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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만화50년사, 제2장 월간지와 그림이야기

posted Jan 0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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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월간지와 그림이야기

그림이야기의 유행

빨간책 만화의 출판은 1950년대 중반에 종언을 맞이하게 된다. 실제로 단행본 만화의 출판은 이후도 계속되지만. 이제까지처럼 영세업자에 의한 벼락치기 출판은 그림자를 드리우게 된다. 전후에 부흥을 이룩한 중앙의 출판사가 어린이잡지를 계속해서 출판하는 것을 곁눈으로 보면서, 빨간책 만화 업계는 독자적인 길을 모색해 나가게 된다.

53년에는 슈에이샤가 새 시리즈 「재미있는 만화문고」를 스타트 시켰다. 만화에 대한 세간의 비난을 의식해서, 위인의 전기나 명작 만화등을 풍부하게 싣는 한편, 스기우라 시게루의 『사루토비 사스케』나 오오시로 노보루의 『소녀 백국』등의 수작도 수록하고 있는 이 시리즈는, 종래의 빨간 책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규모와 내용을 자랑하고 있다.

또한 빨간책 만화의 종언은, 정규의 취급루트를 통하지 않는 대본소전용의 단행본 출판을 한편에서 만들어내게 된다. 만화단행본의 출판은, 이처럼 모습을 바꾸어서 그 후도 면면을 이어나간다. 그 동향에 대해서는 제4장에서 상세하게 살펴보도록 하고, 이 장에서는 중앙의 잡지에 눈길을 돌려보도록 하자. 특히 50년대 초기로부터 중반에 걸쳐서, <그림이야기>가 유행하였다. 그 점에 주목해 보자. 그림이야기 붐은 빨간책에 절대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세간의 주목을 끌고 있던 어린이 문화의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50년대 전반에 창간된 잡지에는 『모험활극문고』의 후속지인 『소년화보』(50년 4월 소년화보사), 『소녀 북』(51년 9월 슈에이샤), 『통쾌북』(53년 1월 芳文社)등이 있지만, 모두 읽을거리 기사, 그중에서도 소년 소녀소설이 다수 게재되고 있어서 아직도 전전의 잡지 패턴을 답습하고 있다. 그런 사정이 있었기 때문에 잡지전체에서 차지하는 만화의 게재량은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었다. 만화의 게재량이 늘어나는 것은 50년대 후반이 되어서의 일이다. 그러면 시각적인 이야기가 없었느냐 하면 그렇지가 않아서, 당시는 만화와 닮기는 했지만 완전히 표현방법이 틀린 작품 = <그림이야기(畵物語)>가 다수 게재되고 있었던 것이다.

앞장에서 살펴보았던 『모험활극문고』『어린이 만화 『소년만화첩』등, 4, 50페이지 정도의 얇은 잡지 외에도, 『재미있는 책』이나 『모험왕』『모험활극문고』등의 어린이 잡지는 이 그림이야기를 적극적으로 게재해서 독자의 요구에 응했다. 야마카와 소지, 코마츠자키 시게루, 후쿠시마 테츠지, 오카 토모히코, 永松健夫, 萩原考治등이 이 분야 작가의 중심이었다.

40년대 후반부터 50년대 중반에 걸쳐서는 이런 작가들의 작품이 지상을 윤택하게 해주었으며, 그림이야기 전성의 시대였다. 데츠카 오사무가 창안한 스토리 만화가, 아직 데츠카 개인 플레이의 범위에 머무르고 있어 하나의 운동체로까지 성장하지 않았던 시절이다.

그러면 실제로 잡지에는 어떤 그림이야기가 게재되었는가. 그리고 그림이야기의 어떤 점이 문제시되었는가. 먼저 그림이야기란 무엇인가를 간단하게 설명한 다음에 이후의 분야를 생각해 보도록 하자.

그림이야기란...

「그림이야기」란, 말 그대로 이야기에 그림이 덧붙여진 것을 말한다. 다만 「그림 두루말이(繪卷物」등에서 말하는, 과거로부터 전해오는 그림이야기와는 의미가 완전히 틀린다. 소화에 들어와서 하나의 장르로써 확립된, 치밀한 그림체에 의한 그림과 문장으로 구성된 표현양식을 말하는 것이다.

