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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하는 자유, 전유하는 자유; 선거는 민주적인가, 버나드 마넹

posted Feb 2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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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pds19.egloos.com/pds/201109/20/58/d0027758_4e777c7e4902a.jpg

 

선거는 민주적인가, 버나드 마넹 지음, 곽준혁 옮김, 후마니타스 2004
The Principles of Representative Goverment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7

 

0.

 

원래는 이 책을 읽고 요점을 요약하는 글을 쓰려고 했다. 그러나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이를 그만두었다. 하나는 저자가 이 책의 <결론> 부분에서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훌륭하게 요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 책의 요지만을 알고 싶은 독자라면 인터넷에 있는 서평들을 뒤질 필요 없이 이 책의 <결론>을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하나의 이유는 인터넷에 여기저기 나도는 서평들 조차 책의 요약이 잘 되어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결론>에 등장하지 않는 핵심개념들을 잘 집어내고 있다. 여기에 굳이 내가 n+1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1.

 

선거는 민주적인가, 라는 이 책의 제목은 다소 도발적으로 느껴진다. 이는 선거가 민주적이지 않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만한데, 실제 내용에서도 선거는 민주적이지 않다는 이야기를 진지하게 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대 대의제는 민주정의 요소와 함께 귀족정의 요소가 결합된 혼합정체라는 것이 저자의 견해다.(일부 사람들의 오해와 달리 마넹은 혼합정체를 비판하고 있지는 않다.)

문제는 이 책의 주된 논지가 내가 읽은 것과 상당히 다르게 해석되는 경우가 많이 목격된다는 것이다. 일단 이 책은 그 자체로 선거제도를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고대 아테네의 추첨제도를 부활시키자는 책이 절대 아니다.

 

이 같은 반응은 몇몇 서평들에서 확인 될 수 있다. 이를테면 소설가 장정일의 서평을 보자
 

(...전략) 본서가 현대의 선거를 아예 한 줌의 엘리트들을 위한 “과두제적인 절차”이며 평범한 시민들의 “민주주의적인 열망을 방해”한다고 단정지은 것처럼, 투표장에 가지 않은 많은 유권자들은 당선권에 든 중요한 입후보자들의 전력이 상종 못할 범죄자와 거의 같은 유형이고, 그럼에도 유명세와 재력을 지닌 파렴치범들이 승리할 것이며, 그 게임에서 뽑힌 당선자가 민의와 겉돌 것이란 것을 너무 뻔히 안다. 그들은 ‘정치 무관심’자가 아닌 ‘선거 무관심’자들이며, ‘간접행동’ 대신 ‘직접행동’을 선택한다.
http://kr.blog.yahoo.com/bkblues95/1350788


이 보다 더욱 적극적인 해석은 프레시안에 실린 신우현의 글일 것이다.
 

(...전략) 뿐만 아니라 선거는 투표자들에게 그들이 동의한 권력자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하고 헌신할 수 있는 유인까지 제공해준다. 그 결과 민주주의는 시민의 직접 통치에서 동의로 축소되었다. 현재의 선거 제도 아래에서 언론들은 투표일을 유권자들의 축제라 치켜 올려 세우지만, 민의가 반영되지 않는 현실에서 유권자는 정권의 정당성을 보장해주는 들러리일 뿐이다.
“들러리의 축제 ‘선거’…차라리 ‘제비뽑기’를 하자”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206193817


특히 신우현의 글은 그 내용보다 제목이 더 도발적이다. 리뷰의 제목을 누가 지었는지는 모르겠다.

 

저자의 의도, 출판사의 의도, 평론가들의 의도와 관계없이 이 책이 선거의 민주정적 성격에 문제제기를 하고 추첨제를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책으로 소비되고 있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로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몇 개의 글을 참고바란다.
알라딘의 서평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106060

한겨레 서평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198632.html
문화일보 서평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1&aid=0000066975
한겨레 논술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274600.html

 

2.


