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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만화50년사, 제3장 월간지와 스토리 만화

posted Jan 09,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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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월간지와 스토리 만화

스토리 만화의 전성시대


1950년대 중반, 연호로 말하자면 쇼와 30년대에 들어가게 되면 그렇게 번성하던 그림이야기는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게 된다. 이 시기의 『산업경제신문』지상에서는, 1951연말부터 연재 개시되었던 야마카와의 「소년 케냐」가 여전히 끈질긴 인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잡지의 주류는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스토리 만화의 태두인 것이다. 시대는 야마카와나 코마츠자키의 그림이야기로부터 데츠카가 창안해 낸 신 형식의 만화 쪽으로 크게 전환하고 있었다. 그것이 50년대 후반의 어린이잡지의 상황이었다.

이 시절, 나중에 ‘단카이 세대’ 라고 명명되는 전후출생의 세대는, 소학교·중학교 정도의 연령이 되었다. 이들은 40년대 후반에 태어난 어린이들이다. 그들은 데츠카가 만들어 낸 스토리 만화의 애독자였다. 그 후 60년대 후반이 되면 만화잡지의 세계에서는 청년지나 성인지가 다수 탄생하게 되고, 독자의 등급을 끌어올리게 되지만, 그것도 단카이 세대의 성장에 맞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즉, 전후의 만화는 단카이 세대에 초점을 맞추고, 그 성장과 함께 비대화되어 온 특수한 문화였던 것이다.

그러면, 이 시기에는 어떤 만화를 즐겨 읽었을까. 앞서 데츠카의 이름을 거론했지만, 현실에서는 데츠카 이외의 작가가 그 스토리 만화의 기법을 배우고 독자적인 내용의 작품을 만들어 내서 독자들로부터 지지 받고 있었다. 데츠카는 50년대 초반에 「정글대제」「리본의 기사」「철완아톰」등의 작품을 그렸지만, 후반에 들어가게 되면 창작이 톤 다운되어 간다. 오히려 당시 인기가 있었던 것은 데츠카 작품에서 스토리 만화의 테크닉을 배운, 川內康範작, 桑田次郞 그림의 「월광가면」(58년 『소년 클럽』)이나 타케우치 쯔나요시의 「赤銅鈴之助」(54년 『소년화보』), 후쿠이 에이이치의 「이가쿠리군」(52년 『모험왕』)등이었다.

「월광가면」은 머리에 초승달을 그린 정의의 사자 이야기로써, 쿠와다 지로(桑田次郞) - 현재 쿠와다 지로(桑田二郞) - 의 샤프하면서 냉정한 묘선이 매력적이었다. 「꼬마장군」은 연재초기에는 후쿠이 에이이치가 그렸지만, 작자의 급사로 인해 타케우치가 물려받게 된 무협물이다. 에도의 치바도장에 입문한 소년 검사 鈴之助는 극히 건전한 소년이지만, 액션은 화려했으며 특히 진공베기라고 하는 특기가 독자의 흥미를 끌었다. 당시의 스타였던 프로레슬러 역도산의 가라데 촙 같은 필살기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이가쿠리 군」은 당시 데츠카의 최대의 라이벌이었던 후쿠이의 대표작으로써, 스토리만화의 기법을 구사하면서 무도를 통해 벌어지는 승부의 세계를 전개해 나갔다.

이런 작품은 어떤 때는 영화가 되고, 또 어떤 때는 라디오 드라마가 되기도 했다. 「꼬마장군」는 56년 1월부터 라디오화, 57년에 들어와서는 다이에에서 우메와카 세이지주연으로 영화화된다. 「월광가면」은 원래 읽을거리를 만화화한 것이지만, 히트한 결과 58년 2월에 TV화되고 있다. 그 외에도 「페스여 꼬리를 흔들어라」「환상 탐정」「철완아톰」「철인28호」등이 TV나 라디오에서 방송되었다. 하나의 작품이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서 어린이들에게 전달된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평론가인 칸 타다미치에 의해서 ‘매스컴의 입체화’라고 불리게 되지만, 오늘날은 메디아 크로스로써 극히 일반화된 현상이다.

