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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만화50년사, 제4장 대본만화와 극화

posted Jan 09,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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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대본만화와 극화

대본소 시대


대본소. 이런 단어를 듣더라도 지금의 젊은이들은 뭔가 와 닿는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오래 전, 책을 렌탈해주는 가게가 일본의 전역에 있었다. 특히 역 근처에 많았다. 현재의 렌탈 비디오 샵처럼 세련된 것이 아니라, 지금 회상해 본다면 지저분한 가게가 많았지만, 어쨌거나 신간 만화책이나 잡지를 싼 값에 빌려주는 가게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대본소라고 한다.

대본소 자체는 에도시대부터 찾아볼 수 있는 풍속이다. 당시는 책을 등에 지고 거리를 돌아 다니는 배달식의 대본소가 중심으로써, 가게를 갖춘 도서관방식이 된 것은 메이지를 절반이나 지난 후의 일인 듯하다. 이 장에서 다루려고 하는 대본소는 당연한 것이겠지만, 훨씬 더 시대가 내려온다. 50년대 후반에 하나의 피크를 맞이하며 70년대에 들어와서 쇠퇴 일로를 걷게 되는, 만화를 잔뜩 비치하던 대본소를 말하는 것이다.

梶井純의 『전후의 대본만화』(76년 東考社)에 의하면, 「『쇼와 30년경』을 포함해서 이후 불과 3-4년 동안이 전후 대본소의 『전성기』였다」라고 한다. 말하자면, 1955년에서 58, 9년까지의 기간이다. 일본이 고도성장기에 돌입하기 전단계로써, 아직 전쟁의 후유증이 다양한 분야에 남아 있는 시기에 해당한다. TV가 보급되고, 학교도서관이나 공공도서관이 정비되기 이전, 아직 풍요로운 생활문화가 가정에 들어오기 전에, 대본소는 「거리의 도서관」으로써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대본소에 만화가 들어가게 된 것은, 전후의 일이다. 50년대에 들어선 이후인 것이다. 그 변화에 대응해서 이제까지 어른들이 중심이었던 손님층에 추가해, 어린이들이 고객이 되어갔다. 어떤 종류의 만화는 대본소라고 하는 특수한 유통경로를 통해서만 독자에게 전달되도록 되었다. 그것이 <극화>이다. 이후 극화는 50년대의 월간지를 중심으로 한 작품을 대신해서 전후의 만화를 리드해 간다. 그런 의미에서 대본소라는 제도는 유통의 형태와 책의 종류가 한 짝이 된, 희귀한 출판문화였다고 말할 수 있다.

혹시 지금 근처에 대본소가 있다고 하더라도, 과연 현대의 젊은이들은 거기서 책을 빌리려고 할 까. 누가 빌렸는지도 알 수 없는 책을 손에 집어든다는 사실 자체로도 위생면에서 저항을 느끼게 될지 모른다. 낙서가 되어 있거나, 페이지 끝이 잘려나간 사실도 마음에 걸릴 것이다. 그러나 등장인물의 얼굴에 일부러 수염을 그려넣거나, 흑백화면에 색을 입히는 등의 낙서는 그 나름대로 제법 재미있는 것이다. 공공도서관이나 학교도서관에서는 맛볼 수 없는 세계가 거기에 있었다고, 당시 대본소를 자주 이용하던 필자는 생각한다.

그런데, 대본소의 세계에도 아이디어맨이 있었던 듯하다. 등록하는데 보통은 보증금이 필요하지만, 「쇼와 23년 고베시에서 발족한 로만문고는, 종래의 대본소가 보증금제도로 행해져 온 것을, 신분증명서, 학생증, 미곡통장 등을 통해 본인의 거주를 확인할 수만 있다면 신용대출을 해주는 새로운 방법을 채용해서 크게 번창한다」(『동경고서조합50년사』 74년 동경도고서적상업협동조합발행). 그 방식을 네오서방이라고 하는 업자가 전국적으로 확대해서 일반적인 스타일로써 정착시켜 나간다. 네오서방의 방식은, 「신간전문의 대본점·밝은 점포·보증금없음」이라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梶井는 앞의 글에서 네오서방의 새로움은 「보증금 없음」보다도, 이제까지 중고책 중심의 대본을 신간으로 교체한 「신간대본」제에 있다고 쓰고 있지만.