그 선구가 된 것은 다이쇼 말기, 1920년대에 활동을 개시한 미야오 시게오의 여러 작품「만화태랑」이나 「경단 꼬치 만유기」등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 또한 우리들이 이미지로써 갖고 있는 그림이야기, 말하자면 전후 활약한 야마카와 효지나 코마츠자키 시게루의 작품으로부터 받게 되는 이미지와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먼저 그림체 자체가 다르다. 전후 쪽이 극히 리얼한 표현을 구사하고 있으며, 이야기전개의 방법도 크게 다르다. 전후 쪽이 훨씬 드라마틱한 전개로 기울고 있다.

오히려 여기서 말하는 그림이야기란, 『소년 구락부』에 1930년대에 게재되었던 「지상그림연극(誌上紙芝居)」에 보다 가까운 부분이 있다. 33년에 『소년 구락부』에 실린 우미노 주조 글, 吉邨二郞 그림의 「地中魔」나 久保一穂글· 山口將吉郞 그림 「쇼타로의 조약돌(礫の小太郞)」등의 작품은 리얼한 그림 옆에 첨부된 문장으로써 이야기 전개를 꾀하고 있다. 타이틀의 옆에 「지상그림연극」이라고 기재되어 있는 것처럼, 당시 유행한 거리 그림연극의 분위기를 지면에 옮겨 놓으려고 한 것이다. 잡지에서 다루는 그림연극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림이야기는 그런 지상그림연극과 직접 연관되어 있었다.

실은 『소년구락부』에서 행해진 이런 기획선상에서 야마카와 소지라고 하는 그림이야기 작가가 탄생하게 된다. 야마카와 소지는 원래는 그림연극 작가였지만, 문부성이 주최하는 그림연극 콩쿨에 응모해서 입선한 것이 『소년 구락부』의 편집자 눈에 띄어 『소년 구락부』에서 그림이야기 작가로써 데뷔를 하게 된다. 1939년의 일이다. 이후 야마카와는 「선무의 용사」「노몬한의 매」「키타자토 시바사부로(北里柴三朗)」「和井內鱒」등 주로 단편 그림이이기를 게재해 간다. 이것들은 크게 전쟁물과 위인전으로 분류할 수 있지만, 전시색이 짙어짐에 동반해 만화 게재량이 감소해 가자, 그 대용품으로써의 역할도 같이 수행하고 있다. 그리고 야마카와는 전후에도 창작을 계속해서 「소년왕자」나 「소년 케냐」등과 같은 장편 그림이야기에 의해서 일세를 풍미하게 된다.

그런 야마카와 자신은, 그림이야기는 그림연극이 발전된 것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그림이야기는 그림연극의 형식을 신문, 잡지 지상에 살려낸 것으로써, 그원형은 그림연극에 기초하고 있다’ ‘그림이야기는 그림연극을 원형으로 하고 있으므로 특별히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전후의 잡지 서적의 화보화, 그래프화라고 하는 대세에 따라, 소년, 소녀잡지가 그림이야기에 힘을 기울이게 되었다.’ (「그림연극과 그림이야기」『문학의 창조와 감상』이와바 강좌제3권 55년 이와바서점). 이렇게 당시 유행하고 있던 거리의 그림연극이 때 마침 부흥하고 있던 어린이 잡지에 스타일을 바꿔 미끄러져 온 것. 그것이 그림이야기라라는 표현이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림연극작가가 그림이야기에 손을 대는 일이 많았다.