또한 59년 3월에는 「월광가면」의 원작자인 川內康範이, 이 작품이 사회에 해독을 퍼뜨린 것이라고 보도한 『주간신조』를 고소하는 소동을 일으킨다. 「『월광가면』의 역습」(『중앙공론 임시증간 매스컴 독본』59년 5월)에서 川內는 반론한다. ‘나는 주제넘게도 「미워하지마, 죽이지마, 용서해버려」라는 캐치프레이즈야말로 현대를 살아가는 어린이들에 대한, 전쟁부정의 정신을 심어주는 기본적인 요소라고 생각한다.’ ‘나는 현대의 양식인 들이 과거 모모 타로나 사루토비 사스케의 모험이야기를 보면서 자라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 황당무계한 로망을 계승했지만, 절대로 사회악의 동료가 되지는 않는다’ 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월간지가 세력을 떨치게 된 50년대 중반은 전후 만화의 황금기였다. 수많은 작품이 태어난다. 카와시마 미츠히로의 「빌리 팩」(54년 『소년화보』)이나 쿠와다 지로의 「환상탐정」(57년 동지면)등의 탐정물, 「철인 28호」(56년 『소년』)을 필두로 하는 거대 로봇물, 카미다 토시코의 「후이칭씨」(57년 『소녀 크럽』)나 이마무라 요오꼬 「창코짱의 일기」(59년 『소녀』), 야마다 에이지의 「페스여 꼬리를 흔들어라」(57년 『나카요시』)등의 소녀만화, 거기다 유모어 만화인 야마네 아카키의 「요타로군」(56년 『소년 클럽』), 테라다 히로오가 그린 야구 만화 「등번호 0」(56년 『야구소년』)등이 인기를 얻었다.

의외의 일이지만, 그들 작품의 상당수는 전전의 어린이용 대중소설=소년소설·소녀소설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기법적으로는 데츠카 오사무가 창안한 스토리 만화를 모방하면서도 테마나 가치관, 사상성에 대해서는 전전의 어린이 읽을거리와의 연관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 점에 대해서는 졸저인 「만화와 아동문학의 <틈>」(대일본도서)에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으므로 다시 되풀이하지 않겠지만, 전후의 만화 상황을 이해할 경우, 단락적으로 데츠카 만화를 정점으로 삼아 정리하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미리 주의해둘 필요가 있다.

시각적 아동문화의 태두

수많은 만화 작품이 1950년대 후반에 실리게 된 이유는, 만화문화의 틀을 넘어선 움직임과 관련이 있다. 당시의 문화 전반의 흐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 시절, 전후문화는 시각화의 파도롤 정통으로 맞이하고 있었다. 잡지에서는 『명성』이나 『평범』등과 같은 예능지가 큰 판으로 바뀌어가고 그라비아 페이지(역주: 코팅 된 컬러페이지)를 늘렸으며, 비주얼한 지면을 포인트로 내세웠다. 53년에는 영화에 와이드 스크린이 등장했으며, 순수 어린이용으로써는 역시 같은 해의 이와나미서점이 「이와나미의 어린이책」이라고 하는 그림책 시리즈를 간행한 것처럼, 50년대 초반에는 시각적인 서적의 비중이 늘어가는 시기였다. TV의 방송개시도 53년의 일이다.

만화문화도 그런 시각화의 파도에 맞춰서 성장해 가게 된다. 출판형태의 변화도 만화증대의 전환에 박차를 가했다. 53년에는 많은 월간 어린이 잡지가 A5판에서 B5판으로 와이드화되고, 거기에 맞춰서 만화의 게재량을 늘려간다. 거기다 다음해인 54년 말에서 55년에 걸쳐서는 본지에 만화의 부록이 붙게 되고, 이후 그것이 잡지의 세일즈 포인트의 하나가 된다. 나중에는 본지에 십 수권의 별책부록이 붙게 되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 점에 대해서 약간 기술해 보자.

만화부록의 증가는 잡지끼리 경쟁에 기초하고 있다. 이 시기까지 어린이 잡지 사이에서는 금속, 고무, 비닐 등을 사용한 장난감부록의 경쟁이 에스컬레이터 되고 있었다. 예를 들면, 당시의 신문기사 「부록, 부록, 부록」(『일본독서신문』51년 1월 31일)은 어린이 잡지의 부록에 금속, 고무, 천등 종이이외의 재료를 사용한 사진기, 망원경 등의 장난감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문제시하고 있다. 같은 해 4월 30일에 국철은, 그것들을 특별 운수취급에서 제외한다는 방침을 결정하고 있다. 이렇게 만화 부록이 등장하기 전에는 장난감 부록이 주류였던 것이다.