어찌되었든, 대본소는 오늘날의 렌탈 비디오 샵처럼 전국적으로 퍼져나가서, 「거리의 도서관」으로의 기능을 수행해 나간다.

대본소의 실태는 어떤 것이었을까.

가게수는 50년대 후반(쇼와 30년대 전반)의 피크기에 전국적으로 2만채에서 3만채는 있었다고 한다. 동경도내만으로도 3천채라고 한다. 『일본독서신문』(55년 7월 18일)은, 전국에 만 3천채가 있으며 주로 대도시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고하고, 『주간 산케이』(57년 11월 24일)는 2만 5천채 이상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전국출판물어업협동조합 30년의 행보』(81년 전국출판물어상업협동조합발행)도 최전성기 도내에서 3천채라고 밝히고 있다. 대부분이 일치하는 수치다. 이런 자료들을 종합해 보면, 전국에서 2, 3만. 동경도내에서 3천이라고 하는 것이 타당한 수치일 것이다. 그런데 격감하는 70년대 초기에는 전국에서 3500채로 줄어들었다고 한다.(『아사히 신문』70년 4월 20일)

그러면, 어느 정도 연령의 사람들이 들락거렸던 것일까. 대본소는 원래, 어른용의 책을 놓아두었기 때문에 독자의 태반은 성인이었지만, 50년대 초반에 만화를 놓아두게 되자 어린이가 많아졌다. 거기에 맞춰서 장사방침도 변해 간다.

55년의 앞서 말한 『일본독서신문』지상에서는 「대본소와 어린이들」이라는 특집을 싣고 있다. 특히 어떤 어린이들이 무엇을 빌리는가 하는, 독자층에 대한 관심이 눈에 띈다. 조사대상은 나까노구의 노가타 소학교에 다니는 생도 1500명이다. 이 조사에 의하면 대본소를 이용하는 어린이는, 책을 살 수 없는 아이가 아니라 매월 잡지를 사고 있는 어린이라는 결과도 나타나고 있다. 찾는 것은 물론 만화다. 마찬가지로 앞서 살폈던 57년의 『주간 산케이』에서는 도내의 대본소의 장서중에서 7할이상이 만화와 소설류라고 언급하며, 그 이용자는 도내에서는 매월 300만명. 그 중에서 소, 중학생이 65%를 점유하며, 특히 소학생의 이용율이 높다고 한다.

소학생은, 대본소에 있어서는 극히 소중한 손님이었던 것이다. 나중에 평론지 『만화주의』동인인 權藤晋이 지적하는 것처럼, 초기 극화의 독자에는 하이틴 노동자층이 있었지만, 비율로따져보자면 소학생 독자쪽이 두드러지고 있다. 그 때문에 보호자, 교육자들로부터 대본소 및 대본만화는 요주의 대상이 되어 간다. 특히 50년대 중반은 전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악서추방운동이 격렬화되던 시기에 해당한다. 그 여파로 대본소의 만화도 거센 역풍을 맞이하게 된다.

그 때문에 몇가지 사건이 발생하게 되지만, 그 전에 조금 둘러가기는 하지만 대본소라는 토지에서 발생한 <극화>에 대해서 약간의 이해를 구하고, 그 다음으로 구체적인 사건을 살펴보도록 하자.

극화의 탄생

극화는 관서에서 발생했다. 그것도 지금 살펴본 대본소용 만화로부터 태어났다.

50년대 중반, 오오사카의 선착장이 있는 光伸書房(흔히 말하는 히노마루 문고)에 젊은 만화작가들이 집결한다. 마츠모토 마사히코, 타츠미 요시히로, 사이토오 타카오, 사토 마사아키 등이다. 그들은 가난한 생활환경속에서도 좋아하는 만화를 계속 그렸다. 그 거점이 된 것이 56(쇼와 31)년 4월에 창간된 단편집 『그림자(影)』다. 이 『그림자』에 연재된 만화는 중앙의 잡지의 그것과 비교한다면 특이했으며, 그림은 유치하면서도 박력이 있었고, 사실적인 대사가 많았다. 데츠카 오사무풍의 스토리 만화와는 큰 차이를 보였던 것이다.