작가와 작품

그러면 어떤 그림이야기가 당시 그려지고, 인기를 얻었을까. 그 작품과 연재 시기등을 열거해 보도록 하자. (월수는 호수가 아니라 잡지의 발행월수로 나타냈다)

「은성」 야마카와 소지 『만화소년』 48년 1월-49년 6월
「황금배트」 에이마츠 겐고 『모험활극문고』 48년 8월-51년 9월
「지구SOS」 코마츠자키 시게루 『모험활극문고』 48년 10월 - 51년 10월
「사막의 마왕」 후쿠시마 테츠지 「모험왕』 49년 2월 - 56년 2월
「녹아웃 Q」 야마카와 소지 『만화소년』 49년 7월 - 51년 8월
「소년 왕자」 야마카와 소지 『재미있는 책』 49년 9월 - 57년 12월
「유령목장」 야마카와 소지 『소년』 50년 8월 - 52년 12월
「대평원아」 코마츠자키 시게루『재미있는 책』 50년 1월 - 52년 10월
「백호가면」 오까 토모히코 『모험왕』 51년 6월 - 55년 12월
「소년 케냐」 야마카와 소지 『산업경제신문』 51년10월7일 -55년10월4일
「산사나이 단씨」 阿部和助 『산업경제신문』 53년11월1일 -55년7월 24일
「비룡야차」 오까 토모히코 『재미있는 책』 54년 1월 - 55년 12월

이상이 대단히 인기를 얻은 작품들로써 그 밑으로도 수많은 그림이야기가 버티고 있었다는 사실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타이틀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일련의 작품은 SF물에 서부극, 검극, 밀림모험물, 생활물 등등 내용적으로는 전전의 소년소설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기법적으로는 거리의 그림연극을 그 기원으로 하는, 佐藤紅錄, 平田晋策, 山中峯太郞, 우미노 주조, 사사키쿠니 등에 의한 전전, 전중의 어린이용 대중소설의 전후판 재생이라고 볼 수 있다.

메이지기에 행해졌던 押川春郞의 무협소설, 다이쇼시기의 검극물을 중심으로 한 다치가와 문고, 그리고 쇼와에 들어와서 유행하게 된 『소년 구락부』 등에 실린 소년 소설, 및 쇼와초기의 거리 그림연극. 이렇게 어린이용의 대중적인 읽을거리는 전후가 되어서도 그림이야기로 이어지게 되고, 또 나중에는 어린이 만화로 흘러들어가게 된다. 이런 식으로 보게 되면, 표현의 방법이나 장르는 틀리더라고 하더라도, 그 바닥에 큰 흐름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림이야기와 소년 소설이 상반되었던 50년대의 초기, 교육자인 滑川道夫는 『대부분이 "혼안調" - 소년들의 비판력의 성장을 놓치지 마라』(『일본독서신문』51년 5월 2일)는 기사로, 당시의 그림이야기의 레벨이 낮음을 문제시하고 있다. 滑川은 『재미있는 책』이나 『모험왕』『소년화보』등의 어린이 잡지를 반 년 간 살펴 본 뒤, 게재되고 있는 그림이야기의 대부분이 야마카와 소지의 아류라고 판단하고 있다. 확실히 그런 점이 클로즈 업되더라도 변명할 말이 없다. 그 만큼 야마카와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던 것이다. 오해가 없도록 보충해 두자면, 데츠카 오사무의 만화는 이런 문맥으로부터 동떨어져셔서 모더니즘과 인터내셔널리즘을 동시에 지향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특이한 위치에 있었다고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야마카와 소지의 그림이야기

그림이야기는 대중적인 어린이 문화의 총아였다. 그러나라고 해야 할지, 그래서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1940년대 후반에는 이들 그림이야기의 저속한 내용이 문제가 된다. 만화와 함께 그림이야기에도 비난이 집중한다. 세간에 알려진 ‘악서추방운동’이지만, 그 구체적인 경과는 다음 장에서 상세하게 살펴보도록 하고, 여기서는 그림이야기와 관련되는 소동만을 픽업해 보도록 한다.

우선 문제시 되고 있는 그림이야기란 도대체 무엇인가. 의외로 붐에 편승해서 게재되었던 자극적인 장면이 연속되는 그림이야기가 아니라, 本家本元의 작품이 표적이 되었다. 어린이들에게 인기 있었던 야마카와 소지의 그림이야기, 「소년왕자」나 「소년 케냐」,그중에서도 특히 「소년 케냐」가 표적으로 거론되는 일이 많았다. 「소년 케냐」의 어떤 점이 문제시되고, 어떤 형태로 비난되었는가하는 당시의 움직임을 쫓아보도록 하자.

