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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만화50년사, 제8장 소녀만화의 대두와 에로만화의 세계

posted Jan 2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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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소녀만화의 대두와 에로만화의 세계

새로운 소녀만화의 세계

이제까지 보았듯이 60년대 초반의 대본소극화는 데츠카 풍의 스토리만화의 침투와 연결된 청년지의 발간을 준비했다. 『가로』와 『COM』등의 매니아지의 창간도 그러한 만화문화 전반의 상황에 기반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주역은 남자였다. 남성만화가가 중심이 되고 화제작도 남성취향의 것들 뿐인 시기였다.

『주간소녀프랜드』『주간만화레터』『리본』『친구』등 이제까지의 소녀잡지에서는 橫井德男, 이시노모리 쇼타로, 치바 데츠야, 巴里夫, 아카츠카 후지오(赤塚不二夫), 데츠카 오사무등 남성만화가의 활약이 눈에 띄었다.물론 와타나베 마사코, 마키 아야코(牧美也子), 미즈노 에이코(水野英子)등 여성만화가의 작품도 인기를 얻었지만 장르전체가 독립의 전개를 보인 것은 좀 먼 상황이었다. 그런데 70년대에 들어서면 이제까지의 소녀만화란 다른 그림이 소녀들 사이에 출현, 소녀만화의 세계는 새로운 단계에 들어서게 되었다. 젊은 세대의 소녀만화가에 의한 새로운 타입의 작품이 지면을 수놓았다.

70년대에 들어 출현한 소녀만화가들은 종래의 데츠카 만화에서 배우고, 또는 과거의 소녀소설과 유의성을 보이지 만서도, 독자적인 감성을 전면에 내세우고 개성있는 세계를 형성해 나아갔다.

그녀들은 소위 ‘꽃의 24인조’라고 불렸다. ‘1949년조’라고 부르는 평론가도 있었지만 이미것은 우습다. 역시 ‘꽃의 24인조’쪽이 꼭 맞는다. 어쨌든 쇼와 24년 전후에 채어난 여성만화가들이 그러한 흐름을 만들어낸 주역들이 되었다. 하기오 모토(萩尾望都), 키무라 미노리 (樹村みのり), 오지마 유미코(大島弓子), 다케미야 게이코(竹宮惠子), 야마기시 료코(山岸凉子)등의 재능이었다.

새삼스레 쓸 필요는 없을 것 같지만, 하기오 모토는 「포의 一族」(72년 『별책 소녀코믹』)「토마의 심장」(74년 『주간 소녀코믹』)등에서 흔들리는 소년 소녀의 미묘한 감정을 묘사해 보이고 키무라 미노리는 「해방의 첫 날」(70년)「선물」(74년), 「보이지 않는 가을」(74년) 「우리들의 시작」(75년)등의 단편에서 사춘기의 고뇌와 사색을 시적으로 표현했다. 오지마 유미코는 「츠구미의 숲」(73년 『주간 만화레터』), 「솜의 쿠니호시(綿の国星)」(78년 『LaLa』)에서 시적인 언어와 이야기 전개로 소녀특유의 감성을 확대시켜 묘사하고, 다케미야 게이코는 하기오 모토의 서정성과는 묘사의 방향이 다른 드라마틱한 사건전개로 소년기의 성과 삶의 고뇌를 「바람과 나무의 시」(76년 『주간 소녀코믹』)에 집약했다. 또 야마기시 료코는 인간 마음의 심층을 연구해 흥미 깊게 파해쳐 「요정왕」(77년(『꽃과 꿈』))과 쇼토쿠 태자를 모델로 한 「해뜨는 곳의 천자」(80년 『LaLa』)에서 작품화했다. 각각 탁월한 개성묘사였다. 또한 이제까지의 소녀만화에 없는 스타일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공통점이었다.