사토 마사아키는 「이 "그림자"의 발간에 포함되어 있는 우리들의 잠재의식속에는, 중앙의 잡지에 대한 콤플렉스와 도전의식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어차피 중앙의 잡지에서 그릴 수 없다면, 적어도 우리 손으로 잡지형식의 책을...이라는 기분이 어딘가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극화사사30년』)이라고 회상한다. 실제로 그랬을 것이다. 그들도 중앙의 잡지로부터 집필의 의뢰가 있다면 기꺼이 작품을 그렸을 것이다. 오오사카라고 하는 만화출판의 변경지역에서, 그것이 그들의 취할 수 있는 최우선의 위치였기 때문이다.

극화등장의 무대 뒤편에 대해서는, 타츠미 요시히로의 『극화대학』(68년 히로서방), 사쿠라이 쇼이치『나는 극화의 전문가였다』(78년 에이프릴 출판), 사토 마사아키의 『극화사사30년사』(84년 東考社)등, 실제 작자에 의한 회상록이 나와 있지만, 마츠모토 마사아키에게도 「극화바보들!」이라고 하는, 『빅 코믹 증간』(79년 -82년)에 연재된 극화에 의한 회상기가 있다. 만화로써 그려져 있으므로, 시각적으로 당시 상황을 상세하게 알려주고 있으며 꽤 흥미 깊은 작품이다. 굶주린 작가들의 모습이나, 약소출판사의 편집상황, 거기에 코마츠 사쿄가 三島書房에 만화의 원고를 갖고 갔다고 하는 정보 등, 당시의 상황이 다양하게 그려지고 있다.

일단, 가난한 만화가들은, 먹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그렸다. 그러나 57년의 3월에 히노마루 문고가 도산해버린다. 신기획인 성인만화의 대량반품에 의해 부도를 내버린 것이다. 히노마루 문고에서는 장로격에 해당하는 쿠로다 마사미, 거기에 타츠미 요시히로, 마츠모토 마사히코, 이시카와 후미야스, 야마모리 스스무, 사토 마사아키들은 『그림자』를 대신해서 새로운 기획에 참가해 간다. 나고야의 동해도서라고하는 총판이 『그림자』와 닮은 잡지를 출판할 계획이 있다고 한다. 엎질러진 물. 이렇게 해서 같은 멤버들에 의해 『거리(街)』라고 하는 극화지가 창간된 것이다.

나중에는 또 『그림자』가 재건되지만, 상황을 보면서 타츠미, 사이토오, 마츠모토 들이 중앙의 잡지로 활약의 장소를 옮겨서 상경한다. 59(쇼와 34)년 1월에는, 동경의 3명에 관서의 사이토들을 흡수해서 새로운 "극화공방"의 결성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극화선언"을 행한 것이다. 그 업무중의 하나가 『마천루』의 간행이며, 이후 공방의 편집에 의한 『무쌍』『소년산하』등의 간행이 이어졌다.

극화는 관서를 근거지로 하는 만화가가 중앙으로 진출해 감에 따라, 폭넓게 알려지게 되고, 만화표현 그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나가게 된다. 시기적으로는 딱 50년대 후반, 데츠카 오사무의 창작이 정체되는 시기에 해당되며, 데츠카 풍의 스토리 만화를 대체하는 표현으로서 극화는 단연 주목을 끌게 된다.

대본의 위생문제

그런데, 이렇게 극화를 갖추게 된 대본만화, 및 유통의 경로로써의 대본소는 몇 가지 관점에서 사회문제화 되었다. 첫째는 가게의 선반에 놓여있는 극화의 내용에 관한 것이며, 또 하나는 렌탈이라고 하는 형식 그 자체에 관한 것이었다. 후자의 내용은, 한 권의 책이 수많은 사람의 손을 통과함으로써 발생하게 되는 위생문제였다.

후자부터 소개하도록 하자.

대본의 위생문제. 그것은 렌탈이라고 하는 형식과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타인이 읽은 만화를 다른 사람이 접하게 된다. 그 비위생적인 면이 문제시된 것이다.