그러나, 50년대 중반이 되어 부록의 내용이 변화하게 된다. 계기가 된 것은 본지보다도 무겁게 된 완구부록의 출현에 운수성이 클레임을 건 데서 시작된다. 잡지에 허용되어 있던 특별운송비를, 중량 있는 장난감 부록에까지 적용하는 것은 뭔가 이상하다고 의문시 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54년에는 운수성과 주요 잡지사, 거기에 대규모 총판의 3자가 협정을 맺고, 「부록」의 범위를 결정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재료를 「1. 쇠고리류, 2. 철사, 고무, 나무, 대나무류, 3. 비닐, 천, 렌즈류, 4. 실류의 4종류로 나눠서 길이는 30cm이내, 넓이는 25cm 이내로 하고, 더구나 1종류에서는 2개밖에 사용할 수 없음」이 결정되었다.

각 편집부는 대응에 고심했다. 이런 완구부록을 대신하는 것이 달리 없을까. 그 결과 등장하게 된 것이 만화 부록이었다. 실제로는 만화의 부록 자체는 전전에서부터 존재했던 것이지만, 이 시기 이후 급속하게 증가하게 된다.

당시의 『신간월보』(56년 8월)는 「아동잡지부록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이것에 의하면 56년 1월로부터 3월사이의 어린이 잡지 18개지에 추가된 부록의 평균은 잡지당 4.1점이다. 분류는 만화가 44.6%, 그림이야기가 7.7%, 장난감이 30.9%로 되어 있다. 만화가 단연 다수여서 그 증가율을 잘 알려준다.

이런 만화부록의 증가와 본지에 의한 만화의 게재량의 증가는, 당연히 몇몇 문제를 나타나게 한다.

55년 1월에 『나카요시』와 함께 고에이샤로부터 창간된 『우리들』, 그 편집자인 히구치 리키는 부록을 포함하는 만화의 게재량이 증가함에 따라, 당시 자성의 의미를 담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기획의 몰개성화가 물량경쟁을 부르고 있다. 여기서는 질의 경쟁을 바랄 수 없으므로 물량만이 통하게 된다. 가장 중요한 작품의 퀄리티가 문제되지 않으므로 저속화되어 가는 것이다.」(『예각』9호 56년 6월 25일)

확실히 그런 면도 있었을 것이다. 어린이가 원한다, 만화의 양을 늘린다, 작가가 필요해 진다. 이렇게 해서 실력 없는 만화가까지 기용되고 붐에 휘둘려지는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그들은 독자적인 만화 작품을 그리는 노력을 태만히 하고, 대신 편집자가 원하는 대로, 어린이들에게 인기 있는 작품을 베끼는 일이 많았다. 그 때문에 다음에 살펴볼 다양한 사건을 일으키고 있다.

물론 그 책임을 만화가만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비판 그 자체에도 타당하지 않은 부분이 포함되어 있지만, 사회문제화 된 계기는 역시 안이하게 대응한 편집자와 만화가 측에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도작사건

먼저 도작이나 모방이 줄을 이었다. 특히 인기작가의 작품이 노림을 받았다. 그 제1인자가 데츠카 오사무라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다. 편집자끼리의 정보연락지인 『예각』50호 (60년 10월 25일)에는 당시의 데츠카 만화의 모방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여기에 따르면 어떤 만화가의 작품에 데츠카의 과거 작품인 「로스트 월드」의 모방이 다수 존재한다는 점이 문제시되고 있다. 데츠카는 동지에서 ‘이미테이션에 익숙해져 있는 나도, 여기에는 아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음 호를 보니, 나의 또 다른 작품에서 잘라낸 장면이 또 있는 겁니다. 이런 예가 처음이 아니고 K씨, H씨, 그 외에도 내 작품에 대한 도작은 여러 가지로 지적할 수 있습니다.’ 라고 하는 코멘트를 적고 있다.