나는 하나의 문헌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저자의 속뜻을 알아야 하는 것만이 올바른 해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고정불변의 ‘올바른 해석’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담론이 경쟁하듯이 해석도 각자 경쟁하며 이들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생성되거나, 도태되거나, 변질된다. 어떤 텍스트가 생성, 소비, 유통 되는 지도 중요하지만, 텍스트의 해석이 어떻게 생성, 소비, 유통, 변질 되는지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케다 리요코의 베르샤유의 장미는 때론 자코벵 혁명에 대한 찬사로, 때론 18세기 궁정문화에 대한 예찬으로 읽을 수 있다.1) 결코 급진적이지 않았던 하버트 스펜서의 사회정학(social statics, 1851)은 일본에서 1881년 <사회평권론>으로 번역되었고 이는 급진적 민권운동가들의 경전이 되었다. 이 같이 택스트는 사회적 맥락에 따라 알마든지 전유 될 수 있다. 당장 한국만 해도 70년대 네오 맑시즘 담론의 수용과 해석은 서구의 그것과 판이하게 달랐다. 똑같이 마르쿠제를 읽었지만, 프랑스의 대학생과 한국의 대학생의 삶은 판이하게 달랐던 것이다.


적어도 나의 판단에 따르면, 이 책의 주제는 원제가 그렇듯 ‘대의정부의 원칙들The Principles of Representative Goverment’이다. 마넹은 이 책을 통해 대의정부의 원칙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고, 기존 민주정의 원칙들이 어떻게 대의정의 원칙들로 교체되었는지를 차분히 서술하고 있다. 몇몇 서평들은 비판적 서술이라고 하지만, 실제 읽어보면 비판 보다는 설명의 느낌이 강하다.  그리고 책의 후반부에서는 근대 대의정부의 원칙들이 어떤 변화를 맞이했는가도 서술하고 있다. 마넹은 이 책을 통해 근대 대의제 정부를 시기상 세 부분으로 나누고 있다. 의회정치, 정당 민주주의, 청중민주주의, 가 그것이다. 특히 청중민주주의에 대한 견해는 매우 흥미로운 논점이긴 하지만 너무 간략하게 서술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어떤 이유에선지 출판사는 마치 저자가 선거제도를 민주적이지 않다고 간주한 듯한 뉘앙스의 제목을 역서의 제목으로 선택했고(여기서 길게 논할 수는 없지만, 나는 출판사가 상업적인건 전혀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몇몇 평론가들 역시 이 책이 그런 의도로 쓰여진 것처럼 자극적인 서평을 내놓았다.
 
그러나 앞서 예로 든 서평들이 근본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서평을 조금만 꼼곰히 읽으면 대부분의 서평들이 저자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점들을 잘 집어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어디에 강조점을 주고 있는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이 같은 해석들이 선거가 과연 민주적인가, 라는 문제 설정에는 적합할지 모르나, 저자의 의도가 제대로 설명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선적으로 이 책의 원제가 <대의 정부의 원칙들>이라는 점에서 유추 할 수 있다. 이 책은 원제에서 알 수 있듯이 기본적으로 선거가 민주적인지 아닌지를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것이 아니라 대의 정부의 원칙들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무엇과 경쟁해왔으며,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추적하는 것이 저자의 의도로 보인다. 다른 하나의 논거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보여진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2)
 

