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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미즈 겐로, 라멘의 사회생활

posted Apr 18,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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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어릴 적에 라면은 구공탄에 끓여야 제 맛이라고 노래 불렀다. 아기공룡 둘리의 애니매이션이 방영 된 것이 1987년부터였으니까 이 노래는 87년 당시 라면에 대한 일상적 풍경을 담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노래를 좋아했던 나 부터가 구공탄이라는 물건을 본 적이 없다. 엄마에게 물어보니 ‘구공탄’은 ‘구멍이 9개 달린 연탄’이라고 한다. 내가 기억하는 연탄은 모두 22공탄이었다. 2005년에 강원도 전방으로 군대를 가서 처음으로 31공탄이라는 것을 보게 되었다. 

 

연탄불에 라면을 끓여먹은 기억도 없다. 87년 이전으로 거슬러 가보면 라면이 아주 싼 음식은 아니었다. 국수라던가 수제비라던가 더 저렴하게 배를 채울 수 있는 음식은 많았다. 1986년이 되자 집에 있던 석유 곤로를 없애고 가스레인지라는 신문물을 들여놓았다. 95년까지 연탄으로 난방을 했지만 그 열기로 무언가를 조리하지는 않았다.

 

다만 둘리의 원작 자체는 박근혜씨가 발행하던 보물섬에서 83부터 연재를 시작했다. 그 당시의 풍경이라면 구공탄이라는 것이 있었을지도 모르고, 사람들은 거기에 라면을 끓여먹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30년이 지났다. 2017년 현재, 육영재단 이사장 박근혜씨는 감옥에 있고, 아무도 라면을 연탄불에 끓여먹지 않는다. 라면에 대한 우리의 풍경과 인식은 많이 바뀌었다. 확실한 것은 어느 순간 라면이 한국인의 소울푸드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라면을 한국에 전해준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라멘이 한국의 라면과 얼마나 다른지에 대해서는 굳이 부언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하야미즈 겐로가[速水健朗] 쓴 <라멘의 사회생활>[ラーメンと愛国]은 라멘으로 본 일본의 식문화사라고 할 수 있다. 라멘이라는 식량의 공급과 생산 소비를 다룬다는 점에서 이는 단순한 음식문화가 아닌 산업과 사회구조 전반을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전반부는 인스탄트라멘의 개발자인 안도 모모후쿠 후반부는 일본 수상이었던 타나카 가쿠에이를 중심므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2.

 

역서의 제목은 <라멘의 사회생활>이지만 원제는 <라멘과 애국>이다. 역서는 사회사라는 성격이 강조되고 있지만 원제는 내셔널리즘과의 관계가 더 도드라진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애국이라는 단어에서 상상되는 일본의 군국주의나 우익에 대해 서술하는 책은 아니다. 아직도 왜 제목이 라멘과 애국인지 모르겠다. 무언가의 패러디 같은데 확실하지는 않다.(오구마 에이지의 민주와 애국, 야스다 코이치의 네트와 애국 등의 책이 있다.) 그러나 ‘사회생활’이라는 한국어판의 제목도 적절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3.

 

라멘의 기원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책에서 제시하는 가설은 이렇다. 일단 중국에서 다양한 경로로 면요리가 넘어왔음을 전제한다. 남부지역의 면요리는 큐슈의 지나소바와 오키나와소바로 들어왔다. 북부지방의 면요리는 홋카이도를 통해 들어왔고 여기에 라멘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라멘은 원래 수타면을 뜻하는 拉面을 발음한 것으로 당시 중국인 요리사가 무슨 요리냐는 질문을 잘못 알아듣고 면 종류를 말한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추측된다.

 

저자의 추측은 일단 중국요리는 결코 단일한 하나의 세계가 아니며 이에 대한 전파경로로 단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라멘은 두 개의 전혀 다른 루트로 일본에 전파되었다. 이것이 전국화 된 것은 한국 전쟁이후 일본이 먹고 살만해진 쇼와 30년대 이후의 일이다. 이때 여행 안내잡지등을 통해 삿포로라멘이 인기를 끌고 안도 모모후쿠가 치킨라멘을 히트시키면서 중국식 면요리의 이름에서 츄카소바는 밀려나고 정체불명의 ‘라멘’이 자리잡게 되었다.