먼저 「소년 케냐」는 어떤 이야기인가. 간단하게 줄거리를 소개해 보자. 「소년 케냐」는 1951년 10월 7일부터 『산케이신문』에 연재되어, 55년 10월 4일까지 연속된 밀림모험물이다. (52년부터의 연재라고 하는 책도 있지만, 이 날짜가 정확하다)

주인공인 소년의 이름은 무라카미 와타루라고 한다. 10살의 소년이다. 와타루는 면직물 상인 아버지 무라카미 다이스케와 함께 아프리카의 영국령 케냐에 주재하고 있지만, 전쟁이 발발한다는 소문을 들은 영국인에게 잡힐 것을 두려워해 밀림으로 도망가고 만다. 이렇게 해서 케냐의 산악주변의 열대에서 일본인 부자의 생활이 스타트하게 된다. 방랑의 도중에 와타루는 아버지와 헤어지게 되지만, 병으로 약해져 있던 현지인 제가를 구해주고 그와 같이 생활을 하게 된다. 또한 거대한 뱀인 다나와 코끼리인 난타를 동료로 삼아, 몸과 마음 양쪽에서 성장해 나가게 된다.

와타루는 천생의 정의감과 용기로 정글의 평화를 어지럽히는 독거미, 전세기의 대공룡, 원시거북등의 맹수를 쓰러뜨리고, 모략이 꿈틀거리는 속에서 보라족, 토카게족, 로코족 등 다양한 적 부족과 싸워 사람들을 구속으로부터 해방한다. 또한 그런 도중, 와타루와 마찬가지로 정글에서 길을 잃고 떠돌던 백인 소녀 케이트를 구출. 그 후 케이트, 제가, 와타루의 3명을 축으로 이야기는 전개되어 가지만, 최후의 시점에 와서는 아버지와 재회함으로써 해피엔딩을 맞이하게 된다. 그 때는 이미 전쟁은 종결되어 있어서 새롭게 부자는 귀국길에 오르게 된다. 이상의 요약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소년 케냐」에는 대중지향적인 이야기의 요소가 잔뜩 포함되어 있다. 그림이 들어있는 다치가와문고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 구폐의 이야기 전개와 그 요소가 비난하는 측의 논점의 근거가 되어 간다.

예를 들어 『도서신문』54년 8월 14일호는 「어린이의 무용담」이라는 타이틀 밑에서 야마카와 소지와 滑川道夫의 대담기사를 싣고 있다. 또한 『일본독서신문』도 55년 6월 20일호에서 「소년 케냐를 검토한다」라는 특집기사를 게재. 이어서 『일본주보』 55년 5월 5일 호에는 특집 「저질 읽을거리 만화추방」이 편성되어, 야마카와 소지와 이께다 노베마사의 의견을 게재하는 등, 54년부터 55년에 걸쳐서는 실제로 역동적인 인상을 준다.

「소년 케냐」 비판

이런 기사를 포함해서, 당시의 매스컴의 반응을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문예춘추』의 1954(쇼와 29)년 4월 증간호에는 赤岩三策이 4페이지에 걸친 에세이 「소년의 영웅들 -현대의 押川春浪-」에서 야마카와 소지를 거론하고 있다. 여기서는 메이지의 모험소설과 그림이야기의 유사점을 지적하고, 현재 가장 인기가 있는 그림이야기 작가인 야마카와 소지의 제작시스템이나 그 영향을 보고하고 있다. 비난 일변도가 아니라, 성인독자들을 향해서 어린이 문화에 무슨 일이 발생하고 있는 가를 인식시키려고 하는 논조다.

계속해서 『도서신문』54년 8월 14일호는 「어린이의 강담」이라고 하는 특집기사에서, 滑川道夫와 야마카와 소지의 대담을 싣고 있다. 滑川道夫는 당시 매스컴을 통해서 만화나 그림이야기를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던 교육학자다. 그러나 이 대담에서는 작가와 직접 얼굴을 맞대게 한 덕분인지, 그림이야기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그 점이 인상적인 기사다.