(전략...)한국 독자들이 이 책을 읽는 다는 것은 내게는 매우 기쁜 일이다. 한국은 1987년 이후 제대로 된 대의 민주주의를 경험하고, 특히 자유롭게 정부를 임명하고 면직시킴으로서 얻게 되는 혜택을 누리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대의제도들은 유럽과 미국의 특수한 상황에서 고안된 것이기는 하지만, 보편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시민들이 통치자를 자유롭게 선택 할 수 있고 임기가 끝나는 시점에서 책임을 묻는 것이 자유로울 때, 세계어디에서나 그 정부는 보다 낫고, 보다 인간미 넘치고, 보다 이성적인 정부가 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한국은 인류의 역사에서 이를 증명한 또 하나의 중요한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의제는 우리가 이 단어를 처음 접하는 순간 생각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아직까지도 대의제가 실제 어떻게 운용되고 있는지에 대한 이해는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이는 대의제가 오랫동안 기능하고 있는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책의 목적은 대의 정부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는 것이다. 대의 민주주의의 혜택과 복잡성을 동시에 체득해가고 있는 한국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논쟁과 성찰에 이 책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실제로 저자인 마넹은 직접민주주의자, 참여민주주의, 급진민주주의자라기 보다는 숙의민주주의자에 가깝다. 숙의민주주의(deliberation democracy)는 민주주의에서 참여의 양적 확대 보다 질적 성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치사상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숙의민주주의의 기본적 성격만 파악해도 마넹이 사람들의 생각(혹은 기대)과 달리 고대 아테네 민주정을 긍정하고, 대의정을 비판한다는 해석은 성립하기 어렵다.
 

3.

 

결국 나의 생각은 마넹의 속생각이 무엇인가, 라기 보다는 왜 한국에서 마넹의 연구가 대의민주정에 대한 비판으로, 직접민주정에 대한 긍정적 찬양으로 읽혀지는가로 옮겨지게 된다. 짧게 말하면 무엇이 한국에서 마넹의 텍스트를 전유시키고 있는가, 라고 바꿀 수 있다.
 
함부로 추측하자면, 이는 현대정치학을 주로 소비하고 대중에게 소개하는 한국의 진보적 엘리트층3)에서 한국의 대의제에 대한 불신과 실망이 팽배한 것에 대한 반증이 아닐까 추측된다.
 
마넹이 <한국어판 서문>에서 기대했던 바와 달리 한국의 대의제는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대의제에 대한 불신은 엘리트층의 전유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인민이 대의제에 대해 빠르게 실망과 불신을 나타내고 있다는 정황은 여러 가지로 포착가능한다. 간단하게 투표율의 변화를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한국은 인민들이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적어도 한국인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87년 이후의 투표율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는 두가지의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실제로 한국 사회에서 정치에 대한 관심이 빠르게 하락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 해석은 한국 사회에서 인민이 정치에 대해 가지는 관심은 여전히 높으나 이것이 (어떤 이유에서든)투표로 연결되지 못하고 정치에 대한 관심은 다른 쪽으로 분출4)되고 있다는 것이다. 둘 중 어느 쪽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한 해석인지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도록 한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한국의 인민들이 정치에 대해 관심이 있든 없든 간에 선거-대의정에 대한 관심과 열성이 빠른 속도로 하락했다는 것은 유추 가능하다.

 
여기서 간략하게 정치에 비교적 관심이 덜한 것으로 (적어도 한국인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알려져 있는 일본의 사례를 비교해보도록 하자. 다음의 그래프는 정치적 관심이 한국에 비해 월등히 낮은 것으로 알려진 일본의 국회의원 선거 투표율이다.


 
시간상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의 투표율 추이를 소개하지 못함을 아쉽게 생각한다(이거 입력하고 그래프 그리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 헉헉). 예상과 달리 일본의 국회의원 선거 투표율은 한국의 그것보다 높으며, 그 하락의 기울기도 한국보다 완만하다. 이를 통해 앞서 말한 ‘한국에서 인민들이 대의정부에 가지는 기대와 신뢰는 빠른 속도로 하락했다’는 추측은 어느정도 성립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 다른 자료들을 보강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극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는 1987년 6월 항쟁이 인민에 의해 선출된 정부의 구성, 즉 행정부 수반의 직접선출이라는 의지로 분출되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상당히 아이러니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 같이 한국의 대의정에 대한 인민의 기대와 신뢰가 하락한 요인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그 자체로 중요한 연구 테마가 될 것이다.(즉 여기서 주절주절 하고 싶지 않다는 뜻.)
 