개인적인 생각을 조금 쓰자면, 나 자신의 마음에 드는 것은 하기오 모토와 키무라 미노리였다. 특히 키무라 미노리의 작품은 학창시절의 바이블이 됨으로서 「선물」과 「우리들의 시작」등의 단편을 거듭 읽고 몇 번이나 감동받은 것이 어제 생각이 났다.

그녀들의 만화는 소녀에게 국한되지 않고 남성, 특히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의 펜에게도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 그런 점이 같은 연대의 다른 여성 만화가와는 분명히 구분되는 지점이었다. 「내일은 빛나리」(72년 『주간 소녀 프랜드』), 「아리에스의 아가씨들」(73년 『주간 소녀 프랜드』) 등에서 사랑을 테마로 작품을 그려냈던 사토나카 마치코(里中滿知子), 「베르샤유의 장미」(72년 『주간 만화레터』)에서 역사물을 정착시킨 이케다 리요코(池田理代子), 연극으로 살아가는 소녀를 묘사한 「유리가면」(76년 『꽃과 꿈』)의 미우치 스즈에 (美內すずえ)등의 존재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사토나카나 이케다의 작품들은 허구성이 높고, 대중들에게 선사하는 소재선택에 대하여 데츠카 오사무 이후의 소녀만화의 흐름 가운데에서 듬뿍 몸을 던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70년대는 이러한 신감각파의 여성만화가들이 주목을 모은 시대였다. 말하자면 성인 만화지의 으뜸 『빅코믹』의 증간(77년 5월)은 희귀한 것으로 「여류만화가특집」을 꾸몄다.거기에서 단편을 실은 만화가는 야시로 마사코(矢代まさこ), 쿠라다 에미(倉多江美), 다케미야 게이코, 키무라 미노리의 4명이었다.

하여간 소녀만화 붐이었다. 엔터테인먼트에 투철한 작품을 저해 자기표현적 체질이 강한 작품도 포함해서, 붐이었다. 또한 그 유행이 사회적으로도 주목받는 것이 되었다.

다시말해 『아사히 신문』은 75년 11월 2일부터 연재했던 「소녀만화의 세계」라는 기사에서 붐이 일어난 새로운 타입의 소녀만화를 추적했다. '오일쇼크 이래 부진을 전전했던 출판업계에 호조가 두드러진 만화종류', 그중에서도 '소녀만화의 인기가 높아가고, 잘 팔리고 있다'고 상황을 보고했다.

이러한 소녀만화의 유행은 만화가를 스타시하는 경향을 맣고, 소녀만화가의 무크지가 다수 출판되는 것으로도 되었다.

그런데 매스컴이 주목한 소녀만화의 특이점의 하나는 남자끼리의 동성애였다. 소녀만화가들은 자기자긴의 자의식의 표현으로서 그러한 소재를 사용했지만 일반적으로는 아슬아슬한 퇴폐취미로 비춰졌다. 이후 "少年愛"는 소녀만화계의 유행으로도 되고, 도착적인 사랑의 세계가 지면을 색칠하게 되었다.

이야기는 비약하는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새로운 세대의 비평가에 의한 만화 평론지 『만화신비평대계』가 이 시기에 창간되었다. 75년의 일이다. 요네자와 요시히로(米澤嘉博), 亜庭じゅん등의 젊음 비평가들은 "24년조"보다도 젊은 세대였는데, 소녀만화의 침투확대와 함께 평론활동을 개시하게 되었다. 실제로 이들 평론가들은 사베 아노마(さべあのま)가 도중에 표지그림을 담당했고, 같은 책자에는 자주 소녀마노하의 특집을 꾸몄다. 또한 요네자와 요시히로는 이 잡지에 연재한 소녀만화의 역사의 기술을 기반으로 후에 『전후소녀만화사』(80년 新評社)를 정리하는 것으로 깊은 관심을 보였다.

비평이라는 주변의 활동도 새로운 창작의 움직임과 결코 무관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70년대 후반의 문화상황

소녀만화의 유행과 함께 70년대를 특징짓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소녀만화와는 180도 다른 내면성을 보여주면서도 소녀만화와 연동하는 것이 에로만화의 붐이다.