滑川의 발언을 보면, “야마카와 씨의 『소년 케냐』를 읽고 느낀 것은, 흔히 흑인이라고 하는 존재의 인간성을 대단히 존중하고 있다”, “『소년 케냐』라고 하는 것은, 회를 거듭해서 우리들이 생각하고 있는 정의의 관념이 드러나고 있다”, “당신이 쓴 이 『은성』같은 책에서는 한 발의 권총같은 것도 쏘지 않고 있다”, “『소년 케냐』가 가진 스토리의 재미, 이것은 야마카와 씨의 오리지날이겠죠”, “그것이 야마카와 씨, 당신의 문장은 대단히 세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당신을 흉내낸 사람들의 문장이란건 좀 천박스럽더군요” 이런 식으로 滑川의 어조는 상당히 호의적이다. 야마카와도 다망함 때문에 프로덕션 시스템을 취하게 되고, 그 때문에 그림이 거칠어지게 되는 점을 사과하면서 웃고 있다.

그런데, 같은 해 12월호의 『문학』에 게재된 「“소년 케냐”를 중심으로」라는 글에 의하면 滑川道夫는 급속하게 비난의 톤을 높이고 있다. 현재의 그림이야기가 「I. 괴마모험탐정물 II, 토인투쟁물 III, 서부극 IV, 과학모험물 V, 시대강담물」의 다섯가지로 분류될 수 있으며, 그것이 강담부활의 추세에 의한 것이라고 단정한다. 그리고 이 분류중에서 「II, 토인투쟁물」에 해당되는 「소년 케냐」를 후반에 거론하면서 그림의 유치함과 그 사상성을 문제시하고 있다. 당시의 식자의 그림이야기관을 알리자는 의미에서 본문을 인용해 보도록 하자.


여기서 「소년 케냐」의 정체가 대부분 이해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한다. 이런 글이 야마카와 공장이 제작하는 비미술적인 「그림」과 타협해서 그림연극풍으로 전개된다. 컷 그림의 연속으로 스토리를 쫓아, 계속해서 활극적인 스릴을 기대시키게 된다. 「그 운명은 과연 어떻게」라는 식의 연속으로써 어린이들을 「헉-」하고 만들게 하거나 두근두근하게 만들거나, 안도하게 만든다. 맹수들과의 대난투, 광폭한 소인족 토인들과의 전투, 그리고 전세기적 괴수의 출현, 금방이라도 죽을 듯이 몇번이라도 떨어지고, 사람이나 토인이나 큰 뱀등에게 구원을 받게 된다. 여기에 토인의 무지함과 바보스러움을 짜 넣음으로써 독자의 웃음을 유발함을 잊지 않고 있다.

주인공 와타루 소년은 용감하며 인정 두터운 초인적 소영웅으로써 그려지고 있으며, 어린이들의 영웅찬양심리에 부합하고 있다. 미소녀 케이트는 가련의 상징으로써, 무라카미는 무기를 가진 문명인의 대표이며, 토인은 광폭함과 무지와 악의 상징으로써 그려진다. 존장인 제가는 인협의 정신을 가진 용감한 토인으로써 인간적으로 취급된다. 이 점은 흑인을 희생으로 삼아 백인이 승리를 얻게 되는 활극물과 틀린 점이다. 이 점과 쓸데없이 함부로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고 하는 전개에 야마카와 소지의 영웅주의, 인협주의와 연결되는 휴머니즘적인 정신이 나타나는 것이 최소한의 구원이라고 해야 할까.

滑川의 발언은 앞서의 『도서신문』지면의 발언과 180도 틀린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일단, 滑川의 의견은 당시의 부모나 교육자의 소리를 대변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비난의 톤은 이렇게 점점 높아져 간다. 그것은 「소년 케냐」의 인기와 반비례하는 움직임이기도 했다.

다음해 55년 5월의 『일본주보』는 「대결 속악 읽을거리 만화 추방」이라고 하는 특집기사를 낸다. 뭐가 대결인가 하면, 당대의 인기 그림이야기 작가인 야마카와 소지와 전전의 소년소설 작가인 이께다 노베마사, 이 양거두에게 글을 쓰게 한 것이다. 편집부는 다른 상업주의 작가와는 틀린 위치에 두 사람을 등장시키고 있다.