 

어쨌든 중국을 기원으로 하는 이 일본음식은 어떻게 해서 지극히 일본적인 음식이 되었을까. 이것이 책을 관통하는 하나의 질문이다.

 

4.

 

시작은 쌀부족이었다. 어쨌든 일본은 전쟁을 했고, 쌀이 모자랐다. 오큐파이 니폰도 어쩔 수 없었다. 반면 밋쿡은 전쟁을 위한 과잉 곡물생산으로 밀이 넘쳤다. 전쟁이 끝났으니 이 밀을 어떻게 처리할지가 문제였다. 일단 구호단체등을 통해서 일본에 밀이 들어왔다. 이렇게 들어온 밀을 주로 암시장에서 중화소바나 우동으로 팔려나갔다. 쌀보다는 구하기 쉬운 음식이었다.

 

그러나 식량 생산과 공급의 불균형은 이정도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미국은 마셜 플랜을 통해 유럽에 밀을 원조했다. 사람은 제대로 먹고 살지 못하면 소련 같은거나 좋아할게 뻔하기 때문이다. 몇 년간 미국산 밀가루를 먹고 건강해진 유럽인들은 농업부흥에 성공했다. 미국산 밀을 새로운 판매처가 필요했다. 여전히 쫄졸 굶고 있는 일본에 눈이 돌아갔다.

 

아이젠하워는 PL480법, 통칭 잉여 농산물 처리법을 시행했다. 내용은 이렇다. 일단 미국산 밀을 개발도상국에 왕창 싸게 판다. 그러나 개발도상국은 그마저도 지불할 돈이 없다. 그래서 미국은 돈은 당장 안받아도 된다면서, 일단 밀을 넘기고 장기차관을 받았다. 밀을 받은 개발도상국은 자국민에게 밀을 팔아서 그것으로 차츰 경제를 부흥시켜 미국에 빚을 갚는다는 것이 PL480법의 골자다. 

 

잉여농산물처리법은 일본을 시작으로 이태리, 유고, 터키, 파키스탄, 한국, 대만등에 미쿡 밀가루를 넘기게 되었다. 한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두가 알 것이다. 정부는 쌀을 악마화 했으며 밀가루음식을 강제했다. 한국인들은 수재비와 짜장면, 그리고 밀가루 떡볶이을 먹게 되었다. 그리고 원조받은 밀가루 유통권을 배경으로 쌤쑹이라는 대기업 집단이 등장했다.

 

일본은 어땠을까. 짐작하는 대로다. 쌀밥에 야마토민족의 혼이 담겨있다고 믿었던 일본도 밀가루 공세에 무너질 수 밖에 없었다. 

 

재밌는 것은 쌀에 대한 일본의 집착이 한국의 농업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일본은 메이지시기(19세기말) 홋카이도 개척으로 넓은 땅을 얻었지만 여기는 당연히 아열대 작물인 쌀을 재배할 수 없었다. 일본은 각고의 노력 끝에 亞寒帶에서도 생육 가능한 쌀 품종을 만들어냈다. 저자는 식민지 이전 조선의 농업은 살로 획일화되지는 않았다고 주장한다. 쌀농사가 천하지대본이 된 것은 창씨개명, 일본어교육과 함께 황민화 정책이라는 것이다. 이 부분은 한국의 사회사 연구를 토대로 교차 검증을 해보아야 할 것 같다. 저자의 주장이 맞다면 밥심으로 산다는 한국인의 이데올로기는 상당부분 일본의 영향에 따른 것이다. 산미증산계획등으로 일본에 대량으로 곡물을 유출해간 점(무작정 수탈이라고 하기에는 복잡하다.), 식민지 시기 농촌을 다루는 소설에서 쌀밥 먹는 장면이 흔치 않고 감자나 고구마를 먹는 장면이 의외로 많다는 점을 보았을 때 의외로 납득 가능한 이야기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교차 검증이 필요하다.

 

다시 돌아와서. 미국산 밀 대금에는 ‘분식 장려비’도 포함되어 있었다. 쌀밥만 먹고 살던 채식동물 일본인에게 드디어 미국발 플라워 인베이젼이 시작된 것이다. 일본이 미국에 진 것은 쌀밥만 먹어 체격과 체력이 딸려서 그렇다는 인식이 퍼져나갔다. 벼농사 민족주의는 식량난과 미제의 압력 앞에 순식간에 허물어져버렸다.

