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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숙, 문제는 무기력이다, 와이즈베리

posted Apr 0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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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무기력이다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예전에 한 번 보았던 서평이 기억나 사 읽게 되었다. 보다보니 2013년에 나왔고 13쇄나 찍은, 나름 잘 팔린 책인 것을 알았다. 저자가 제시하는 이론은 마틴 셀리그만의 '학습된 무기력' 연구에서 많이 따온 것 같다. 각설하고.

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연구소에 취직한 A. 처음에는 매우 의욕적으로 학생들과 새로운 연구의 진행을 시도 하였으나 연구 계획이 여러 번에 걸쳐 좌절되자 눈에 띄게 달라졌다. 근무 시간에 일드를 보거나 쇼핑몰 검색으로 잡동사니를 사무실로 마구 배달시켰다. 회의 때는 멍때리고 소장의 질문에 엉뚱한 말을 늘어놓았단다. 그가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기한을 맞추지 못하거나 엉망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가 과거에는 의욕이 왕성하고 똑똑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의 변화가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가 변한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이다. 내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목표 상실이 그중 하나의 이유였으리라 생각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연구는 못하게 되어 좌절하고, 보스가 시키는 일은 자신의 연구 목표와 맞지 않아 재미가 없어 하기 싫다'는 것이 그를 그렇게 만든 이유가 아닌가 생각된다.'
-26-

셀리그만은 무기력 학습을 다음 3단계로 설명했다.
1단계 : 아무리 노력해도 결과가 달라지지 않음을 알게 되는 단계
2단계 : 재앙이 일어난 상황과 고통을 참아내며 앞으로도 계속 자신의 노력이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없다고 판단하며 무기력을 학습하는 단계
3단계 : 다른 상황에 놓여도 학습한 무기력에 영향을 받아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는 단계
-66-

레오노레 워커는 매맞는 여성이 무기력을 학습한다는 이론을 발표했다. 폭력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면 아내는 어느 순간부처 남편이 휘두르는 폭력을 피하지 않는다. 폭력에 길들고 채념한 사람은 자연히 자존감도 낮아진다. 그래서 폭력을 피하기 위해 도움을 청하거나 폭력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지 않는다. 심지어는 자신이 맞아도 될 만큼 커다란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하고 가해자를 두둔하기까지 한다. 결국 반복되는 폭력 앞에서 무기력해지고 속수무책 고통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런 상태를 레오노레는 '매 맞는 여성 증후군'이라고 했다.
-73-

무기력을 부르는 또 다른 요소는 예측이 불가능한 상태. 행동신경 과학자 브레디의 <중역 원숭이 연구>. 브레디는 원숭이 8마리에게 전기충격을 가했다. 그리고 막대기를 누르면 충격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을 학습시켰다. 그중 빨리 학습한 4마리에게 다른 원숭이를 다스릴 수 있는 '중역'이 되게 했다. 나머지 4마리는 스스로 충격을 통제 할수 없고 중역원숭이가 도와주어야만 전기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다. 브레디는 중역 4마리에게는 전기충격을 예측하지 못한다는 스트레스를 주고 나머지 4마리에게는 전기충격을 통제할 수 없다는 스트레스를 주었다. 4마리는 통제 불가능, 4마리는 예측 불가능을 경험하게 한 것이다. 그런데 실험결과 전기충격을 통제할 수 있었지만 예측은 할 수 없는 중역 원숭이 3마리가 위궤양으로 죽고 말았다. 이 실험에서 우리는 실험불가능도 위험하지만 더 위험한 것은 예측 불가능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79-

심리학자 블래너도 직장인의 무기력에 대해 "피고용인은 개인을 무시하는 제도에 의해 생산수단과 완제품에 대한 의미를 알지 못하고, 전체적인 경영 방침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없으며, 고용 조건에 대해서도, 작업 공정에 대해서도 통제력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무기력을 느낀다"고 했다.
-103-