야마카와의 글 「피스톨, 찬바라 의견무용!」은 자신의 작풍이 어린이를 생각한 건전한 것이라고 함을 알리고, 어른의 너그러운 이해를 구하고 있는 내용이다. 간단하게 요약하게 되면, 어린이에게는 재미있는 것이 첫째이며, 아무리 훌륭한 것이라고 해도 교훈적이며 너무 진지한 것은 의미가 없다. 자신의 그림이야기는 총수로 단행본 150만부 이상이 세상에 나와 있지만, 그것은 재미에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뭐든지 쓰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는 어린이들에게 정의나 우정의 소중함을 심어주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섹스 문제도 그리지 않고 있으며 여자가 묶이는 장면도 그리지 않는다. 자유로운 공상이라고 하는, 학교교육에서는 채워지지 않는 어린이들의 꿈, 자유로운 어린이의 본능을 키워주기 위해서 나는 노력하고 있다, 라고 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그 문장을 맺고 있다.

어린이는 명랑하고 힘 있게, 개성이 강한 사람으로 크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어린이의 놀이나 읽을거리에 대해서는 에로, 그로테스크 한 것이나 잔학성을 띈 것, 허위적인 것은 이미 문제가 아니며 자유롭게 어린이의 본능을 살리기 위해 건전한 발생을 꺾지 않도록, 어른들은 관대한 기분으로 이해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즉 어른의 윤리관을 가지고 막연히 비난해서는 안된다 라는 것이다.

이 글을 작가의 자기변호라고 받아들이면 그걸로 끝이지만, 이 글은 의외로 솔직한 작가의 진심이 들어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야마카와의 국가관은 - 당연한 것이겠지만 - 전전의 체제 속에서 키워진 것으로써 새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낡은 것이었지만, 그 결벽한 윤리관은 전후의 혼란기에서 더욱 빛났다고 할 것이다.

「소년 케냐」에 대한 비난은 한국전쟁이후의 반동적인 정치상황속에서 꾸준하게 히스테릭한 톤을 높였다. 현 시점에서 본다면 통속적이며 보수적인 사상은 지적할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문제로 삼을 정도의 것은 아니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야기를 계속해 보자.

『일본독서신문』 55년 6월 20일호의 기사「소년 케냐를 검토한다」도, 이 작품을 극히 비판적으로 취급하고 있다. 다음 장에서 상세하게 살펴 볼 「악서추방운동」의 전성기였으므로 그 논조도 극히 엄한 것이었다. 여기서는 「사상의 옛스러움」이나 주인공의 「지성의 결여」가 철저하게 비판되고 있다.

말하자면, 「먼저 첫째로 "지성의 결여"가 최대의 결점으로써 지적된다」「지능은 너무 낮다」이야기의 전개도 대충대충이며 「이들의 정의나 우애는 "인협적"이며, 우정도 "인정적"이다. 용기조차도 "다치가와문고적"」이라고 한다. 더구나 동물들의 생활이 그려지지 않으며, 동물들을 모두 적으로써 제한해 그리고 있으며 현지인을 야만인으로써 그리는 편견조차도 내재하고 있다. 이 기사는 사카모토 이찌로의 분석을 바탕으로, 管忠道 이하 6명의 평론가와 편집부가 정리한 것이라고 하지만, 다른 기사와 비교해 보면 대단히 신랄하다. 앞서의 滑川의 비판보다도 깊이 파고 들어갔으며 구체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

계속해서 鴻巢良雄은 「문학교육과 아동읽을거리」(『독서지도강좌 9 아동읽을거리와 독서지도』 55년 12월 마끼서점)에서, 이 그림이야기의 사건이 돌발적이며 병렬적으로써 주제의 흐름이 없으며, 「이야기의 논리성이나 사고성은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하며, 노무라 준조는 「그림이야기 『소년 케냐』를 둘러싸고」(『독자지도의 전개』56년 5월 마끼서점)에서 키플링의 「정글북」과 비교한 「소년 케냐」의 독서지도 예를 보고하고 있다. 거기다 『일본독서신문』지상의 분석을 담당한 사카모토 이치로는 「아동 읽을거리의 연구 - 「소년 케냐」에 대한 話根分析의 시도-」(『독서과학』제1권 1호 56년 10월)에서 철저하게 그 후진성을 분석한다. 사카모토는 9항목의 결론을 내고 있다. 순서대로 살펴보면 1. 이야기의 종결이 짧으며, 2. 나열적이고, 3. 유형적이다. 4. 사건의 문제제기가 수난색을 띄고, 5. 그 해결이 반격이나 도피이며, 6. 거기에 지성이 결여되어 있다. 또한 등장인물은 7. 유형화 되어 있으며, 8. 낡은 사상이 넘치며, 9. 전후의 대중문화의 경향을 반영하고 있다고 한다.