계기가 된 것은 57년 10월 26일에 벌어진 『산케이시사』지상에서의 모친대표의 연구회, 이어서 지부련(지역부인연합)의 연수강좌에서 대본만화가 거론된 사실이다. 『주간 산케이』(57년 11월 24일)는 「대본소에 적신호」라고 하는 기사를 통해, 동회의 내용을 소개한다. 「어떤 병에 걸린 사람이 읽었을 지도 모른다. 나쁜 균이 묻어 있지 않다고 단언할 수 없다. 그것이 제대로 소독도 되지 않고, 계속해서 대출되고 있다. 게다가 대본소에는 군고구마가게나 과자점을 겸업하는 곳이 많으므로, 한층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라고 불안을 표시한다. 이어서 동일한 내용을 『요미우리신문』도 보도 하는 등, 사태는 점점 에스컬레이트 되어 간다.

업자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전국대본조합연합회는 관계부서를 방문하는등의 방법으로 대처하게 되었다. 『전국 대본신문』제4호 (57년 12월 12일)에 의하면, 11월 21일에 다나카 연합회이사가, 지적하는 것과 같은 사례의 보고는 없다고 하는 점을 확인, 「자발적으로 위생처치를 연구하겠다」라는 취지의 발표를 했다. 거기다 국회도서관을 방문, 연구과의 직원으로부터 국회도서관의 책도 소독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후생성으로부터도 지도 받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한다. 말하자면, 이번 문제는 「일부 주부」에 의한 「신경질적인 발언에 지나지 않으며, 아무런 과학적 논거도 없는 것이다」라고 결론을 지은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어머니들의 요구는 이해하기 힘든 것이다. 공공도서관이 책을 항상 소독하고 있다고는 생각하기 힘들며, 타인이 읽은 책이 즉각 병으로 연결된다고 하는 발상도 너무 단락적이다. 말하자면 당시의 대본소의 분위기, 비치되어 있는 책의 통속성, 다 닳아버릴 때까지 대출되는 책의 상태등에 의해서 과잉한 반응을 불러온 사건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검은 상처자국의 남자」

다음으로 극화의 내용에 관한 사건으로 화제를 옮겨보자. 이쪽이 보다 심각한 사태를 낳고 있다. 대본업자의 단체인 전국독서보급협동조합, 여기에 소속하는 산리독서보급조합은 59년에 만화의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공표했다. 그 속에서 선악을 무시한 극화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사실을 경고, 갑부경찰서 소년과와 협력해서 불량만화를 현내로부터 일소하게 되었다. 업자자체의 자정운동으로써 이 움직임은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다.

덧붙이자면, 이 조합의 어린이 만화 구매상황은 58년 9월에 약 800책이었던 것에 비해서, 12월에는 500책, 59년에 들어가면 2월 달에 400책, 4월에는 300책으로 점점 줄어들고 있다. 전국적으로 대본소는 불황에 접어들게 된 것이다. 이런 불황의 타개책으로써, 선악을 무시한 내용의 만화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라고 이 조합은 해석했다.

또 덧붙이자면 59년 7월 15일자 『거리의 도서관』의 기사, 「불황의 돌풍이 부는 시기야말로 지금이다!」에서는 호경기와 대본소의 부진과의 관계에 대해서, 「1. TV의 현저한 보급, 2. 주간지 붐, 3. 만화에 질리는 어린이들, 4. 불량지 나쁜만화에 대한 PTA의 PR활동, 5. 유명작가의 베스트셀러가 줄어든 것, 6. 동업자의 난립, 7. 계절적으로 짜증나는 장마기·학교의 시험기·야간경기 시즌」이라는 7가지를 거론하며 그 요인을 분석하고 있다.