지적을 받은 작품은 『주간 소년 매거진』에 연재된 것이지만, 예를 들어 동지 60년 10월 23일호의 모 작품 86-92페이지에 걸친 활극장면은, 데츠카의 「로스트 월드」의 구도 그대로다. 이 점에 대해서는 직접 이 작품을 분석한 것은 아니지만, 마찬가지 경향을 타카키 히로시가 『효단츠기 타임즈』(25호 87년 12월)에서 분석하고 있으므로 흥미 있는 사람은 한번 읽어보시기 바란다.

데츠카의 발언에도 있듯이, 사건은 이전부터 만성화되어 있었다. 이런 예는 데츠카의 위대함을 역으로 증명하는 일이 되지만, 본인에게는 단지 귀찮은 일일뿐이었을 것이다.

화제를 바꿔보자. 만화의 수요가 늘어나고, 만화가는 바쁘게 된다. 그 때문에 마감에 늦어지거나 다른 작품으로 때우는 사건도 다발한다. 그 때문에 편집자의 모임인 일본아동잡지편집자회는 어린이 만화가의 집합체인 동경아동만화회와 교섭해서 다음과 같은 항목을 결정한다. 이것이 당시의 갈 때까지 간 상황을 잘 전해주고 있다. 제법 재미있는 항목이므로 이하 전문을 소개해 본다.

합의 사항
1. 무리한 원고는 의뢰하지 말고 받아들이지 말 것.
2. 원고의 마감일은 엄수한다.
3. 방에 처박거나 눌러앉는 행위는 금지한다.
4. 원고집필의 순서를 정해서 이것을 명시하고 지킨다.
5. 작자는 관계잡지에 행방을 밝힌다.
6. 편집자는 노력봉사를 하지 않는다.
7. 대작은 금지한다.
8. 분쟁이 발생한 경우는 쌍방이 협회로부터 위원을 선출해서 선처한다.

당시의 편집자와 만화가와의 실랑이가 이 조항들을 통해서 전해져 온다.

이런 조항들을 뒤집어 보면, 당시의 만화가는 무리한 주문을 받아들이고, 마감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어떤 때는 편집자에게 일을 시키거나, 대작을 시킨다. 그리고 끝내는 행방불명이 되어 위기를 넘기려고 한다. 거기에 대해서 원고를 받아야 하는 편집자 쪽은, 무리한 의뢰를 하고 만화가를 여관에 처박아 놓고 일단 그리게 한다. 그런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했다는 것이다. 현재도 잘 팔리는 만화가는 극히 다망한 일상을 보내지만, 당시는 아직 어시스턴트를 전속으로 거느리거나 프로덕션제를 택하지 않고 있던 시대였기 때문에 현대보다 혼란이 컸음이 틀림없다.

어쨌거나 이런 물량작전은, 한편으로는 작품레벨의 저하를 불러오고, 결국에는 「악서추방」이라는 여론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이 되어 간다. 그 점을 아래에서 살펴봐야 하겠지만, 그 전에 또 하나 만화의 유행에 관한 사건을 소개하도록 하자. 이 시기에는 잡지의 판매전이 원인이 되어 종래와는 다른 잡지의 월수표시가 정해져 있었다. 이것을 사건이라고 부리기는 힘들지도 모르지만, 오늘날과 연결되는 사례이며 당시의 치열했던 판매전을 상징하는 움직임이라고 생각하므로 간단히 소개해보자.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50년대 전후에는 몇 가지 어린이 잡지가 타지보다도 새로운 인상을 주기 위해서 월호수를 앞당겨 표시했다. 3월달에 발행되는 4월호를 2월달에 판매하는 행위다. 이런 수법은 다른 잡지사의 반발을 부르게 되고, 총판도 움직이게 된다. 50년 9월에는 어린이 잡지 17개사, 및 총판 4개사, 소매업자 단체 3자가 모여서 협의, 그해 12월호와 다음해 신년호 사이에 발행월과 월호표시를 맞추는 조정호를 내고, 일괄 표시할 것에 합의한다. 그후 59년에 고에이샤의 잡지 『우리들』과 『나카요시』의 창간에 즈음해서 조정이 맞지 않는 일도 있었지만, 어떻게 현재의 스타일, 즉 발행월수와 월호수가 일치하며 발매는 그 전달이라고 하는 형태가 일반적이 되었다. 독자중에는 왜 월호수 표시가 발매월보다도 하나 더 많은가 하는 의문을 가진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실은 그 배후에는 50년대 후반의 만화 잡지의 이런 판매전이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었던 것이다.