현재에도 에로를 주제로한 만화와 잡지가 있지만 70년대 후반에 이르면 에로극화의 대두는 하나의 운동이었고, 메스컴의 무대 위로 등장했다. 잡지의 수는 정기간행물이 50개 가까이 되고 편집자 자체가 메스컴에 자신들의 편집방침과 만화관등을 표명하는 일도 일어났다. 70년대 전반에 걸쳐 시작된 소녀만화의 개화, 74년부터 연재가 시작되었던 ‘가키데카’의 폭발적인 인기, 그 후의 일이었다.

그렇다면 어떤 잡지가 출판되었을까? 나열해보면 『만화 에로 제니카』(海潮社), 『극화 엘리스』(엘리스 출판), 『만화대쾌락』(檸檬社), 『만화 유토피아』(笠倉출판사), 『만화 폰』(소년화보사), 『만화 다이너마이트』(辰巳출판), 『만화 아이돌』(辰巳출판), 『만화 에로스』(司書房), 『만화 섹시카』(司書房), 『만화 그랑프리』(蒼龍社), 『관능극화』(미노리書房), 『극화 점프』(日本文華社), 『만화 에로티스트』(東京三世社), 『극화 환타』(아마토리아社)등이 그것이다. 책을 내는 즉시 망했지만 이러한 박력 있는 이름의 에로극화 잡지가 당시를 시끄럽게 했다.

그중에는 『만화 엘리스』, 『만화 죠지』와 같은 자동판매기에서 팔수 없는 잡지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길거리 서점에서 팔리는 것이었다. 그런 잡지는 월간지가 중심으로 최전성기에 4~50개 지를 해아리고 이것이 중간과 별책이 빈번하게 출판되어 그 총출판량은 꽤 되었다. 한 잡지가 대략 5만에서 10만부가 나감으로서 증간도 포함하여 월 4~500만부의 부수를 자랑했다고 한다. 출판사는 주로 스이도바시(水道橋) 근처의 영세출판사로 東京三世社, 笠倉出版社, 司書房, 辰巳出版, 蒼龍社등이 유명한 곳이었다.

이러한 에로극화의 붐은 사카키 마사루(榊まさる)와 이시이 타카시(石井隆)라는 만화가의 출현에 기대고 있다. 『만화 베스트셀러』의 후속지였던 『에로토피아』(73년 창간)에 사카키 마사루가 리얼한 그림으로 에로틱한 유부녀를 여학생들을 게제하고 주목을 받았다. 또 이시이 타카시는 名美라는 한 여성을 주인공으로 여성의 집념, 사랑의 도착을 그린 「천사의 속살」, (77년 『영코믹』)에서 주목을 모았다. 石井의 작품은 에로물을 집요하게 그린 감정이입에서 오는 독특함을 가진 것으로 그것이 매력의 하나였지만 역으로, 사카키는 컷에서도 이야기 전개에서도 유도리가 있어 감정이입이 쉬웠다.

75년에는 『만화대쾌락』이 창간되었다. 노죠 쥰이치(能條純一), あがた有為, 羽中 루이 등이 작품을 그렸다. 이러한 에로만화가 인기를 유지한 것은 우선 무엇보다 石井에  의한 극한의 유ㅁㅡㅇ한 재능 때문이었지만 만화史의 문파에서는 톤 다운하고 루틴化한 풍속에 빠져버렸다.