그런데 59년에 山梨독서보급조합이 문제시한 만화는, 『거리』특집호와 『얼굴』7월호다. 이 두 가지의 잡지에는 마약이나 살인이 다수 묘사되고 있으며, 사토 마사아키의 「브로우닝 32구경」등은, 「육친끼리의 범죄물로써, 보험금을 욕심내서 친동생을 사살하고 바에 진을 치는 불량소년을 주인공으로 취급한 것으로」「대부분이 소년의 범죄로 채워져 있다」고 한다(『거리의 도서관』59년 9월 13일)

또 同조합의 악서의 기준은 『예각』제4호 (59년 10월 25일)에 따르면, 「1. 출판사명, 주소가 확실치 않으며 책에 전화번호가 올라와 있지 않다. 2. 책임자가 항상 바뀐다. 3. 색조가 강렬하며 대사가 엉망진창이다. 4. 폭행, 상해, 살인 등 인권을 무시하고 있다」라는 점이다. 동조합에서는 이렇게 작품이 장래대본업계의 존속에 영향을 주게 되므로, 만화책의 구입시마다 체크하고 악질적인 작품을 현내로부터 퇴출하게 되었다. 이 움직임은 치바현 독서보급회에도 급파된듯하다.

과거 50년대 중반에 피크를 맞이한 악서추방운동의 예봉이, 대본만화에 향해졌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업자자신이 선수를 쳤다는 도식을 여기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일은 크게 사회문제화되어 갔다. 그리고 제2차 악서추방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만화를 둘러싼 상황은 또다시 소란스러워져 가는 것이다.

이 문제를, 이름이 거론된 만화가, 사토 마사아키의 시점에서 살펴보도록 하자. 사토의 자서전 『극화사사 30년』에 의하면 사태는 다음과 같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마츠모토 마사히코, 타츠미 요시히로, 사이토오 타카오 들과 함께, 56(쇼와31)년 창간된 『그림자』에 모였던 사토는, 57년 3월에 히노마루 문고가 도산한 뒤, 나고야에서 같은 종류의 잡지 『거리』를 창간한다. 그 뒤 타츠미 요시히로, 사이토오 타카오, 마츠모토 마사히코들이 상경. 사토는 그들과 "극화공방"을 결성하고, 『摩天樓』『無雙』『少年山河』등의 극화지에 관련되어 간다. 이후 사토는 『마천루』의 편집을 받아들인다.

그 시절, 문제의 사건이 발생했다. 사토에게 있어서는 「쇼와 30년의 여름부터 반년」정도는 말 그대로 천국과 지옥을 왕래하는 파란만장의 날들이었다」. 『마천루』의 편집장에 취임해서 1개월 정도 지나 발행처인 兎月書店의 사장으로부터 한 장의 서류를 받게 된다. 「그것은, 山梨의 대본조합으로부터 각 출판사에 통지된, 악서추방운동을 위한 불매운동의 선언서였다.」

왜 사토의 작품이 문제화되었는가. 그것은 작품제작 그 자체가 현실의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자세에 지탱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중소설의 세계에서는 58년에 大藪春彦가 하드보일드물 『야수는 죽어야 한다』로 데뷔했다. 그러나 사토는 이런 작품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사토에게는 당시 독자적인 윤리관이 있었으며, 그것이 직접적으로 문제시된는 작품과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 같은 책에서 사토의 말을 인용해 보자.

서로가 자연스럽게 한가하게 결투를 벌이는 장면은, 나로서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야수는 죽어야 한다』같은 대량살육 악당소설이라고 하는 용어에도 격렬한 거절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즉, 나에게는 하나의 윤리가 있었다. (중략)

"복수"그것만이 그 당시의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대의명분이었다. 인간은 복수를 위해서라면 악마라도 될 수 있다. 살인조차도 정당화 될 수 있다. 나의 의식속에는 그런 생각이 있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사실, 이 시기의 나에게는 언제나 가상적이 있었다. 5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12살 때 어머니를 잃고 타인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었던 환경 속에서 발견한 어른들의 추악함...적어도 어린 내 눈으로 본 세간의 인간들은, 어제는 선인이었던 인간이 상대의 상황이 바뀌게 되면 오늘은 악인으로 변모해 버렸다.

그런 인간을 보아온 나에게는, 영화의 등장인물처럼 정의의 사자, 악역으로 편을 갈라 걷고 있는 듯한 드라마는 절대 신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 내 인생관이 주인공을 정의의 탐정이 아니라, 허무감으로 가득한 범죄자로 만들어 버린 것도 무리한 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리얼한 현실인식이 만화에 반영되었을 때, 어린이들에게 이상을 부여하려고 한 어른의 눈에는 굴절된 속악만화로 비춰졌을 것이라는 점은 간단하게 상상이 간다.