수많은 실험과 사례가 등장하지만 일단은 여기까지. 무기력이 얼마나 위험하고 빠져나오기 힘들며 고통스러운 지는 알만한 사람은 알 것이다. 문제는 무기력, 낮은 의욕과 낮은 자존감이 어디사 발원하느냐 하는 것이다. 저자의 주장을 간단히 말하면 통제불가능과 예측 불가능에서 온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자포자기하게 되고 이것이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대게는 직장생활에서 발생하게 된다. 길게 이야기 했지만 네 글자로 줄여 '노동 소외'라고 해도 무방하다. 굳이 마르크스를 상찬하자는 것이 아니니 일단 넘어가자.

나는 몇 년간 심각한 무기력증을 겪었고 지금도 그렇다. 책을 읽으며 내가 경험한 서른 이후의 몇 년간을 떠올리게 되었다.

우선 유학을 중단했다. 내가 마주친 첫 번째 장벽이었다. 집안일과 개인 사정이 겹쳤다. 그 이후 삶의 목표를 잃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몰랐다. 지금도 모른다. 그냥 그렇게 세월을 버텼다.

새로운 꿈과 희망을 가지는 일은 쉽지 않았다.

국회에 있을 때는 시키는 것 말고는 하지 말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일단 시키는 것만 하기에도 24시간이 모자랐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난 이미 병원에 있었다. 오랜 세월 지나고 보니 시키지 않는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 오래 살아남더라. 조직에 충성을 바치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체득하게 되었다.

공공기관에서 일할 때는 많이 힘들었다. 처음에는 의욕을 가지고 각종 기획안을 썼다. 같은 사업의 기획안을 여섯 번이나 썼다. 문제는 여섯 번 모두 통과되었다는 것이다. 회의를 하고 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기획안을 쓰고 그 기획안이 통과가 되면 다음주에는 그전까지의 결정 내용과 아무 상관없는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기획안을 쓰고, 이것이 1년간 반복이 되었다. 누가 모여서 어떤 결정을 해도 그것은 다음주가 되면 아무 의미도 없었다. 상사의 즉흥적 판단이 제일 중요했다.

온갖 편법과 패거리 문화만 배웠다. 나는 그저 서류쓰는 기계가 되어있었다. 어느 순간 내가 상사의 돈세탁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 제 발로 병원에 가기 시작했다.

노조에 있으면서도 실무자는 언제나 시키는 것만 해야 하며, 조직이 원하는 수준의 윤리적 규범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한 번은 80일간 일요일도 없이 일한 적이 있었다. 휴가를 쓰겠다고 했으나 상사가 그럴 수 없다고 했다. 간부들이 결정한 일이 논란이 되자 실무자의 실수로 둔갑할 때도 많았다. 가장 충격을 받았을 때는 1년간의 업무평가 서류가 내가 모르는 사이에 바뀌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다. 상사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내가 해놓은 일에 대해서 '한마디로 의미없는 일'이라고 발표했다. 그런 의미 없는 일을 하려고 일요일도 없이 일한 내가 한심했다. 아무리 사이가 좋지 않아도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한다는 내 윤리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일이 발생했고 나는 큰 충격에 빠졌다.

사람들은 노동에 대해 말하고 인권을 말하지만 실생활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다. 나는 타인의 선한 의지를 의심하지 않는다. 그들은 몰랐을 것이고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원래 사람은 그렇게 죽어가는 것이다.

책에서 말하는 무기력의 탈출법은 다소 복잡하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매우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오랫동안 겪어야만 하는 것이다. 나는 서른 이후 7년간을 운동권 실무자로 살았고 앞으로도 별다른 일이 없으면 실무자로 살 것이다. 하지만 다른이의 손과 발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이 나의 작은 다짐이다. 서서히 사막을 빠져나오기 위한 채비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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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에 태어나 90년대에 성장해 2000년대를 살고 있다. 사회학과 정치학을 전공했지만, 스스로를 역사학도라 생각한다. 면식과 만화, 수다와 어린이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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