이 같은 추이는 단순이 인민 전체의 의사만은 아닐 것이다. 한국의 엘리트층 역시 대의제에 대한 기대가 높지 못하다는 사실을 포착하는 것이 가능하다.
 
우선 그 의지가 정당으로 모아지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한국의 급진적 엘리트 층은 선거에 따라 보수야당후보지지, 독자후보론 등으로 격렬히 대립하기는 했지만, 그 에네르기가 안정적인 좌파정당으로 모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국은 서유럽은 물론 한국과 비슷한 시기에 민주화를 경험한 다른 나라들에 비해 진보정당의 성립이 늦었으며, 건설된 진보정당의 기반 역시 대단히 취약하다.
 
이는 현재 한국의 진보적 엘리트층이 대의정부의 구성, 혹은 정부에 대한 참여(연정)를 통해 정치권력을 획득하는 전술에 호의적이지 않다는 점을 입증한다. 이는 실제 한국의 진보정당내의 담론 구조를 보아도 알 수 있다. 한국의 진보정당은 서유럽의 그것과 달리 대의제(소위 부르주아민주주의)에 대한 상당한 회의를 가지고 있으며 운동사회의 에네르기는 탈정치의 형태로 표출되어왔다. 시민운동이 엘리트에 의한 의지의 조직적 분출이라면, 촛불시위는 민중에 의한 열정의 분출일 것이다.
   
이는 단순히 급진적 엘리트의 문제만은 아니다. 실제로 진보정당에 기반이 되는 노동계급 역시 정당에 대한 기대치는 매우 낮다고 할 수 있다. 일례로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결합도는 서구의 그것과 달리 현저하게 낮다고 볼 수 있다. 중도파 엘리트층 또한 그 사회참여의 에너지가 정당으로 결집되기 보다는 후보자 개인에게 모아지거나 시민운동과 같은 형태로 표출되었다.
 
한국의 대의제에 대해 인민과 엘리트 모두 신뢰하지 못한 오늘의 상황이 애초부터 정당과 대의제에 대해 강력한 신뢰를 보내지 못한데서 나타난 결과인지, 한국의 정당과 대의제가 지극히 실망적이라서 인민과 엘리트가 지지를 철회한 것인지, 이 글에서는 논외로 한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진보적 엘리트들은 대의제를 매력적이지 못한 제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이것이 마넹의 책이 대의제에 대한 강력한 비판으로 전유된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이 점을 들어 한국의 엘리트 들이 멍청이라거나, 책을 제대로 이해 못했다고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텍스트를 받아들이는 사람,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전유 될 수 있다.
 

4.

 

그러나 마넹의 연구에 대한 이 같은 전유가 한국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에 대해서 나는 약간 회의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한국은 1987년 이후, 민주주의 그중에서도 대의정에 대해 진지한 고민과 논쟁이 시민사회에서 공유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는 이 맥락에서 발생했던 약간의 촌극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시민사회 일반이 아닌 정당 내부에서 유통되었을 뿐이었다. 이 책의 번역과 소개가 반가우면서도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과장된 표현을 써도 좋다면, 이 같은 전유과정은 하나의 함수로 설명 가능 할 것 이다.

 

xy=0

x는 변수

y는 자연수 0

 

이런식의 사고 구조를 가지면 변수 x값에 무엇을 입력해도 같은 결과가 나올 수 밖에 없다. 숙의민주주의자의 연구는 이렇게 대의제 회의론으로 둔갑해 버린다.

 

글의 앞부분에서 몇개의 서평을 인용했는데, 마지막으로 녹색평론에 개제된 하승우의 코멘트를 옮겨보고자 한다(앞서 언급한 글들과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길게 느껴진다면 강조 처리한 부분만 보아도 무방하다.