이 사건이후 사토에 대한 원고 의뢰가 완전히 끊어지고 만다.

덧붙이자면 사토의 대표작은 61년 8월부터 다음해 6월까지 출판이 계속된 『검은 상처자국의 남자』(전 10권, 삼양사)이다. 토문권의 사진집 『축풍의 어린이들』을 감상한 충격에서 구성된 이 작품은, 빈부의 차에 대한 분노를 바탕으로 「쇼와의 네즈미 코조(*역자주 - 에도시대에 활약했다고 하는 의적)」를 등장시키려고 그린 것이지만, 여기서도 사회를 원한의 대상으로 보는 사토의 냉철한 눈의 빛나고 있다.

「닌자무예첩」과 「피투성이 검법」

사건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매스컴의 비난은 멈출 줄을 몰랐다.

63년에 『적기』(5월 26일)는 「어린이 만화의 "인간만들기"」라는 타이틀로 대본소의 만화를 문제시했다. 그 논조는 극히 엄격하다. 전쟁물이나 스포츠물의 잔혹함 등 다양한 작품이 열거되고 있지만, 특히 강조되고 있는 것은, 히라다 히로시의 「피달마 검법」과 시라토 산페이의 「닌자무예첩」에서 볼 수 있는 잔혹묘사다. 「피달마 검법」에 대해서는 「『부락출신』의 주인공이 검술의 스승이나 사형제들로부터 『에타』라고 경멸받은데 대해 분노를 품고, 스승을 죽이고 많은 동문의 양팔을 잘라 버리며, 자신도 결국 달마처럼 양손양발이 없는 불구자가 되어 버리지만, 그래도 복수를 단념하지 않고...」라고 간략하게 소개하고, 그 「끔찍함」을 지적하고 있다. 대본소의 달러박스라고 불리워진 극화의 심화에 큰 역할을 담당했던 「닌자무예첩」 전 17권쪽은 「놀랍게도 사체 1171개, 동체를 떠난 목 85개도 나옵니다」라고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먼저, 피차별부락민이 원한 때문에 살육을 되풀이한다고 하는 내용을 가진 「피달마검법」이지만, 이 작품은 피차별부락민을 편협하게 그림으로써 차별을 조장하는 것으로써, 부락해방동맹으로부터 규탄을 받고 있다. 사쿠라이 쇼이치는 『나는 극화의 전문가였다』에서 광신서방(히노마루 문고)의 야마다 사장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지만, 그것에 의하면 부락해방동맹의 항의에 의해 사장이 노이로제에 까지 걸렸다고 한다. 그 결과, 담당의 편집자를 퇴직시키고, 「전국의 대본점으로부터 동서를 회수하고, 해방동맹의 사람들 앞에서 소각 처분했다」라고 한다.

또한 앞서 소개한 시라토 산페이의 「닌자무예첩」의 잔혹묘사도, 비난의 표적이 되었다. 『적기』는 아주 세밀하게 잔혹신을 세어 보였지만, 물론 그 사실만을 가지고 시라토 극화를 재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당시는 그런 만화의 표층을 문제시하는 일이 많았던 것이다. 대본소용 단행본 『닌자무예첩』은 59년부터 간행이 시작되었던 초기극화의 메르크마르지만, 목이 날아가고 피가 솟구치는 그 박력에 독자인 어린이들에 국한되지 않고 일반 어른들까지 놀랐다. 시라토 산페이의 활약이 눈에 띄던 시기는, 마침 대본소 전성의 말기에 해당되고, 그 출현은 하늘의 도움이라고 보였을 것이다. 시라토는 그 시기를 전후해서 「시톤 동물기」「닌자선풍」「바람의 이시마루」등의 작품을 계속해서 그려나간다.