에로 극화지는 작가들에게 있어서 납득할수 있는 이름일수도 있겠지만 그 위지확인의 의미를 포함했는지 "삼류(에로)극화지"라고 불리게 되었다. 특히 그 중에서도 『극화 에로 제니카』, 『극화 엘리스』『극화대쾌락』이 트로이카로서 주목받았다. 에로극화 붐에 메스컴도 주목, 오사카의 정보지 『플레이가이드 저널』이 73년 여름에 특집을 냈다. 거기서 선별한 극화가는 10명 더티 마츠모토(ダーティ松本)、시미즈 오사무(清水 おさむ), 村祖俊一, あがた有為, 中島史雄, 土屋慎吾, 玄海 츠토무, 羽中 루이, 飯田耕一郞, 宮西計三, 등이었다. 가을(9월 26일)에는 TV프로그램 <11PM>에 편집자와 극화가가 등장해서 코멘트 했고, 79년에는 『별책 新評』이 「이시이 다카시의 세계」와 「3류극화의 세계」라는 특집호를 내놓는 등 70년대후반은 에로극화계가 큰 화제가 되었다.

에로만화가들의 "판금"사건

이런 붐이 역량있는 작가의 개성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것을 먼저 언급했다. 그런 특이한 성표현이 하나의 개성으로서 지지를 얻었던 것이다. 『에로토피아』등에서 등질의 리얼한 면에서 여성을 묘사한 사카키 마사루와 로우 앵글과 클로즈 업을 많이 쓰고 거친 화면에 여자의 관능을 그렸던 이시이 다카시, 들은 특별한 자격으로서도 시미즈 오사무, 羽中 루이, 미야니시 케이조등, 지금 작품을 내도 주목을 받을 만큼 역량을 가진 만화가들이 당시에는 많았다.

그들은 대부분 20대 후반이라는 약관의 나이였고, 그렇기 때문에 억눌린 성의 망상을 화면에 시각화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 성의 표현도 통상의 잡지와 유통경로를 달리했기 때문에, 자연히 그 수위도 높아져갔다.

『극화 엘리스』의 편집장 카메와다 다케시(龜和田武)는 그 당시의 사정을 ‘우리들 자신도 알지 못했던 무의식의 영역을 파고들어 상상력을 환기하는 - 이것저것이 말의 본질적인 의미에서의 엔터테인먼트로있는 극화의 쾌락이었다.’(「새로운 극화의 지평」『별책신평 삼류극화의 세계』79년 4월 新評社)라고 명언을 했다.

그러한 때에 78년 11월 6일 海潮社의 『만화 에로 제니카』(75년 3월 창간)가 경시청방범보안1과에 의해 “외설”로 판금당했다. 그래서 다음해 2월 5일에는 笠倉출판사의 『별책 유토피아 · 입술의 유혹』이 판금을 받는 일이 벌어졌다. 같은 해에 만들어진 『플레이가이드 저널』의 특집기사와 가을의 「11PM」에 의한 편집자와 극화가의 출연이 당국을 자극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판금을 받았던 『극화 에로 제니카』는 자동판매기 뿐만 아니라 일반 서점에서도 판매되었던 잡지였지만, 직접판금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11월호의 아홉 개의 극화중에 5개, 더티 마츠모토, 北哲矢, 人生美行, 小多魔若史, 나카지마 후미오(村祖俊一),의 저작물이었다. 이번 호만이 선정적이라는 뜻은 아니었기 때문에 판금은 업계에 보이기 위한 의도가 농후했다. 이시이의 등장 이후, 에로극화잡지는 독자적인 노선을 지켜갔다. 잡지수가 늘어감에 따라 표현 수위도 높아졌다. 그러한 움직임을 견제했던 것 같다.

매스컴의 보도

매스컴이 이러한 사건을 무시 할 리가 없었다. 만화는 게다가 에로극화는 매스컴 기사로서 쉬운 대상이었고, 출판탄압이라는 정치적 의미도 겸비한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간 아사히』(78년 12월 1일)은 「삼대 에로극화의 대담함으로 경시청의 도전 결과 공포를 느꼈다.」고 표제의 본문에 사건을 소개했다. 공식 발행부수 9만5천의 『극화 에로제니카』에 추궁했다. 더없이 야유를 보내며 출판인으로서의 반골정신을 물었다.

이런 류의 잡지는 편집에 신좌익 붕괴 하면서 같은 사람들이 참가했던 것이 특색으로 묘한 이유를 들어 억지부리는 버릇이 있다. 「에로 제니카」의 편집자들도 최근 텔레비전에서 에로극화를 자랑하기도 한다.