이상, 약간 나열적으로 소개한 감은 있지만, 그 대부분의 비난의 상태를 알 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 이런 비난의 목소리는 「소년 케냐」가 별로 인기를 얻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이상할 정도의 인기에 맞춰진 거부반응이었다. 그런 논평에 납득가는 부분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왜 인기가 있었는가 하는 방향으로 발전되지 못하고, 오히려 부정적인 요소의 지적에 그치고 말았다는 사실이 유감이라면 유감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나서 30년 정도 후, 야마카와의 작품은 또다시 붐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였다. 83년에 카도카와 서점이 야마카와 작품중 몇 가지를 문고에 넣고, 「소년 케냐」를 애니메이션으로 극장 공개한다. 그러나, 아니메판 「소년 케냐」는 경쟁작품에 잠식되고 만다. 마침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니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같은 시기에 극장에 개봉되고, 그 쪽이 월등한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감독인 미야자키 하야오도 어린 시절 그림이야기를 보고 성장했다고 한다. 그림이야기의 영향하에 창작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생각해 본다면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덧붙이자면, 만화, 그림이야기는 유행의 변화가 격렬하다. 그림이나 형식 그 자체는 금방 퇴색해 버린다. 문학이나 영화이상으로 심한 것이다. 아니메 공개의 20년 정도 전에, 『가로』의 창간에 자극받아 야마카와도 『WILD』라고 하는 그림이야기 전문지를 창간한 적이 있다. 그러나, 채 발행도 못해보고 휴간하게 된다. 시대는 이미 그림이야기를 내버려 둔 채 큰 전환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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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에 태어나 90년대를 성장해 2000년대를 살고 있다. 사회학과 정치학을 전공했지만, 스스로를 역사학도라고 생각한다. 면식과 만화 수다와 어린이를 좋아한다.


  1. 전후만화50년사, 제1장 패전과 만화출판

    제1장 빨간책 만화의 출판 패전과 만화출판 1945년의 패전의 시점을 경계로, 일본은 큰 방향전환을 했다. 정치경제는 문론, 대중문화도 급속하게 변모했다. 미국에서 전혀 새로운 문화와 생활습관이 이입되어, 지금까지 전쟁에서 심신과 함께 피폐했던 대중의 생활에 급속하게 침투했다고 보인다. 여성의 패션을 중심으로 ...
    Date2007.11.21 Category번역 Reply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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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전후만화50년사, 목차

    잠깐 시간을 내어 적어둠. 번역어 선택의 기준 같은 것은 없음. ㅡ.ㅡ;; ----------------------------------------- 목차 시작하며 3 제1장 딱지본 만화의 출판 패전과 만화출판 11 어린이 만화잡지의 창간 13 딱지본 만화 출판통제 18 딱지본 만화의 정점 24 딱지본 만화의 출판실태 28 그 후의 전개 30 제2장 월간지와 ...
    Date2007.11.13 Category번역 Reply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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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다케우치 오사무 [전후만화50년사] 서문

    최근 읽고 있는 책. 재미는 있는데 일본어가 안되니 아주 답답하다. 공부하는 셈 치고 책의 서문을 해석해 보았다. 틀린 해석을 지적하면 할 말은 없는데, 어차피 이 책의 다른 번역문을 가지고 있으니 해석상의 지적은 별 영양가가 없을 것이다. 몇가지 이해 안되는 표현 때문에 좀 해맸다.(그 부분들은 여기서도 잘 처리...
    Date2007.11.12 Category번역 Reply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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