지식인도 시라토의 출현에 주목한다. 소년기에는 만화가가 될려고 했다는 문화인류학자, 야마구치 쇼오는 「시평 어린이를 위한 만화부터」(『일본문학』60년 6월)에서, 이 극화작가를 논했다. 야마구치에 의하면, 시라토 극화의 특징은, 「1. 그는 극히 뛰어난 만화를 그리며, 2. 특히 닌자를 즐겨 거론한다. 3. 닌자를 테마로 하는 경우 조직의 잔혹함을 쉼없이 강조한다. 4. 권력자의 잔혹함과, 농민의 봉기를 배경으로 즐겨 거론한다. 5. 묘사는 상당히 음침, 비정, 잔혹하며 그 기조는 니힐이다」라고 한다.

주간지도 뒤를 이었다. 「주간 아사히 예능」(60년 8월 14일)은 「매스컴이 알지 못하는 베스트 셀러」라는 타이틀하에 시라토 산페이를 소개, 아직 27세라는 젊은 나이에 대본만화계의 총아가 된 저자의 프로필을 싣고 있다.

그러나 이 기사는 시라토의 취재조차도 행하지 않고 쓰어진 것이었던 것 같다. 시라토 극화의 잔혹성에 대해서는 앞서 『적기』처럼 목이 몇 개 날아갔다거나, 사람이 몇 명죽었다하는 형태로 비난되었지만, 확실히 데츠카 오사무를 중심으로 하는 50년대에서 60년대에 걸친 만화의 장면중에서는 특이하게 비춰졌을 것이 틀림없다. 오늘날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시라토 극화는 그 잔혹묘사가 화제가 되면서도 높은 문제의식은 이후 독자들을 압도해 나간다.

이상, 대본소의 유행과 쇠퇴, 그 사이에 화제가 되는 몇 가지 사건을 소개했다. 극화라고 하는 안티 데츠카를 표방한 일련의 리얼한 작품군은, 대본이라고 하는 비교적 아나키한 공간으로부터 자라났다. 그 점에서 데츠카 오사무라고 하는 개성이, 중앙의 잡지와 비교해서 비교적 제약이 적었던 빨간책 만화로부터 출발했다는 점과 부합해서 흥미를 끈다. 새로운 표현은, 그런 무질서한 공간에 개화하게 된 것이다. 사건은 그런 당시의 실태를 좋은 쪽으로도 나쁜 쪽으로도 보여주고 있다.

극화표현은 그 후 중앙의 잡지로 무대를 옮겨, 또 새로운 전개를 해 나간다. 그 움직임은, 별개 장에서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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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에 태어나 90년대를 성장해 2000년대를 살고 있다. 사회학과 정치학을 전공했지만, 스스로를 역사학도라고 생각한다. 면식과 만화 수다와 어린이를 좋아한다.


  1. 전후만화50년사, 제1장 패전과 만화출판

    제1장 빨간책 만화의 출판 패전과 만화출판 1945년의 패전의 시점을 경계로, 일본은 큰 방향전환을 했다. 정치경제는 문론, 대중문화도 급속하게 변모했다. 미국에서 전혀 새로운 문화와 생활습관이 이입되어, 지금까지 전쟁에서 심신과 함께 피폐했던 대중의 생활에 급속하게 침투했다고 보인다. 여성의 패션을 중심으로 ...
    Date2007.11.21 Category번역 Reply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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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전후만화50년사, 목차

    잠깐 시간을 내어 적어둠. 번역어 선택의 기준 같은 것은 없음. ㅡ.ㅡ;; ----------------------------------------- 목차 시작하며 3 제1장 딱지본 만화의 출판 패전과 만화출판 11 어린이 만화잡지의 창간 13 딱지본 만화 출판통제 18 딱지본 만화의 정점 24 딱지본 만화의 출판실태 28 그 후의 전개 30 제2장 월간지와 ...
    Date2007.11.13 Category번역 Reply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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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다케우치 오사무 [전후만화50년사] 서문

    최근 읽고 있는 책. 재미는 있는데 일본어가 안되니 아주 답답하다. 공부하는 셈 치고 책의 서문을 해석해 보았다. 틀린 해석을 지적하면 할 말은 없는데, 어차피 이 책의 다른 번역문을 가지고 있으니 해석상의 지적은 별 영양가가 없을 것이다. 몇가지 이해 안되는 표현 때문에 좀 해맸다.(그 부분들은 여기서도 잘 처리...
    Date2007.11.12 Category번역 Reply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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