 

그렇다면 밀가루를 어떻게 먹으면 될까. 빵을 먹는 것은 너무 급진적이었다. 결국 일본인은 원래부터 존재하면 국수라는 형태로 타협을 보게 된다. 나폴리탄 스파게티와 라멘이 그 결과였다.

 

5.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일본인을 지배하는 전쟁관은 한방주의다. 부족한 생산성을 장인정신으로 극복한다는 것이다. 적들이 자쿠를 마쿠마쿠 찍어내도 우리에겐 템 레이가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만들어 그의 아들 아무로 레이가 이키마스 하는 하얀 악마 한 마리면 어떻게든 역전 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천조국은 달랐다. 셔먼을 만들어서 그냥 많이 만들어 냈을 뿐이다. 천조국의 생산력 앞에 니뽄의 신바람[神風]은 거짓말 처럼 멈추었다. 그 배경에는 표준화와 대량생산을 앞세운 포드주의가 있었다.

 

전후 일본에는 미국식의 생산체계가 급진적으로 도입되었다. 그 결과중 하나가 대량 생산되어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 인스탄트 라멘의 탄생이었다. 

 

6.

 

라멘은 일본 음식이다. 그러나 일본의 전통음식은 아니다. 일본의 각 지방마다 유명한 라멘이 있지만 그 라멘들이 지역의 특산물을 식재료로 하는 향토 음식인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를테면 나는 후쿠오카에서 살았는데, 그곳은 돈코츠라멘의 하나인 하카타라멘으로 유명하다. 돼지뼈는 큐슈지역의 대부분이 라멘 육수의 베이스로 쓰는 재료다. 그러나 큐슈지역이 특별히 더 돼지가 맛있거나 원래부터 돼지를 많이 치던 곳은 아니다. 굳이 파고들면 예전부터 나가사키등을 중심으로 중국인이 많이 건너왔다. 이들이 먹던 찬퐁이 큐슈의 돈코츠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으리라 추측된다. 원래 이 지역에서 먹던 중화면의 이름이 난킹[南京]소바였다는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앞서 라면의 또 다른 기원으로 홋카이도가 언급되었는데, 이 동네의 라멘은 지금과 달리 닭 뼈와 소금으로 맛을 냈다고 한다.

 

라멘이 각 지역의 향토음식을 밀어낸 것은 1950년대 이후의 일이다. 다나카 가쿠에이로 상징되는 전후의 공공사업은 도심과 지방을 빠른 속도로 이어버렸다. 마이카 시대가 열렸고, 관광붐이 일었으며 지방은 특색을 잃어갔다. 

 

매스콤의 발달도 한 몫했다. 삿포로, 후쿠오카, 기타카타등의 지방이 라멘의 특산지로 발굴되었고, 각 지방의 음식점들은 라멘집들로 바뀌며 맥도날드화 되었다.

 

7. 

 

라멘은 등장과 함께 빠르게 서민의 소울푸드가 되었다. 여기서 질문 하나. 왜 안도 모모후쿠는 우동이 아닌 라멘을 선택했을까. 저자는 안도가 타이완 출신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아무래도 중국 음식이 익숙한 안도가 우동보다는 라멘에 친근감을 느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오랫동안 일본에서 라멘은 현대화된 주오하면, 중국음식이었다. 지금도 일본의 중국집에서 라멘은 챠항(볶음밥), 마보도후와 함께 주력 메뉴중 하나다. 물론 여기서 먹는 라멘은 홍대에서 먹는 라멘과는 미묘하게 다르다. 라멘은 빠르게 변했다. 쇼지 사다오는 자신이 라멘을 50년 넘게 먹어오면서 라멘의 고명으로 어묵과 시금치가 사라지고 김과 아지타마고(일본식 삶은 달걀)이 등장했다고 이야기 한 적이 있다. 간장, 소금, 된장으로 분류되던 라멘은 돈코츠교카이(돼지뼈와 어패류), 소유돈코츠(간장과 돼지뼈), 츠케멘(찍어먹는 것)이 대세가 되었다.