그런 도전적인 태도가 경시청의 감정을 건드리게 하는 것이 업계의 방식이지만 경찰의 급습을 받았던 海潮社는 하지만 텔레비전에 나올 때의 건강한 모습이 아니었다. 다만 흠뻑 겁에 질려있었다.

“저런 기죽은 모습이, 조금도 전직 신좌익 답지 않다.”

라고 소리를 내는 것 외. 일설에는 편집부에 가까이 있는 유명한 시인이

“결코 제반투쟁이 아닌 울음을 터트려라.”

라고 조언했다고도 전해진다.

이번 판금에서 「에로 제니카」는 12월호를 고쳐내고 (인쇄소는 니가타형무소), 7백만엔 상당의 피해를 받고, 그 뒤 2회의 압수수색을 받는 등, 확실히 깨져버렸다고 한다. 지금은 오로지 사과하는 방법이 아니고는 어쩔 수 없다.

전직 신좌익의 편집자여, 분연히 일어나라, 라고 하는 뜻이다. 현실에서 제반투쟁으로도 안되는 것으로 끝난 것은, 기자의 글에서, ‘다만 겁에 질려있’다는 결과만은 아니었다. 확실히 에로극화는 예술표현으로서 무엇보다 성의 개방을 추구하는 이데올로기 중심의 출판물이 아닌, 팔려고 하는 것을 우위에 둔 만화출판사의 간행물이었다. 에로극화의 세계를 폄하하는 말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만화 에로 제니카』는 죄를 받아들여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것이 현실의 대응이었던 것이다.

이것에 대하여 사이토 마사하루(齋藤正治)는 「『극화 에로 제니카』의 판금과 카메와다의 발언 」(『별책신평 - 삼류극화의 세계』)에서 ‘에로 본업’ 林宗宏의 재판투쟁을 소개하면서도 같은 업계의 인간 그 자체로 그 대응의 다름을 철저하게 비판하고 있다. 사이토는 「카메와다의 장사인 성산업은 175조가 있을 뿐 그러한 정면대응을 회피 할 수 없다.」고 가차없이 비판했다.

계속해서 『週刊新潮』(79년 1월 4일)도 「‘신좌익붕괴의 외설집(屋)’이 만드는 자동판매기의 ‘3대 에로극화지’」의 타이틀로 이 사건을 보도했다. 여기는『주간아사히』와 다르게 6페이지에 걸쳐 정리된 기사로 역시 카메와다 다케시의 코멘트를 중심으로 “발표의 자유”등의 싫어하는 이념과는 다른 이 업계의 논리를 발표했다. 적발된 만화가, 人生美行, 小多魔若史, 北哲矢에게 敗材, 실제작가의 살아있는 목소리를 소개하는 것과 함께, 편저자인 카메와다의 코멘트를 실었다. 공통된 것은 표현의 어떤, 예술이 어떤것이라는 의논이 아니라 단지 직업으로 묘사한 것이라는 정직한 목소리였다. 카메와다는 말한다. “외설 시비가 아니라 외설은 무엇이든 악이라는게 아니다. 우리들은 그것은 상품으로서 외설집인 것이다.”

『소문의 진상』창간호(79년 4월)도 사실을 뒤쫓았지만 대체로 잡지의 그런 활발한 간행과 하드란 내용이 화제가 되었던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80년대 후반에 붐이 일었던 레이디스 코믹과 닮은것 같지만 다른 것은, 작가의 수준의 높이였다는 점 일 것이다. 레이디스 코믹에서는 矢萩貴子와 森園미루코 등이 활약했지만 에로만화 외에 다양한 인재를 만들어내지 못했        다.

