다.  

8. 




작가인 최규석은 1977년 생으로 나와는 크게 세대차이가 난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대도시에서 줄곧 자란 나와 시골에서 유년기를 보낸 그의 경험차이는 상당한 것으로서 이는 내가 그동안 보아왔던 90년대 중반 학번들을 비교해 보아도 그렇다. 그가 이야기 하는 누나들 역시 또래집단의 성장궤적과는 차이가 있다. 물론 이것은 개인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지역적-계급적인 성장 기반에 근거한 것이다. 그런 차이를 최규석은 놓치지 않고 그려내는데 성공했다.  

9. 



작가가 그려낸 부모의 시대적 갈등은 전근대-근대의 이행과정에 집중되고 있다. 양반과 천민의 갈등(늦은 근대), 전통신앙과 합리성의 갈등(아버지의 종교활동), 남성과 여성의 차별(다행인가?), ‘자신의 미래와 전통적 가치관 사이’의 갈등(공식답변)이기도 하다. 



10.

중간중간 삽입된 작가의 글은 대부분 만화의 등장인물에 대한 소개인 셈인데, 그중 작가 자신의 독백은 (만화로 그려진) 자신의 삶에 대한 고민을 엿볼 수 있다. 그 전문을 옮겨본다.  

겉으로 드러나는 경우는 없지만 내마음 깊숙한 곳에는,
도시에서 태어나 유치원이나 피아노학원을 다녔고 초등학교 때 소풍을 엄마와함께 가봤거나
생일파티란걸 해본 사람들에 대한 피해의식, 분노, 경멸, 조소등이 한데 뭉쳐진 자그마한 덩어리가 있다.
부모님이 종종 결혼을 재촉하는 요즘 이전에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어쩌면 존재하게 될지도 모를 내 자식을 상상하게 된다.  

상상하다보니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 아이의 부모는 모두 대졸 이상의 학력을 가졌을 가능성이 크고
아버지는 화려하거나 부유하지 않아도 가끔 신문에 얼굴을 들이밀기도 하는 나름 예술가요
아버지의 친구라는 사람들 중에는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인사들이 섞여있어
그 아이는 그들을 삼촌이라 부르며 따르기도 할 것이다.
엄마가 할머니라 놀림 받지도 않을 것이고
친구들에게 제 부모나 집을 들킬까봐 숨죽일 일도 없을 것이고
부모는 학교 선생님과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를 할 것이며
어쩌면 그 교사는 제 아비의 만화를 인상깊게 본 기억을 가진 사람일지도 모른다.
간혹 아버지를 선생님 혹은 작가님 드물게는 화백님이라 부르는
번듯하게입은 사람들이 집으로 찾아들것이고 이런저런 행사에 엄마아빠손을 잡고 참가하기도 하리라.
집에는 책도 있고 차도 있고 저만을 위한 방도 있으리라.
그리고 아버지는 어머니를 때리지도 않을 것이고
고함을 치지도 술에 절어 살지도 않을 것이고 피를 묻히고 돌아오는 일도 없어서
아이는 아버지의 귀가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리라.  

그아이의 환경이 부러운 것도 아니요,
고통없는 인생이 없다는 것을 몰라서 하는 소리도 아니다.
다만 그 아이가 제 환경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제 것으로 여기는,
그것이 세상의 원래 모습이라 생각하는,
타인의 물리적 비참함에 눈물을 흘릴 줄은 알아도 제 몸으로 느껴보지는 못한
해맑은 눈으로 지어 보일 그 웃음을 온전히 마주볼 자신이 없다는 얘기다.

11.


탄탄한 그림실력, 성실함, 깊이있는 문제의식 그리고 무엇보다 젊다는 점이 최규석의 이후 행보를 주목하게 만든다. 

Who's 건더기

profile

80년대에 태어나 90년대를 성장해 2000년대를 살고 있다. 사회학과 정치학을 전공했지만, 스스로를 역사학도라고 생각한다. 면식과 만화 수다와 어린이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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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2008.09.04 Category언론 Reply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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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2008.08.19 Category책읽기 Reply0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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