 

8.

 

70년대가 되자 퇴직자들을 중심으로 라멘 프렌차이즈가 등장한다. 어제까지 셀러리맨이었던 사람이 갑자기 요리사가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00라면 00점주가 되는 것은 가능했다. 라멘의 프랜차이즈 비즈니스는 이런 명예퇴직 풍조와 함께 성장했다. 

 

80년대가 되면 라멘은 완전에 자리를 잡은 것 같다. 85년에는 그 유명한 영화 담포포가 개봉했다. 여주인공이 라멘을 배우는 과정은 마치 소림사의 이연걸 같은 구도의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상상의 미각 공동체(메네딕트 엔더슨)인 라멘의 공동체는 빠르게 만들어진 전통(에릭 홉스봄)을 발명해내기 시작했다. 우선 중국의 냄새가 사라지기 시작하고 일본의 선불교적인 문화가 침투하기 시작했다. 중국풍의 붉은 색 노렌와 주방의 흰 옷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노랜의 색은 남색으로 바뀌고 주방 직원들은 선승들이 입던 사무에[作務衣]를 입기 시작했다.

 

1994년 개관한 신요코하마 라멘 박물관은 그 만들어진 전통의 정점이었다. 지도에는 각지역의 ‘전통’ 라멘집들이 노포의 이름으로 소개되었다. 열도의 새로운 신화가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다나카 가쿠에이의 패러다임은 버블의 붕괴와 함께 기능 부전을 일으켰지만 관광의 시대를 잉태시켰다.

 

9.

 

걸프전과 함께 시작된 90년대는 미디어 전쟁의 시대였다. 텔레비전은 앞다투어 라멘전쟁을 보도했다. 라멘 수행을 주재로 한 리얼리티 쇼가 인기를 끌었다. 라멘은 이렇게 道의 영역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라멘을 만들기 위해 구도와 철학의 길을 걸어야 했다. 먹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라멘 지로 계열의 라멘집들이 이 열풍을 잘 반영했다. 교토에 있는 <라멘장 꿈을 이야기하라>는 가게는 나도 가본 적이 있다. 제정신으로는 도저히 먹을 수 없는 느끼한 라멘이다.(지금 먹으라면 먹을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그러나 우리가 먹는 것은 돼지뼈 육수와 밀가루면 이 아닌 주인의 철학일 뿐이다. 오늘날 한국에서 스타 쉐프가 나온 것처럼 90년대가 되면 라멘의 장인들이 매스콤을 수놓았다.

 

이 구도의 길에 슬로우푸드 운동이 양념을 더했다. 맥도날드화로 인해 만들어진 전통 라멘들은 각 지역에서 반 맥도날드화의 선봉장이 되어버렸다. 일본 메이지 시기의 슬로건인 ‘신토불이’의 부활이었다.(신토불이는 일본에서 만든 말이다. 기억해두자. 그렇다고 쓰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10.

 

라멘이 성공한 것은 본래의 모습 따위는 진작에 내던지고 끊임없이 변화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지극히 중국적이었던 이 음식은 어느새 지극히 일본적인 음식이 되고 말았다. 이 과정들은 한국의 짜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일본인이 라멘을 먹을 때. 한국인이 짜장면을 먹을 때. 이것이 중국음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만들어진 전통의 차이는 다양성에 있을 것 같다. 한국에 있는 사자표춘장이 일본에는 없을 뿐이다.

 

한국에서 라면은 어디까지나 인스턴트 라면일 뿐이다. 80년대가 되면 일본의 라멘과는 아에 다른 발전 경로를 걷게 된다. 일본의 라멘이 홍대를 중심으로 수입되었지만 양자간의 격차는 이제 너무 커서 도저히 교류가 불가능한 지경에 다다른 것 같다. 한국에서 먹는 일본 라멘 역시 일본 라멘의 변화 속도에 맞추어 멈출 수 없는 길을 걸었다. 2000년대 초반의 겐조라-멘을 기억하는가. 모두를 충격과 공포에 빠트리게 했던 그 맛을 기억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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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에 태어나 90년대에 성장해 2000년대를 살고 있다. 사회학과 정치학을 전공했지만, 스스로를 역사학도라 생각한다. 면식과 만화, 수다와 어린이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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