악서추방운동의 경과

이제까지 월간지에 스토리 만화가 다수 게재되어 가는 1950년대라는 시대를 주목해 보았다. 몇 가지 사건을 열거해 보았는데, 무엇 보다 사회적으로 주목받은 사건은 이제부터 소개하려고 하는 ‘악서추방운동’이다. 이 사건은 90년대에 발생한 ‘<유해>코믹문제’와도 공통되는 의식을 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건의 경과가 가르쳐 주는 사실이 새롭다. 여기서는 간단하게 그 경과를 더듬어 보려고 한다. 상세한 것은 「악서추방운동 시절」(『어린이라는 레토릭』수록 靑弓社)에서 한 번 썼으므로, 여기서는 먼저 최초에 ‘악서추방운동’이 어떤 사건이었는가를 간단하게 소개하고, 거기서 파생된 움직임이나 문제점을 랜덤하게 적도록 한다.

먼저 '악서추방운동'이 일어나게 된 첫 번째 요인은, 어린이 잡지의 - 특히 - 만화에서 다루어지는 ‘저속’한 묘사에 있었다. 『재미있는 책』『우리들』『통쾌북』등, 당시의 잡지에 게재되고 있던 만화에는 살인이나 폭력장면등이 다수 등장했다. 또한 에로·그로테스크의 아슬아슬한 표현, 난폭한 언어사용이 드러나고 있다. 그런 자극적 장면에 비난이 집중하게 된 것이다. 먼저 클레임을 건 것은 <일본 어린이를 지키는 회>와 <어머니의 회 연합회> 및 각지의 PTA등의 단체였다. 동시에 『일본독서신문』이나 『도서신문』등과 같은 도서 전문지가 이 문제를 거론하게 된다. 그렇게 매스컴에 의해 거론됨으로써 운동은 점점 더 광역화, 첨예화되어 갔다.

『일본독서신문』은 55년 3월 21일호로부터 5월 2일호에까지 4회에 걸쳐서 「아동잡지의 실태」에 대한 연속특집을 싣고 있다. 제1회째인 「아동잡지의 실태 그 첫 번째」에서는, 만화의 잔혹묘사나 전쟁물에 대해서 상세하세 보고하였으며, 제2회째인 「同 그 두 번째」에서는 소녀물을 거론했다. 제3회째인 「同 그 세 번째」에서는 별책만화 부록이 많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만화의 언어나 비과학성을 문제로 삼았으며, 제4회째인 「同 그 네 번째」에서는 실제교사에 의한 지도의 기록을 피로하고 있다. 추가기사인 「아동잡지는 나아졌는가」(11월 28월호)에서는 그 후의 실적을 점검하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이렇게 전문지의 일련의 보도에, 큰 신문사가 주목하게 되고, 단번에 사건은 전국적 문제가 되어 간다. 또한 '악서추방'이라고 하는 센세이셔널한 단어가 사용되었으며, 운동은 탄력을 얻게 된다. 전국지의 움직임에 주목해 보도록 하자. 55(쇼와30)년 3월 30일자의 『요미우리신문』은 「불량도서를 추방」이라는 기사를 게재한다. 「최근 엄청나게 늘어난 아동잡지수는 약 750만부, 그 태반이 동심을 상처 입히는 정체불명의 만화나 에로, 그로물이나 잔학성의 극을 달리는 모험이야기, 혹은 전쟁물등에 귀중한 페이지의 절반가량을 할애하고 있다」라며 구체적으로 잡지를 분석해서 비판했다. 계속해서 4월 12일자의 『요미우리신문』은, 「퍼져가는 악서추방운동」이라고 하는 기사를 싣고, 「어머니의 회 연합회」나 「일본 어린이를 지키는 회」등의 민간단체의 움직임, 및 거기에 호응한 만화작가단체인 「동경아동만화회」의 대응 등을 보도했다. '악서추방'이라는 용어에 대해서 살펴보면, 이 『요미우리신문』의 기사에서는 확실히 '악서추방운동'이라는 명칭이 사용되고 있다. 이 이전의 기사에는 '악서추방'같은 용어는 보이지 않았으므로, '악서추방'이라는 용어는 이 기사에 의해서 처음으로 사용되고, 이후 이 문제를 대표하는 용어로써 정착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성립된다.