에로만화잡지는 영세출판사의 소수의 담당편집자에 의해 생산되었다. 한 책의 담당이 한 사람인 것은 아직도 계속되는 방법으로 두 책이나 세 책도 담당한 사례도 많았다. 큰 출판사의 잡지는 그점에서 다르고, 그 담당자가 좋아하는 주장을 스토리로 지면에 반영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것이 에로극화지가 잡지로서 재밌는 이유일 것이다.

요약하자면 이 사건은 마이너한 공간이기 때문에 인간의 삶의 감정이 리얼한 표현과 함께 보여주고, 붐 가운데서 유능한 재능이 펴출되었던 것이다. 만화발표의 이유를 측면에서 증명한 것이 되었다.

로리콘 만화의 붐

소녀만화든 에로만화라고 하든, 그리는 만화가는 40년대 후반에 태어난 사람들이었다. 또 만화로 자라며 일부는 『COM』에 투고한 경험을 가졌다. 전후만화로 자라난 <만화청년>들이 이러한 새로운 만화표현장르를 이끌어낸 것이다.

그런데 에로만화 붐 이후에 로리콘만화의 붐이 이어졌다. 로리콘만화로 우선 떠오르는 것은 미소녀케릭터를 단골로 했던 吾妻히데오지만, 어찌되었든 간에 內山亞紀의 「안도로 토리오」(82년 『주간소년챔피온』)이었던 것 같다. 기저귀를 한 귀여운 것 같은 소녀가 자세를 비비꼰 포즈를 취하고, 소변까지 싼다는 말로 설명하자면, 무엇인가 음탕한 세계를 연상 시켜버린다. 실제로는 그림은 섬세하게 밝아 건강함 마저 있다. 그러나 얼마나 독자의 연령층이 올라갔는지는 이것이 소년지에 게재되었다는 것이기 때문에 역시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로리콘 만화의 붐은 수년전의 아메리카에 있어서 로리콘 사진 붐의 여세를 받은 것이지만, 이후 매니아틱한 세계로 침잠하여 『만화 미소녀(ブリッコ)』(82년 白夜책방), 『만화 로리팝(ロリポップ)』(86년 笠倉출판사)등의 로리콘 만화전문지를 탄생시켰다. 이러한 움직임은 동인지에 의해 인기 캐릭터의 패러디와 연결되어 만화작품을 유희화하는 현상을 80년대 후반에 태어나게 했다. 또 한편 로리콘지의 미소녀캐릭터는 훗날 중앙의 잡지에 쌓여 90년대의 「<유해>코믹문제」를 불러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다.

이상 보아온 것 처럼 70년대 초반부터 80년대 초반에 걸쳐 섹스가 만화의 표현무대에 등장했다. 「파렴치 학원」과 「がきデカ」에서 시작하고 소년애를 노골적으로 묘사하는 소녀만화의 유행, 에로극화의 붐, 로리콘만화의 대두라고 하는 바람에 그 시작부터 끝까지 섹스의 냄새가 따라다녔다. 어른이든 아이든, 인간에게 있는 한계, 이러한 욕망 때문에 무록에서는 있을 수 없지만, 시기적으로는 집중된 것으로 보였다.

만화는 욕망의 대체장치로서 역할이 농후하지만 허구인 것으로서, 여전히 허구성의 환상이 비대화되어 그 위에 한층 그것을 덧붙이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현실의 성에서 벗어나 섹스가 이미지로서 정착하는 경향이 강하다. 살아있는 여성의 육체에는 흥미가 없지만 만화의 "람쨩"들은 사랑받는다. 그런 사태도 현실에 존재하는 까닭이다. 그것은 만화의 "병리"라고 잘라 말할 수도 있지만, 최소한 허구의 성으로 즐기려고 하는 그러한 청소년의 마음을 침식하고, 종말은 범죄로 까지 이어지는 단선적인 생각을 가지는 것은, 이 때 분명히 부정해 두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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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에 태어나 90년대를 성장해 2000년대를 살고 있다. 사회학과 정치학을 전공했지만, 스스로를 역사학도라고 생각한다. 면식과 만화 수다와 어린이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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