 

베르나르 마넹(B. Manin)은 『선거는 민주적인가』(후마니타스, 2004)에서 “대의정부와 직접민주주의의 주요한 차이를 밝히려 한다면, 선거의 효과와 추첨의 효과를 비교해 보아야 한다”고 얘기한다. (중략)

마넹은 민주주의의 원리란 “민중이 통치자이자 피통치자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시민이 이 두 위치를 번갈아 가며 차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어느 날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 그 전에는 명령에 복종했던 사람이라면, 권력을 가진 사람이 어떤 결정을 내릴 때, 그 결정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될 인민의 입장을 참작하여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에서 다스리는 자는 나와 근본적으로 다른 뛰어난 인물, 추종해야 할 인물이 아니라 동등하고 평등한 시민이었다. 그러니 동등하게 얘기하고 자신의 권리를 내세울 수 있었다.(중략)

일본의 철학자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도 『트랜스크리틱』(한길사, 2005)에서 “선거를 부패시키지 않기 위해 또 상대적으로 뛰어난 대표자를 뽑기 위해” 제비뽑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진은 제비뽑기와 선거방식을 결합해서 무기명 투표로 세 명을 뽑고 그 중에서 대표자를 제비뽑기로 선출하는 방식이 가장 민주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럴 경우 파벌대립이나 후계자 싸움이 무의미해지고 상대적으로 우수한 대표자가 선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추첨을 통과한 사람은 자신의 힘을 과시할 수가 없으며, 추첨에 떨어진 사람도 대표자에 대한 협력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 이러한 정치적 기술은 ‘모든 권력은 타락한다’는 진부한 성찰과 달리 실제로 효력을 발휘한다. 이렇게 이용될 때 제비뽑기는 장기적으로 보아 권력을 고정화시키지 않고 우수한 경영자, 지도자를 선출하는 방법이다.”

마넹과 가라타니의 말을 따른다면, 선거는 비민주적이고 야만적인 방식이다. 선거는 대중이 무능하고 전문가가 정치를 맡아야 한다고 전제하기 때문에 비민주적이다. 그리고 선거에서는 자기 사람에게 권력을 몰아주기 위해 갖은 술수와 흑색선전, 매수 등이 남발된다는 점에서 야만적이다. 이런 야만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http://blog.grasslog.net/archive/300

 

이쯤 되면 이게 전유인지, 또 하나의 창작인지 의심스럽지만, 스스로 그렇게 해석하고 싶다는 일차함수적 의지를 꺽을 필요는 없다. 다만 위 글에서 내가 강조 처리한 마넹의 주장들은 실제 마넹의 주장이 아니라 마넹이 추측한 아테네민주주의자들의 생각이다(물론 마넹이 추적했던 아테네인들도 선거를 야만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내가 판단'하기에 이 책을 통한 마넹의 공헌은 선거는 반민주적이고 야만적이라는 주장이 아니다. 마넹은 책의 초반부에서 1) 고대 아테네 민주정의 핵심은 민회가 아니라 추첨제다. 2) 추첨제를 주요한 통치제도로 삼았던 이유는 관직에 오를 수 있는 확률의 평등을 민주주의의 주요한 가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도이다. 물론 이는 책의 1장에서 다루는 내용이고 그 이후는 왜 이런 민주주의 원리가 대의제로 교체되었는지 등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책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논의 중 하나인 추첨제와 대의제에 대한 논의는 다음 기회에 따로 정리해 올릴 생각이다. 어찌되었든 나는 추첨제에 대한 정치적 견해를 밝힌 바 있고, 이에 대해 뒤늦게라도 견해를 정리해서 보일 책임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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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명한 다카라즈카 극단의 베르사이유의 장미는 이런 식으로 두편으로 나뉘어 따로 공연된다.

2) 실제로 읽어보면 그렇지 않다, 고 쓰고 싶으나 다른 리뷰들도 나와 똑같이 책을 읽은 사람들일 것이다. 따라서 이런 주장을 할 자신이 없다.