거기다 2주간후의 『아사히신문』기사의 타이틀에는 「악서추방 출판계, 자숙으로 움직임」이라고 기술되었고, 다음달인 5월 14일자의 『요미우리신문』사설은, 확실하게 '악서추방운동'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그 신문보도의 일주일 전, 2월 11일의 「아사히신문」에서는 아동문학자이며 교육평론가인 滑川道夫가 「청소년 읽을거리를 건전하게」라는 타이틀 하에 출판계에 대한 자정노력과 민간운동의 확대를 호소하고 있다. 「현상황은, 마치 쇼와 13년, 내무성이 속악만화 그림책의 정화운동에 착수해서 끔찍한 출판통제의 계기를 만들었던 것과 유사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라고 현상인식을 하며 4개의 제안을 내걸고 있다. 학교의 독서지도를 강화해 나갈 것, 교육관계자나 PTA등 관계자의 단결을 꾀할 것, 출판사가 자주적으로 자정노력을 행할 것, 일부 작가의 자기개혁을 바랄 것 등의 내용이다. 결과적으로 법제화는 그냥 넘어가게 되지만, 당시의 단속당국의 강경한 대응과 거기에 대항하는 민주세력의 움직임이 이런 기사로부터 잘 전해져 온다.

이렇게 사태는 폭넓게 사회문제화 되어 가지만, 그 피크는55(쇼와30)년의 4월부터 5월이라고 볼 수 있다.

현실에서는 야마카와 소지의 「소년 케냐」, 후쿠이 에이이치의 「이가구리군」, 데츠카 오사무의 「철완아톰」 및 「리본의 기사」등, 전후 만화사에 올라있는 작품들이 연재되는 시기다. 또한 스기우라 시게루의 「사루토비 사스케」나 타케우치 츠나요시의 「꼬마장군」, 카와시마 미츠히로의 「빌리 팩」등의 만화가 그 뒤를 이어가는 기간이기도 했다.

악서추방운동은, 이런 작품을 비판의 대상으로 끌어들였다. 그러나, 가장 빈축을 사게 된 것은 앞서 살펴본 것처럼, 만화의 수요증가와 함께 기용된 신인들의 작품이었다. 작품레벨의 저하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운동에는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어린이 잡지에서의 만화의 증가, 전후의 혼란기와 연결되는 청소년범죄의 실태, 정치체재의 보수화나 단속의 법제화, 윤리나 성풍속의 급변, 시대나 문화의 변화속에서 흔들리는 어머니들의 당황함, 그것들이 이 '악서추방운동'으로 집약되었던 것이다.

이 시대의 만화에 대한 관심은, 우리나라만의 독자적인 현상은 아니었다. 세계적인 경향이었다는 사실을 당시의 자료로부터 찾아볼 수 있다. 영국에서도 호러 코믹에 대한 통제법안이 검토되었고, 미국에서도 뉴욕에서 호러 코믹에 대한 통제 법안이 작성되었다. 중국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클로즈 업 되고 있으며, 당시의 신문에는 캐나다에서 에로틱한 어린이 만화에 대한 출판금지령이 의회에서 가결되었다는 기사도 게재되고 있다. 사태는 세계적인 경향이었던 것이다. 편집자측도, 만화비난의 소용돌이 속에서 독자적인 대응을 보였다. 소학관에 있던 유비가타 류지를 중심으로 아동잡지 편집자들의 연락회가 결성되었던 것이다. 창설은 추방운동이 가장 왕성하게 벌어지던 55년의 4월 15일. 명칭을 「일본아동잡지편집자회」라고 한다. 회에서는 기관지인 『예각』을 발간하고 편집자의 입장을 명확하게 밝히고 나섰다.