3) 이 글에서 엘리트는 어디까지나 진보적 엘리트만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하도록 한다. 운동권, 이라는 용어로 이들 집단을 포괄하여 설명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확한 용어는 아니다. 대체할 다른 단어가 있으면 알려주시길... ㅡ.ㅡ;;

4) 혹은 누수, 이를테면 타블로 사태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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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에 태어나 90년대를 성장해 2000년대를 살고 있다. 사회학과 정치학을 전공했지만, 스스로를 역사학도라고 생각한다. 면식과 만화 수다와 어린이를 좋아한다.

  • ?
    dalwoo 2011.06.04 01:29

     서평 잘 봤습니다.  마넹의 이 책은 적잖은 오해(?)를 받고 있지요. 저도 추천을 받고 집어들었다가 다 읽은 후 당혹감을 느낀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추천의 이유, 혹은 제목과는 달리 책 주제는 직접민주정 보다는 대의 민주정에 대한 엄밀한 분석에 가깝더군요. 물론 아테네 민주정을 기술하고 선거제의 속성을 분석하는 부분은 일정 부분 현대 대의민주정에 대한 비판 근거로 사용될 수 있겠습니다만..  마넹이 최종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대의 민주정의 정의라는 점을 생각해보자면 '선거란 무엇인가'는 사실 옳은 제목이 아닌 것 같습니다.

  • profile
    건더기 2011.06.04 12:49

    후마니타스-박상훈이 만악의 근원입니다!!!

    만약 위 책으로 현대 대의민주정을 비판한다면, 그야말로 공부를 안했다는 반증밖에 안되겠지요.

  • ?
    쿨쿨 2011.06.14 10:54

    나도 왜 이책이 추첨제 물타기의 근거로 쓰이는지 좀 황당하게 느꼈었는데.. 

    잘 읽었어 .. 

  • profile
    건더기 2011.06.14 14:01

    남조선 좌파들이 가지는 대의제에 대한 불신은 사실상 종교적 열정인지라, 무슨 책을 던져주어도 그렇게 해석할 듯. '빌어먹을 공룡' 이야기는 한줄도 안나오는게 성경인데,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통해 공룡의 존재를 해명하잖아.

  • ?
    학생 2012.03.30 21:09

    서평 잘 읽었습니다. 본문에는 다 동의하나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점은 위 댓글 중 "후마니타스-박상훈이 (...) 반증밖에 안되겠지요."에 대한 것이에요. 아마도 농담으로 하신 말씀이겠지만 혹시나 정말로 그렇게 의심하고 계신 경우에 대비해서 간략히 코멘트 남겨두어요. 박상훈 씨는 오히려 대의민주정을 비판하는 것과는 다소 반대되는 견해를 가지고 있어요. 그가 쓴 저서들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대의제를 옹호하는 샤츠슈나이더의 의견에 적극 동의하고 제도 정치의 중요성을 말하는 최장집 교수와 비슷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어요. 또 본인 스스로도 정당 정치에 대한 관심을 매우 공공연히 표하기도 했구요. 사실 그래서 저도 이 책이 발간되었을 때, '후마니타스에서 대의제를 비판하기도 하는구나'하고 다소 신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읽어보니 그런 것은 아니더군요. / 건더기님의 글 잘 읽고 갑니다. 종종 와서 다른 글들도 읽어보고 가야겠습니다.

  • profile
    건더기 2012.04.01 03:49
    이 홈페이지의 다른 글들로 답변을 대신해도 될것 같습니다.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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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No Image

    홈스봄 <자본의 시대> 요약

    2004년경에 쓴 글임. 다른게시판에 10년전에 올렸던게 제대로 출력이 안되어서 다시 올려봄. 자본의 시대 1848~1875 에릭 홉스봄 요약 1부 혁명의 서막 1장 여러 국민들의 봄 1. 1848년 혁명은 최초의 본격적인 세계혁명이자 마지막 세계혁명이었다. 가장 광범위하게 파급된 혁명이었으나 가장 실패한 혁명이었다. 혁명으로 ...
    Date2016.10.15 Category책읽기 Reply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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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김경일, 한자의 역사를 따라 걷다

    김경일, <한자의 역사를 따라 걷다> <나는 동양사상을 믿지 않는다>, <갑골문 이야기>에 이어 본 책. 갑골문 전공자이긴 하지만 이 책은 갑골문 이후를 다룬 다는 점에서 저자가 중국 문화 전반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해 잘 알수 있는 책이다. 다만 기초적인 오기가 눈에 보인다. 왕희지를 황희지로 적은 것은 그저 오기...
    Date2014.06.30 Category책읽기 Reply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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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타니구치 지로, 열네살

    타임슬립이라는 소재는 H. G. 웰스의 등장이후 100년이라 우려먹은 식상한 소재다. 보통 이런 소재를 다룬 작품들은 "어떻게 이런일이 일어날 수 있지?"라는 의문보다는, 주인공이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 나갈것인가'에 방점을 찍고 보게 된다. 다니구치 지로의 <열네살>도 그중 하나다. 도쿄의 회사원이 기차를...
    Date2013.02.11 Category책읽기 Reply0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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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세스, 약해지지만 않는다면 괜찮은 인생이야

    언젠가부터 망가아닌 만화가 한국에 수입되기 시작했다. 양장본의 프랑스 만화들이 간혈적으로 들어온 것이 90년대 중반 즈음으로 기억된다. 다크나이트나 300의 영향일까, 어느새 미국의 D.C, 마블의 그래빅 노블들도 볼 수 있게 되었다. 테즈카 오사무의 고전들도 꽤 들어왔다. 그리고 어느새 영미권의 언더그라운드 만화...
    Date2013.01.28 Category책읽기 Reply0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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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상상하는 자유, 전유하는 자유; 선거는 민주적인가, 버나드 마넹

    선거는 민주적인가, 버나드 마넹 지음, 곽준혁 옮김, 후마니타스 2004 The Principles of Representative Goverment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7 0. 원래는 이 책을 읽고 요점을 요약하는 글을 쓰려고 했다. 그러나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이를 그만두었다. 하나는 저자가 이 책의 <결론> 부분에서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Date2011.02.21 Category책읽기 Reply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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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石ノ森章太郎、『マンガ日本経済入門』

    石ノ森章太郎、『マンガ日本経済入門』1・2・3・4、1986年、日本経済新聞社 とりあえず、漫画家石ノ森章太郎について話さなく、この本を評することはできないだろう。彼は一般的には『仮面ライダー』シリーズの原作者で、手塚治虫の弟子、そして永井豪の師匠である。手塚治虫が「漫画の神様」と呼ばれることに対し、石ノ森...
    Date2010.07.07 Category책읽기 Reply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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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E.E.샤츠슈나이더, 절반의 인민주권, 후마니타스

    절반의 인민주권 E.E.샤츠슈나이더 현재호, 박수형 옮김 후마니타스 2008 E.E.Schattschneider, The Semisovereign People : A Realist's View of Democracy in America, Wadsworth Publishing, 1975 <절반의 인민주권>은 현대 정치학에서 정당론의 고전으로 꼽히는 책이다. 저자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Date2010.05.31 Category책읽기 Reply4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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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로버트 달, 민주주의, 동명사

    로버트 달, 민주주의(On Democracy), 동명사, 1999 이 글은 로버트 달(Robert.A.Dahl)의 저작, 민주주의(On Democracy)의 요약 정리를 위해 쓰여졌다. 짤막한 코멘트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며 본문과는 큰 관련이 없다. 1장 민주주의를 이해하기 위한 지침은 필요한가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2500년 동안 간혈적인 토...
    Date2010.05.28 Category책읽기 Reply2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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