참가한 잡지는 『모험왕』『만화왕』『소년 클럽』『소년』『소녀』『재미있는 책』『나카요시』『소녀 클럽』『유치원』『소학1년생-6년생』『소년화보』『통쾌북』 등, 8개사 30개지다. 당시의 주요 잡지 편집자가 모두 여기에 모인 것이다.

편집자회에서는 기관지를 발행해서 다양한 기사를 실었다. 악서추방에 관한 논쟁이나 편집자의 의견, 만화가의 발언, 만화가와 편집자의 좌담회나 부형이나 아동문학자·교육자를 포함시킨 토론회의 기록등도 적극적으로 게재해서 논의의 범위를 확대시키는 역할을 수행했다. 『예각』이라고 하는 기관지 발행의 의도도 거기에 있었을 것이다.

한편, 만화가도 해결에 나서게 된다. 어린이 잡지나 만화·그림이야기에 대한 반발이 강해지는 속에서, 단체의 결성을 꾀하게 된다. 야마카와 소지, 永松健夫, 武田將美, 前谷惟光들에 의한 「칠일회」, 「일본아동만화연구회」를 발전시킨 시마다 케이조, 데츠카 오사무, 아키 레이지, 마츠시타 미치오들에 의한 「동경아동만화회」의 발족이 그것이다. 양회에서는 토론회에 참가하거나 독자적으로 연구회를 벌였다.

동경아동만화회에서는 다시 기관지인 『아동만화』를 간행하고 있다. 57년에 창간된 이 책자에는 몇가지 악서추방운동에 대한 토론회의 기록이 실려있지만, 일본아동잡지편집자회의 『예각』만큼의 에너지를 느낄 수는 없다. 말하자면 그런 운동에 대해서는 만화가 자신보다도 편집자쪽이 적극적으로 사건을 접하고, 사태를 타개하려고 했다는 흔적이 역력히 드러난다. 만화가쪽은 거기에 비한다면 조직력 그 자체가 빈약하며, 수동적이라는 느낌을 감출 수 없다.

악서추방운동에 국한해서, 개개의 작품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았다. 현실에서는 「철완아톰」「월광가면」「꼬마장군」「빌리 팩」등, 당시의 인기작품이 줄을 이어서 비판의 도마위에 올려지고 있었다. 「철완아톰」의 한 장면에 의해서 어린이의 익사사고가 발생하였다던지, 월광가면의 흉내를 내다가 담벼락에서 떨어지는 사건이 화제가 되었지만, 그것도 이 악서추방운동의 문맥에서 이해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었다.

오늘날의 자극적인 만화 장면을 놓고 본다면, 악서추방운동은 과잉반응처럼 보이지만, 전후 민주주의라고 하는 새로운 시대의 희밍과 불안속에서 새로운 문화인 스토리 만화, 그 자체가 기묘한 존재로 비춰진 것은 아닐까.

마지막으로 하나의 논쟁에 대해서 기술해 두고자 한다. 월간지의 스토리 만화가 융성의 절정에 달한 50년대 말, 『예각』같은 업계지가 아니라, 일반지상에서, 그것도 저명한 평론가에 의해서 어린이만화에 대한 논쟁이 전개되었다. 미술평론가인 나까하라 유우스케와 작가인 사노 미즈오와의 논쟁이다.

처음에 나까하라는 「어린이와 만화」(『문학』59년 3월)이라고 하는 문장에서 현재의 어린이 만화의 문제를 거론했다. 교육적이 아니라 「엉터리에 넌센스가 어린이 만화의 본질」이라고 하는 나까하라의 논조를, 사노가 「속류만화옹호론비판」(『기록영화』60년 5월)에서 비판, 폭넓은 의미의 교육이어야 할 것이라고 단정한다. 다시 나까하라가 「어린이 만화만능론 비판」(『신일본문학』60년 7월)에서 역비판을 행하는 것처럼 양자의 대립은 에스컬레이트였다. 양측 모두 어린이 만화의 재미를 인정하면서도 미묘한 입장차이를 보이는 결과로 막을 내렸다. 장착이 열을 올리던 시기, 평론에도 불이 붙었다. 그런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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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에 태어나 90년대를 성장해 2000년대를 살고 있다. 사회학과 정치학을 전공했지만, 스스로를 역사학도라고 생각한다. 면식과 만화 수다와 어린이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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